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긍정을 더할까, 부정을 덜어낼까?” 연구에 의하면 후자라고 한다.(바우마이스터, 'Bad is Stronger than Good') 한 계단이라도 오른 만큼 나아간 것이 팩트다. 여전히 '그 자리'라거나 '그대로'라고 말한다면 부정성에 기울어진 거짓이다. 그럴 리 없다. 엄연히 높이가 달라진 것이다.
한 여우가 포도원의 좁은 구멍으로 들어가기 위해 체중을 줄였다. 사흘 후 나올 때는 다시 감량해야 했다. 나와서는 투덜거렸다. “뭐야, 똑같아졌잖아.” 체중만 보면 여우의 말이 맞다. 하지만 들어가고 나오기 위해 기울인 수고를 통해 얻은 지식과 3일 동안 포도원 안에서 누렸던 행복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가? 사랑하는 이들과 아름다운 곳을 여행한 후 ‘전과 똑같다’고 말한다면, 그 안에 담긴 경험과 변화를 제대로 평가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한 주 한 주가 그렇다. 똑같지 않고 달라졌다. 더 깊어지고, 단단해졌다. 더 성숙해졌다.
요셉은 평생에 따라붙었을 부정적인 생각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었을까? 형들에게 살해 위협을 당하고, 팔려버리지만 부정적 사고에 매몰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신 은혜였다.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그는 믿음에서 어린아이가 아니라 장성한 사람이 됐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말로 다할 수 없이 괴롭고 억울하고 하소연할 데 없는 세월을 통해 성숙해진 그는 형들을 부정적인 생각에서 건져줄 만큼 성장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그는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극복한 사람이다. 두렵고도 슬펐던 과거의 경험을 성장의 자양분으로 바꾸어 주신 은혜였다.
억울한 것으로 치면 산마리노 친구들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감사 일기를 쓰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부정적인 생각이 스며들 수 있는 상황에서 잠시 멈추고 말씀을 성찰하며 주님을 기억하는 습관이 몸에 배는 것을 본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감사가 쌓일수록 얼굴은 밝아지고, 말과 태도가 분명해진다.
부정적인 생각은 마치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와 같다. 겉으로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계와 마음을 망가뜨린다. 작은 여우를 쫓아내는데 감사처럼 특화된 도구도 없다. 감사한 이유를 적을 때,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게 했던 생각들은 타버린 밧줄처럼 힘을 잃는다. 담대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
우울한 마음, 원통한 마음, 불평하는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은 사람은 이미 예전의 그 사람일 수 없다. 감사는 내일을 창조하는 힘이다.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과 관계하며 오늘의 감사로 내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