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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의 구출>은 로마 바티칸 궁의 에리오드로실의 프레스코 벽화로서 1513-1514년에 걸쳐 그려진 라파엘로의 걸작 성화 중 하나이다. 작품의 크기는 저변이 715cm이고 높이가 475cm의 대작이다. 전체 화면은 시간적으로 사건의 연속을 나타낸 세장면이 동시에 표현되고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 벧전 1장 1-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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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의 편지(letters of Peter)
(요약 )
예수의 12사도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인 베드로의 것으로 여겨지는 〈신약성서〉의 두 문서.
2세기초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된다.
〈베드로의 첫째 편지〉는 소아시아의 다섯 지방에 살고 있는 박해받는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보낸 것으로, 수난받고 죽은 후 다시 살아나서 영광 가운데 있는 예수를 기억함으로써 그들이 당하는 고난 가운데서 고난받는 그리스도를 닮으라고 권유한다. 또한 그리스도교도들은 악을 선으로 갚고, 서로 사랑하며 높은 도덕성을 지닌 선한 시민이라는 평판을 얻어야 한다고 권면했으며, 이렇게 해서 자신들이 부당하게 고난당한다는 의심을 없애려고 했다. 저자에 관한 문제는 아직 학자들이 만족할 만큼 해결되지 않았다. 유창한 그리스어 문체와 몇 가지 역사적인 언급들로 보아 베드로는 저자가 아닌 것 같으며, 또 초대교회 조직에 대한 설명을 보면 이 편지는 초기에 씌어진 것 같다. 실제 저자는 베드로의 비서나 그의 대변인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베드로의 둘째 편지〉는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되어 있다. 저자는 재림 지연의 분명한 이유를 우주적인 구원을 위해 하느님이 참고 시간을 연장시켜 주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하느님에게는 천년이 하루같다고 쓴다. 저자는 또 거짓 선생들에 대해서 그들이 말로써 남을 속이고, 행위가 부도덕하니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이들과 이들을 따르는 자들은 "의(義)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Ⅱ 베드 3:13)에 앞서 오는 대화재 때 멸망당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비록 저자는 명백하게 자신을 베드로라고 밝히지만 본문에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3세기초부터 실제 저자가 누군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고, 후대 학자들은 더욱 회의적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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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교회에서 베드로의 위치
복음서의 서술에 비추에 볼 때 예수의 죽음 이후 곧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떠오른 것은 결코 예상 밖의 일이 아니었다.
부활 이후 거의 15년 동안 베드로는 사도교회를 이끌었다. 그는 회의를 주재하여 유다(그리스도를 배반한 뒤에 죽음) 대신 마티아를 사도로 임명했으며(사도 1:23~26), 교회가 탄생하게 된 오순절에 맨 먼저 일어나 설교를 했다(사도 1:14~39). 또한 예루살렘의 유대인 종교법정에 서서 사도들을 변호하는 설교를 하고(사도 4:5~22), 교회 안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훈계하는 재판장 역할도 했다(사도 5:1~10). 베드로는 12사도들을 이끌고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교회를 확장했다(사도 9:32). 그는 먼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갔고(사도 8:4~17), 그 결과 "그들도 성령을 받았다". 사마리아에서 그는 마술사이자 주술적 치유자인 시몬 마구스를 만났다.
그뒤 사론 평지의 리따로 가서(사도 9:32~35) 중풍병자 애네아를 고쳤으며, 지중해연안 도시 요빠로 가서(사도 9:36~43) 다비타(도르가)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주었다.
지중해연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카이사레아에 간 베드로는(사도 10:1~11:18) "이탈리아 부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인대장" 고르넬리오를 개종시킴으로써(사도 10:1) 이방인을 교회로 받아들였다.
