우리나라 대차수(大茶樹)
경북대학교 박용구
1. 서론
차나무의 수명이 얼마나 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첫째 차나무의 종류에 따라 생태 및 생리적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차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에서도 변이가 많아 분류학적으로 이견이 많았으나 1950년 北村가 중국종과 앗삼종, 두가지 변종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중국종은 온도가 낮은 북부지방에 자라며 관목형이며 앗삼종은 교목형으로 중국운남, 사천, 인도 앗삼지방에 자생하는 키가 큰 교목형 나무다. 그러나 분류학자에 따라서는 앗삼종과 중국 소엽종 사이에 중간적인 형태를 가진 것을 첨가하여 중국소엽종, 중국대엽종, 샨종, 앗삼종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중국소엽종이다. 중국소엽종과 대엽종은 관목형이며 샨종과 앗삼종은 교목형이다. 중국소엽종은 우리나라 일본 그리고 중국 동남부에 자생하며 중국대엽종은 중국의 호북, 사천, 운남, 일본의 일부지역에 자생하며 샨종은 통킹, 라오스북쪽지방 및 미얀마와 앗삼지방에 자생하며 앗삼종은 마니플, 루샤이, 카치야푸, 앗삼지방에 자생한 차나무 중에서 가장 키가 큰 교목이다.
얼마나 나이가 들어있는 차나무가 있는가 하는 것은 차문화 역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한다. 중국에는 많은 차나무들이 보호수로 지정받아 보호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우리나라에 차나무가 도입된 것을 가야시대로 본다면 이천년이 넘었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대차나무는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나라의 차문화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일로 생각되어 조사하였다.
2. 조사 결과
우리나라 대차수를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자료를 수집하여 9개 곳의 차나무 현장을 답사하여 정리하였다(표 1).
1995년 4월 26일 일본 차.야채시험장 차나무 육종실장인 山口박사와 같이 통도사 채진규 총무과장의 안내로 통도사 금당 내 자라고 있는 대차나무를 조사하였다. 통도사 대웅전 뒤편 석가모니사리를 모신 금당이 있고 이 금당은 신성한 곳으로 아무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게 울타리가 쳐있다. 그 울타리 서쪽 가장자리에 담장 옆에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높이 3.8m 가장 큰 줄기의 지재부 직경이 4.5cm이었으며 29개의 줄기들이 모여 나무를 이루고 있다. 채 과장의 말로는 오래전부터 차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120~150년생쯤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통도사는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불경, 불상 등 가져와 646년(선덕왕 15)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舍利)·가사(袈裟)·대장경 등을 금강계단에 봉안하고 창건한 절이다. 이때 차나무도 같이 가져왔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으며 이때가 삼국사기에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대렴이 차나무를 중국에서 가져와 지리산에 심었다. 그러나 선덕왕때 이미 차가 있었다. 고 적혀있는 것으로 미루어 선덕왕때 자장율사가 차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통도사가 차의 산지로 중요한 것은 2003년 차의 세계에 최순애의 글에서도 알아볼 수가 있다. 통도사 주변에 차나무가 많았는데 1961년 7월 대웅전(국보290호) 보수공사 때에 문화재 도굴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주변의 나무를 정리하면서 대부분이 훼손 되었다고 한다. 성파스님(서운암주지)은 옛날에는 이 차나무가 굉장히 크고 굵었는데 원 둥치는 썩고 곁가지들이 자라서 현재에 이른다고 하였다. 2003년 3월 23일 다시 차문화연구회 이형석박사, 차인연합회 최순애 부회장과 같이 조사 나와 보니 2년 전인가 대웅전 방화페인트 공사를 하면서 이 나무가 피해를 받아 많이 손상되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윗부분이 망가지고 잎이 떨어져 생기를 잃었다. 그 뒤 이 나무를 경내 다른 곳으로 이식하여 다시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잘못 다루어진 사례라고 할 수가 있다.
2000년 10월 7일 차문화연구회 이형석박사가 제안하여 한국차학회 임원들과 같이 여수 돌산 백초초등학교, 하동군 화개 정금리 도심다원, 밀양읍 산외면 일직손씨 제실의 대차나무를 같이 조사하였다.
