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를 준비시키신 후 말씀하신다. 가라 하신 말씀을 따라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의 집으로 간다. 무엇을 말씀해 오실까 생각하며 유심히 살펴보았을 것이다.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렘 18:3,4)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었을 수 있다. 그때 하나님은 토기장이와 진흙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설명해 주신다. “둘 중 누구에게 권위와 권한이 있느냐? 토기장이냐, 진흙이냐?”
며칠 전에 어른 주먹만 한 큼지막한 두꺼비 한 마리가 배수구를 타고 세탁장으로 들어왔다. 이내 세탁기 아래 어두운 곳에 몸을 숨겼고 그리 해를 끼칠 일은 없었으므로 며칠 두고 보았다. 처음 만난 그 일로 무엇을 말씀해 오고 계시는지, 무슨 말씀을 주실는지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산책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것이 두꺼비 사체다. 차가 접근해 오지만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다가 로드킬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내 눈에는 고집을 세우다 죽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비쳤다. 알아보니 두꺼비는 위협을 느낄 때 빠르게 도망치는 대신 몸을 낮추거나 가만히 있는 경향이 있었다.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숨기거나 방어하려는 본능 때문이었다. 자신의 본능을 따라 사는 것이 현대의 환경에서는 생존 전략이 아니라 어이없이 죽는 길이 된 것이었다.
문득 두꺼비는 색깔도 형체도 마치 한 주먹의 진흙덩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본능적인 판단, 감정을 고수하면 할수록 위험에 빠지는 존재다. 요나가 그랬다. 자기 뜻대로 안 해 주신다고 하나님께 틀을 부린다. 죽었다가 살아난 후에도 멈추지 못할 만큼 강렬하게 자기 뜻을 주장한다. 다시 죽더라도 자기 뜻이 옳다고 한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욘 4:9)
두꺼비가 아니라 진흙덩이처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신의 뜻을 순히 내려놓을 수 있을까?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 18:6) 두꺼비는 본능대로 살아갈 때 스스로의 한계에 갇히지만, 진흙은 토기장이의 손안에 있을 때 새 생명으로 빚어진다.
가인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심히 못마땅해한다. 욥도 “내가 어찌하여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라며 하나님께 대든다. 신실한 종으로 유명한 엘리야도 그렇다. “여호와여, 내가 열심히 주를 위하여 일하였으나, 이제 남은 자는 나뿐입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대체 이게 뭡니까? 이게 맞습니까?라고 따지는 것이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진흙덩이다. 사람의 형상을 갖기 전에도 흙이요, 가진 후에도 다만 흙이다. 몰라서 교만하고, 몰라서 자기 뜻을 말한다. 몰라서 자신이 토기장이 행세를 한다. 몰라서 하나님 앞에서도 성질도 부리고, 따지기도 한다. 몰라서 함부로 제 멋대로 산다. 그렇게 무지 가운데 살다가 두꺼비와 같은 최후를 맞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아버지를 안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베푸신 긍휼 때문이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1,22)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춰져 왔던 비밀이 두꺼비 같고 진흙덩이 같은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이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며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다. 이 비밀에 대해 들려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일하신다. 들을 수 있는 준비를 시키신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의 집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고난, 시련, 외로움, 실패, 병, 불안, 혼란 등을 통해 그곳으로 데려가신다. 누군가에게는 병실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감옥일 수도 있다. 겸손히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하신 상황이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은 하나님이 나를 준비시키시는 과정은 아닐까? 그곳에서라야 보고 듣는다. 바로 그곳에서라야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뜻과 계획이 분명해짐을 경험하게 된다. 진흙덩이 같은 우리가 새 생명으로 빚어짐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 내려가서 보게 하신 토기장이의 집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