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없는 역사는 쉽게 잊힌다. 서구의 기록된 역사에서 필리핀은 1521년부터 등장한다. 포르투갈 출신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필리핀에 도착한 해다. 500년 전이다.
스페인 국왕의 후원으로 3월 16일, 시부에 도착한 마젤란은 곧바로 필리핀을 스페인령으로 선언한다. 원주민들에게 로만카토릭을 전파하여 2주 동안 세부 추장 후말론을 포함해서 800명에게 세례를 주고, 거세게 반발한 막탄섬의 족장 라푸라푸에 의해 4월 27일에 목숨을 잃는다. 그는 선교사요 순교자였던 것인가?
의사 소통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2주 만에 800명의 필리피노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답은 1571년 6월 24일 마닐라를 점령하여 수도로 정하고, 성 어거스틴 성당을 건립한 레가스피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건물인 성당 전면의 왼쪽 방에는 레가스피로 알려진 동상이 하나 있는데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있다.
“칼과 십자가(Conquest and Christianization)”는 스페인의 식민지 전략의 상징이다. 지배하려는 쪽에서는 식민 통치와 선교 정책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칼과 십자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위협적인 메시지였을 것이다. 필리핀에서 제국주의 선교의 시작이다.
부버는 인간 관계를 ‘나-너’와 ‘나-그것’으로 구분한다. 식민 지배 속의 선교는 ‘나-너’가 아닌 ‘나-그것’의 방식이었다. 빵, 의료, 학교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제공되었지만, 이는 사랑의 실천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식민 지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점에서 ‘나-그것’ 관계의 특성을 띨 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선교는 과거와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열흘 전에 벧엘의료봉사팀이 다녀갔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부담을 따라 다녀가면서 오히려 선교에 대한 오해가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의료선교'라는 용어 대신에 '의료봉사'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세일즈맨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만나기도 전부터 ‘나-그것’의 관계를 전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만남도 ‘나-너’의 관계에서 시작되어야 할 때, 영원자 ‘너’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얼마나 더할까?
감사하게도 벧엘의료팀은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선교’ 대신 ‘봉사’를 하기로 했다. 가난한 마을에 사는 친구를 찾아오는 친구이고자 했다. 식민지배가 기록된 역사의 시작인 나라에서 착취와 학대의 기억마저 무뎌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만나는 편에 서고자 했다. 주는 것을 통해 거래하는 대신에 거저 받은 것을 거저 나누고자 했다. 이 변화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해 주셨으리라 생각한다.
놀랍게도 의료봉사팀이 필리핀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노래는 프레디 아길라가 불러 우리 나라만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아낙(아들)’이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집을 나간 둘째 아들처럼, 집을 떠나 방황하던 필리핀의 한 청년이 철이든 어느날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다.
아낙(Anak, 아들)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네가 태어나던 그날 밤
우린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천사같은 너의 모습을 우린 언제나 보고 있었지
밤새 엄마는 너에게 우유를 따뜻이 데워 주셨지
낮엔 언제나 아빠가 니 곁을 감싸며 지켜 주었지
너는 크면서 언제나 말했지
이제는 자유를 달라고 진정한 의미도 모르며 졸랐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변해가는 너에 모습에
우린 너무나 가슴 아파했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버리고
너는 그만 떠나 버렸지(중략)
노래는 마치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아니? 네가 태어나던 날 우리의 마음이 어땠는지. 너를 어떤 눈으로 너를 보며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철없던 네가 반항을 시작하던 때는, 결국 우리를 떠나버렸던 날에는 우리가 어떻게 느꼈는지. 아들아 너는 아니? 방황하는 너를 보며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왜 우리가 너를 생각하며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는지. 너도 그렇지 않냐? 아들아, 돌아와라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너를 기다리는 우리에게로 어서."
한 번도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본 일이 없다가 어느날 문득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본 아들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아버지를 원망하며 떠난 아들이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부른 이 노래가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퍼진 이유는 단순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넘어, 하나님 아버지와 사람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의료봉사'라는 이름으로 네 차례나 와 준 친구들, 어떤 무기를 들지 않은 폭력적이지 않은 손으로 다만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찾아와 준 친구들이 고맙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열방을 향하는 사람들마다 더 이상 ‘칼과 십자가’의 방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너’의 관계로 서로를 존중하며 친구로 나아가는 모습을 꿈꾸며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