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이가 필리핀에서 방학을 마치고 멜버른으로 돌아간 다음 날이었다. 외출하던 길에 숙소 앞에 놓여있는 매트리스를 보았다. 알아보니 원하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사용 중인 매트리스 한쪽이 내려앉아 허리에 불편을 느끼던 차였다. 하지만 사이즈도 크고 무게도 만만치 않아 교체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혼자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마땅히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방은 2층 복도 맨 끝이었다.
포기하면 후회할 것 같아 일단 움직여 보기로 했다. 역시나 무거웠고,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계속 시도하니 그 거대해 보였던 물건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좁은 계단이 최대 고비였으나 한계단씩 오르면서 나름 요령도 생겼다. 마침내 긴 복도를 지나 방에까지 가져왔다. 사용하던 매트리스를 내놓는 일은 이미 운반한 경험이 있어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새 매트리스를 올리고 커버를 씌운 다음 침대에 눕자, 불가능해 보였던 미션을 해낸 성취감이 몰려왔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안정감이 온몸을 감쌌다. 가져오지 않았으면 어쩔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꼭 드는 뜻밖의 선물에 크게 행복했다.
매트리스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쇼핑백처럼 가볍지는 않지만, 가져오면 더없이 값진 것이었다. 처음엔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막상 해보니 가능했다. 난제풀이처럼 시각을 바꾸면 방법이 생기고 마침내는 큰 성취감을 주는 일이었다. 소요된 노동력에 비해 길고 넉넉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다. 수고에 비해 얻은 유익이 참으로 많은 것이었다.
처음 생각을 따라 그대로 지나쳤다면 그 모든 유익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옮기는 과정이 게임처럼 즐거울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시도했으므로 포기만 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후회로 남지 않고 성취로 남았다.
어쩌면 모든 유익하고 의미있는 일이 그렇지 않을까? 현재 주은이에게는 현재의 공부일 것이다. 내게는 이번 의료봉사팀 방문이 그랬다. 제안을 받은 이후 줄곧 버거운 마음이었다. 그냥 지나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행사를 마친 지금은 감사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안 했으면 어쩔뻔 했나 생각한다.
매트리스는 현재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시고 보다 나은 길을 열어주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 다가온다. 문제가 아니라 솔루션을 운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버거운 일이긴 하지만 못할 일은 아니다. 간절한 마음이 준비가 된 사람일수록 물러서지 않는다. 힘써 수고하여 마침내 누린다.
우리의 매일은 매트리스를 닮았다. 시지프스가 조금씩 움직이는 무거운 바위같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다시 굴러떨어지지는 않는다. 나아간만큼 유익이다. 심리적, 물리적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은혜다. 예비하신 선물이 온전히 내 것이 되게 하시고, 흡족하게 하시려는 적절한 공급이요 배려다.
매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약1:17) 온다. 매일의 루틴은 그 선물을 받는 방법이다. 하면할수록 더 나아가리라 결심하게 하는 작은 성취의 경험이 된다.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다. 얻은 후에는 반드시 그 유익을 누리는 매트리스 움직이기다. 감사함으로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