당시 유대교 규정에 따르면 이방인 개종자는 먼저 할례를 통해 유대인이 되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베드로는 할례를 요구하지 않은 채 고르넬리오와 그외 다른 이방인들을 받아들였는데, 이들은 회당과 비공식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함으로써(사도 10:48)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고, 이것은 유대 그리스도교도들 및 일반 유대인들의 반발을 샀다. '성령'이 성결하게 하심(사도 10:10~15)에 힘입어 베드로가 독자적으로 일으킨 이 사건으로 헤로데는 야고보(요한의 형)의 목을 베고 베드로를 체포하게 한(사도 12:2, 3) 것으로 보인다.
감옥에 있는(AD 44경) 베드로를 주의 천사가 찾아왔고 두손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려서 그는 감옥을 빠져나왔다(사도 12:1~8). 그는 즉시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사도 12:12). 그리고 자기가 감옥에서 빠져나온 사실을 "야고보와 다른 교우들"에게 알리라고 부탁하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사도 12:17). 이 시점에서 예루살렘에서 누리던 베드로의 지도권은 끝을 맺게 되었다.
베드로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곳'이라는 말이 같은 지방의 임시피난처를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의 후기활동을 다루지 않는다.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쓴 저자가 이후의 활동을 다루는 제3의 책을 쓸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책이 씌어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씌어졌다 하더라도 후에 상실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는 〈클레멘스의 첫번째 편지 First Letter of Clement〉(제4~6권)에 암시된 교회 내부의 시기심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거나, 아니면 책을 완성하기 전에 저자가 죽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후기활동에 대해서는 베드로가 유명했던 당시 두 사도, 즉 야고보와 바울로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데서 잠깐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베드로는 헤로데 왕에게 잡혀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후 예루살렘을 떠날 때까지 예루살렘 교회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이었다(사도 12:1~17). 예를 들어 바울로는 회심 뒤 3년 만에 베드로와 의논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와 함께 2주일을 그곳에 머물렀다(갈라 1:18~19). 그러나 많은 〈신약성서〉 학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난 뒤 베드로는 선교활동을 맡았고 '주의 형제' 야고보가 교회의 실제적인 지도권을 가졌다고 본다(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음). 이렇게 권위가 베드로에서 야고보로 옮겨졌다는 것은 베드로가 안티오키아에서 이방 그리스도교도들과 함께 식사하던 도중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의 뜻을 따라 자리를 물러난 사실(갈라 2:11~14), 이른바 예루살렘 사도회의(사도 15:7)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야고보가 최종적으로 '요약'한 사실, 후에 베드로가 마르코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 집에서 떠날 때 자신의 거처에 대한 설명 또는 '보고'를 주로 야고보에게 남긴 사실(사도 12:17) 등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바울로는 회심 3년 뒤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다.
이 만남을 기록하는 데서 게파(베드로)라는 이름이 야고보보다 먼저 나온다. 그러나 14년 뒤의 만남을 전하는 이야기에는 야고보가 게파보다 먼저 나온다(갈라 2:9). 또한 바울로는 안티오키아에서 일어났던 자신과 베드로가 연루된 사건을 강조한다. 이 사건이 일어날 당시 바울로는 안티오키아에서 유대 그리스도교도와 이방 그리스도교도를 하나의 회중으로 합하는 일에 어느 정도 성공했던 것 같다. 유대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방인들과 한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것을 그들의 전통에서 아주 벗어난 일로 보았다.
바울로가 없는 동안 베드로는 선교사로서 안티오키아를 방문하여 유대인 그리스도교도와 이방인 교우들과 식사를 했다. 후에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와서 이방인 교우와 함께 식사하는 관습에 반대했다. 베드로는 야고보에게 복종하여 "슬그머니 그 자리에서 물러 났고", 유대 그리스도교도들도 마찬가지로 처신했다. 이로써 이 집단의 통일성은 무너지게 되었다. 바울로는 돌아와서 베드로가 우유부단해서 저지른 일에 대해, 어쩌면 결별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한 것 같은 일에 대해 베드로를 꾸짖었다(갈라 2:11~14).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예루살렘 공의회(49/50)가 소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에서 바울로는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고"(갈라 2:7), 베드로는 "할례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갈라 2:8).
