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에게 코뚜레는 통제를 위해, 멍에는 일을 위해 필요하다. 십자가는 내가 당하는 어떤 어려움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오히려 주님을 따라가고자 하는 이들의 절대적인 필요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어려움들은 내게 주신 십자가 자체가 아니라 그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준비의 과정’ 이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십자가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겸손해진다.
제멋대로 날뛰는 소에게 수레를 맬 수 없듯이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적합하지 않다. 코뚜레를 한 소는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한다. 주인의 기침소리도 주의할 정도로 주인의 의도에 주의한다. 이전 같으면 사소한 억울함이나 무시에도 성질을 죽이지 못해 불침 맞은 황소같이 길길이 날뛰었을지라도 지금은 체념처럼 보일 정도로 자기 의견이 없다. 차분하다.
십자가를 받은 결과요, 또 십자가를 받을 준비가 된 모습이다. 주인이 이것을 하라고 하면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고 하면 저것도 한다. 고분고분하다. 다듬어진 온유가 나타난다. 혈기왕성했던 모세를 그렇게 십자가를 통해 준비시키셨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 빚어내셨다.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성격, 자기 고집, 자기 의, 자기 자랑, 교만 등으로 충만한 사람이 순한 양처럼 바뀌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주인의 명령을 따라 거대한 곰이나 사자 앞에서도 도망하지 않고 덤벼드는 충직한 사냥개처럼 바뀐다. 그래야 주인에게 쓸모가 있다.
코뚜레는 소가 주인의 뜻을 따르게 하기 위한 도구다.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주인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면 쟁기를 달고 논밭도 갈고, 수레를 매고 짐도 운반한다. 고통을 통해 주인이 부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된 것이다.
주님이 먼저 그 십자가를 지셨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8) 죽기까지 치우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다. 아버지께서 주신 십자가는 아들을 준비시키신 도구요, 아들이 자신의 사명을 완성한 도구였다.
주님이 각자에게 주신 길을 누가 처음부터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코뚜레와 같은 어려움을 주셔서 우리를 준비시키시고, 때가 되면 멍에를 지우셔서 뜻에 맞게 인도하시고 사용하신다. 마침내 유다처럼 이탈하지 않고, 베드로처럼 거꾸로 지고 갈 정도로 십자가를 알게 하시고, 자신의 십자가를 끝까지 질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신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명까지도 감당하게 하신다.
제이크라는 이름의 한 필리피노 택시운전사를 만났다. 두 개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업무용이요, 다른 하나는 미국에 계신 어머니와 하루 종일 영상통화하는 용도였다.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어떤 관계이길래 하루 종일 서로의 삶을 보고 싶어 할까?" 그가 대답했다. "우리 어머니는 과부입니다. 5형제를 낳았지요. 아버지가 젊었을 때 돌아가셨는데요 새 가정을 꾸리는 대신에 저희 5남매를 버리지 않고 키워주셨습니다. 그 일이 저는 너무도 고맙습니다. 저는 그분에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너무도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얼마나 두렵고 외롭고 고통스러웠을까? 하지만 바로 그 세월을 통해 그녀는 단단해졌고, 자신의 자리에 서서 5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지내온 그 세월이 그녀를 빚어낸 십자가요, 끝까지 자기 자리에 선 일이 또한 그녀의 십자가였다. 결국은 자녀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어머니가 됐다. 영상을 통해 잠시라도 그녀의 얼굴을 보며 인사했던 시간이 내게는 복으로 남았다. 엄지 손가락 두 개를 세우며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참 놀라운 어머니요, 참으로 아름다운 필리핀 여성입니다!"
주신 십자가를 순히 받고,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 십자가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고마운 도구인가! 십자가 없이 제자가 될 수 없고 제자의 길을 끝까지 갈 수도 없다.
아버지여, 주시는 십자가를 오해하지 않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내게 주신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그 십자가를 통한 비밀한 은혜를 맛보며, 주님이 주신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게 오늘도 붙잡아 주소서. 우리 또한 "잘했구나, 다 이뤄냈구나!" 하는 칭찬을 듣기까지 주신 나의 십자가를 붙들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