여수 돌산 백초초등학교의 차나무는 수고 3.4m, 직경 7.0cm 로 잘 자라고 있었다. 언제 누가 심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및 일제 시대 차재배지에 대한 기록에는 여수가 들어가 있지 않으나 이지호(1977)의 지리학과 지리교육 제7집(77년10월)에는 여수에 차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경남 하동 화개 정금리 도심다원으로 향했다. 하동에서 화개장터로 들어가 쌍계사쪽으로 올라가는 동편에 난 새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편 계곡쪽으로 정금리가 나오고 그 동내 가운데 도심다원 대표 오시영씨를 만나 같이 산 위쪽 대차수를 조사하러 갔다. 주변의 야생다원이 펼쳐있고 군대 군대 풀밭으로 덮여 있는 매우 비탈이 진 산길을 어렵게 올라와 8부 능선 근방 경사면에 약간 비스듬하게 위태롭게 서있는 차나무가 있다. 수고 4.2m, 줄기의 지제부 직경이 14cm에 달했다. 아래 줄기는 세 갈래로 갈라져있으며 그 중에 작은 줄기 하나가 반쯤 고사하여 채취하였다. 차나무는 경사면에 있어서 줄기 자람이 뒤틀리고 있지만 매우 왕성하게 생장하고 있어 계곡으로 흘러내려 그곳에 쌓인 토양이 좋은 것 같았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가 없다고 했다. 2003년 5월 9일 한국차문화협회와 하동군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로 최고수(最高樹) 입간판을 만들어 붙이고 차 관계 관광자원으로 이용하여 왔다. 2008년 7월 1일 사단법인 한국기록원으로부터 1000년 된 차나무로 인증서를 받았으며 인증서에는 한국차문화연구회와 양명학회에서 검증하여 준 것으로 명기하였다. 그러나 한국차문화연구회에서는 차나무의 나이를 검증해준 사실이 없다고 한국인증원쪽에 이의를 제의하고 있다. 인증원이 검증해주었다고 한 양명학회의 검증은 직경 3cm 차나무를 300백년, 5cm 차나무를 500백년으로 그리고 14cm인 정금리의 차나무를 10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조사방법이 전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어 검증서로 이용될 수없는 것이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림 10에 있는 것처럼 현장에서 가져 온 직경 5cm 차나무 줄기를 절단하여 나이테를 조사한 결과 32년이 나왔으며 수를 포함하여 2년을 더해주면 34년생으로 나타났다. 온대수종인 소나무의 나이테는 선명하여 쉽게 측정이 가능하지만 난대수종의 경우 나이테가 확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특수 측정 장치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차나무 줄기의 나이테는 육안으로도 쉽게 측정이 가능하였다. 나무의 생장은 매년 일정한 양만 끔씩 정비례로 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직경5cm의 생장으로 유추해 볼 때 직경 14cm 경우 100년 전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줄기의 최신 측정법으로 조사하면 정확한 수령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밀양읍 산외면 다동 1리에 있는 밀양 일직손씨 제실 마당에 심어진 차나무를 조사하였다. 수고 2.7m, 직경 10cm로 수관폭은 4.3m에 달했다. 안내해준 밀양군청 손기성씨 말로는 이 제실이 600년 전에 건립되었으며 그 당시에 차나무를 심었다는 구설이 전해지고 있어 이 차나무의 나이가 600년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구례군 토지면 석산다원의 손윤기씨의 제보로 2007년 9월 20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홍류계곡 대차나무를 조사하였다. 마을 뒤편 홍류계곡 배고픈 다리 위쪽에 나무의 줄기가 잘려 나간 차나무가 서있었다. 수고 0.5m 직경 13cm에 달했다. 수고가 무참하게 훼손이 되어 나무의 참 가치를 읽게 된 것이다. 산 위쪽 왕시루봉에서 부터 이곳까지 2만평 정도의 사유지에 차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차 야생상태로 자라고 있었다. 이곳에는 피아골 안쪽에 있는 연곡사 말사가 자리하여 차나무가 오래전부터 자라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천년다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제다원이 다리 위쪽에 자리 잡고 제다를 하고 있다.
2007년 11월 1일 보성군 녹차사업단장 송봉섭씨의 안내로 서찬식 보성녹차사장과 김주희박사와 같이 보성읍 봉산리 사선대 차박물관 건설 현장에 갔다. 박물관 뒤편 언덕위에 보성읍 주봉리 공사현장에서 뽑혀 버려질 대차수를 2007년 이곳으로 옮겨 심어놓았다고 했다. 수고 2.1m, 직경 32.0cm 로 현재까지 조사된 차나무 중에 가장 큰 차나무였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옮기 전에 수고 5.0m 였으나 이식하여 나무키를 많이 잘라 2.1m로 낮아졌다고 한다. 이 나무에 얽힌 일화는 없었으며 단지 보성군내에서 큰 차나무를 찾아 박물관 내에 식재한 것이라고 했다. 이제 겨우 활착이 되어가고 있었다.
같은 날 김주희박사와 같이 보성군 득량면 송곡리 다전동 동내 가장 윗집 대나무 밭 안에 큰 바위 밑에 뿌리를 박고 자라고 있는 차나무를 조사하였다. 오래전부터 자생해온 차나무는 곧바로 자라지 못하고 무거운 바위에 눌려 옆으로 간신히 빠져나와 자라고 있다. 수고 2.4m, 직경은 8.0cm에 이른다. 이곳도 동내이름과 같이 조선시대부터 차생산지로 이름이 난 곳이라고 했다. 열악한 환경 하에서도 이정도의 생육을 보이고 있는 것은 수령이 상당히 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었다.
2008년 5월 20일 이용호박사의 안내로 경남 남해군 보리암 다원을 조사하였다. 보리암 뒤쪽 찻길로 올라가 대웅전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 이태조 기도장소로 가는 길 중간에 계곡아래 큰 바위들이 널려진 곳 곳에 차나무들이 기묘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생하고 있다. 이곳 보리암은 가락국 허왕후의 오라비인 장유화상이 차를 가져와 심은 곳으로도 전해져 내려온 장소이다. 길에서 계곡아래 3~4m 지점의 큰 바위 아래 키가 큰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고 3.8m, 직경 8.0cm에 달했다. 토양심도가 매우 낮고 생육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에서 이정도의 생육을 유지하는 것은 수령이 상당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었다.
2000년도 이전에 조사를 했던 곳인 화엄사 멸궁보궁 앞 대차수를 2008년 5월 31일 다시 조사하였다. 수고 3.0m, 직경 10.0cm로 토심이 깊고 생육환경이 좋은 곳에서 잘 자리고 있었다. 이곳 화엄사는 차나무와 관련이 깊은 곳으로 바로 이 차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바로 위쪽에 연기조사 효대가 있어서 차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표 1. 우리나라 대차나무 소재지, 특징, 조사일자 및 조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