바울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장 12절에서 지나가는 말로 게파(베드로)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것은 고린토 교회의 한 집단이 특별히 베드로에게 헌신했음을 암시한다(어떤 사람들은 이 내용을 근거로 베드로가 고린토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함). 또한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9장 5절에서는 베드로가 아내와 함께 선교활동을 한 것으로 쓰고 있다.
베드로가 소아시아에서 선교 여행을 했다는 것은 〈베드로의 첫째 편지〉 1장 1절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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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yKX2qYQ6ASA
새찬송가 350장 ‘우리들이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의 찬송은 작시 작곡자 모두 미상으로 되어있는 찬송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은, 교회에서 부르는 모든 찬양을 찬송가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수영이 부른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찬송가가 아니라 CCM(복음성가)이다.
민중가요 중에도 찬송가형 민중가요가 있다. 류형선의 <희년을 향한 우리의 행진>, <그대와 함께 평화가 되어>, <우리는 평화가 되자>, 백창우의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 주현신의 <새날에 선 겨레여> 같은 곡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역사 의식을 담아낸 찬송가형 민중가요이다. 찬송가형 민중가요는 19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시위현장에서 많이 불리워지기도 했다.
유명한 찬송가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더불어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들었을때 전혀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캐럴의 대다수도 찬송가로 이루어졌다. 콜 오브 듀티 1의 명장면 중 하나인 붉은 광장 우라돌격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도 찬송가 586장(구 521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Once to every man and nation)>이다. 대한민국보다 기독교가 더 강세를 보이는, 기독교 신자들이 더 많은 서양에서는 기독교적인 컨셉을 노래하는 락밴드들도 있을 정도로 기독교 음악들이 대중화 되어있다. 물론 가사 자체가 젊은 애들한테 손쉽게 와 닿을만큼 자극적이고 감정적이지는 않아서 인기로 따진다면 여전히 일반 대중음악에 비해서는 밀리는 편.
반면 처음에는 찬송가 목적으로 작곡되지 않았으면서 찬송가로 여겨지는 음악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시크릿 가든 원곡의 <You Raise Me Up>과 페기 마치의 <I will follow him>이 있다.
사실 웨스트라이프는 모든 노래가 찬송가 같다.
또한 원래 있던 노래에서 가사만 바꿔서 찬송가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독일과 영국의 국가 곡조가 찬송가로 인용되기도 했다. 독일 국가인 독일인의 노래는 <시온성과 같은 교회>, 영국 국가인 <God Save the Queen>은 〈피난처 있으니〉로 실려 있다. 클래식이나 민요 등지에 곡조에 가사를 붙인 찬송가들도 있다. 새찬송가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와 605장 '오늘 모여 찬송함은' 에도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제 4악장에 가사를 붙였다. 493장의 '하늘 가는 밝은 길이'는 스코틀랜드 가곡인 Annie Laure(애니 로리)에 곡을 붙였고, 280장의 '천부여 의지 없어서'는 올드 랭 사인에 가사를 붙였다. 또한 군가가 찬송가로 편입된 경우도 있다. 한 예로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은 한국에서는 새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로 들어있지만 가사가 변경되었다. 새찬송가 350장 '우리들이 싸울 것은'은 <Marching Through Georgia>의 가사를 일본인 목사가 변경한 버전이다. 일본군 군가 <용감한 수병>도 개사되어 복음성가로 쓰이는 중(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군가 tramp, tramp, tramp는 기독교적인 유아동요 Jesus loved children(주님께서 아이들을 사랑하셨네)로 개사되었다.
거꾸로 찬송가가 군가로 흘러들어간 경우도 있다. 오스트리아 제국, 영국과는 반대로 피지 국가는 찬송가를 개사한 것이다.
여담으로, 일본 칸사이 지방의 사철 회사인 킨테츠에서 특급열차 차내 안내 멜로디로 찬송가 (죄짐 맡은 우리 구주)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