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김 애 자
기온이 그렇게 떨어지고 눈까지 내릴 줄은 예상치 못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겨울날치고는 포근했고, 햇볕도 따사로운 편이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빠른 속도로 바람이 일고, 이어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길을 나서기 전에는 필히 일기예보를 알아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산 밖을 나설 양이면 매번 시간에 쫓긴다.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마른 찬거리며 생필품 따위를 메모하고, 남편의 하루 분 식사까지 준비하고 나면 일기예보를 놓치기 일쑤다. 게다가 곁불 쬐기로 화랑을 둘러보고 영화라도 한 편 관람하고 나오면 나의 귀가는 어둠이 동굴처럼 깊어진 뒤에나 가능하다. 하물며 지금은 겨울이지 않는가.
산촌에서의 고독감은 정체된 일상에서 오는 권태와 대화의 궁핍에서 온다. 대지의 소생력, 그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아무리 빌붙어도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情의 울림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상처를 주고받을지라도 사람이 그립고, 밤이면 불의 강을 이루는 도시의 불빛과 문화가 그리워 때때로 일탈하고 싶은 충동이 도발적으로 일어나곤 한다. 1년에 대여섯 번 서울과 청주로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그 하늘, 그 거리, 그 도시의 문화와 정인들이 나를 반겨 준다.
오늘은 글을 쓰는 친구가 책을 출간하고 모임을 주선한 날이다.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글벗들을 만나며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이런 날 식사는 그야말로 대중공양이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소곤거리며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왁자하게 떠들면서 음식을 입에 퍼 넣는 자리다. 게다가 어디든 약방의 감초처럼 익살꾸러기 한 사람쯤은 끼게 마련이어서, 그의 짓궂은 입담에 홀려 연신 웃음꽃을 터뜨리게 된다.
그런 소란한 분위기에 휩싸여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오늘은 아무리 얘기 장단이 흥겨워도 오래 퍼지르고 있어선 아니 될 처지임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신선놀음을 끝내고서야 ‘아차’ 싶었고 차에 시동을 걸면서부터 불안은 시작되었다. 더구나 스노우타이어를 끼우지 않았으니 돌아갈 3백 리 길이 아득하였다.
거리는 나붓나붓 떨어지는 눈발과 인파로 넘실거렸다. 불꽃같은 혈기의 젊은이들은 눈 오는 밤을 즐기기 위해 밤늦도록 거리로 카페로 몰려다닐 것이다. 나는 꽃의 물결에 부유하듯 떠밀려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들어섰다. 이미 중앙선은 진작부터 없어진 듯싶었다. 제가 알아서 가야만 하는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비상등을 켜고 가능한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의 촉수를 곤두세웠다. 그토록 자주 다니면서 숱하게 보아 온 풍경들이건만, 앵글을 맞추지 못해 사물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곳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생경했다. 내가 초조해 할수록 생경한 풍경들은 더 깊은 정적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해도, 누구 하나 달려와 내 죽음을 안타까워할 리 없는 이색 지대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단절감에 진저리를 쳤다.
그래도 가끔씩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오기도 하고 옆으로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사지에 내몰린 외로운 병사처럼 복병을 피하느라 절절 맸다. 신경의 촉수를 곤두세우고 달천강을 건너 충주에 도착한 것은 청주를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지난 후였다. 평소 한 시간이면 족하던 거리였다.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했고 목이 말랐다. 주유소로 들어가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빼먹고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집까지 가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었다.
다시 시동을 걸고 이번에는 속력을 좀 더 냈다. 아무리 길과 들의 경계가 모호해도 손금 들여다보듯 훤한 곳이어서 운전하기가 수월할 것 같아서였다. 차가 조심스럽게 국도를 벗어나 산읍을 지나고, 저수지 굽이를 돌아 당산나무가 있는 마을 어귀로 접어들자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멀리 회관 앞에 선 가로등이 보였다. 그러나 마을 어귀에 있는 언덕은 밑에서부터 탄력을 받아야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시험 코스다. 도폭이 좁고, 경사가 급해 눈이 오면 트럭도 십중팔구 제자리걸음만 치다가 돌아가는 언덕이 또 한 번 나를 불안케 하였다. 자칫 미끄러지면 개울로 곤두박질치게 될 터, 단전에 힘을 주고 앞을 똑바로 주시했다.
그때 눈 위로 흙이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착시를 일으킨 것은 아닌가 싶어 다시 보았지만 틀림없었다. 그것도 방금 모래를 삽으로 훌훌 뿌려 놓고 간 듯싶었다. 오른쪽 발에 적당한 힘을 가하자 차는 거뜬하게 모래를 타고 언덕 위로 올라섰다.
멀리 불빛 속으로 사람이 보였다. 그가 빈 리어카를 끌고 막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산 밑 작은 집에는 창마다 불빛이 환했다. 집 안에 있는 전등이란 전등은 죄다 켜 놓았던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을까. 청주에서 출발할 때 전화를 했으니 수없이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을 것이었다. 외진 산골에서 홀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쓸쓸하고 따분한 일이다.
그의 쓸쓸함과 따분함과 조바심이 눈에 보였다. 혼자 식탁에서 밥을 먹었을 것이고, 전화기로 수없이 눈길을 보냈을 것이다. 불면을 밝히는 초조함이 자정을 넘자 결국 리어카에 모래를 싣고 이 길로 나왔을 터였다.
언덕 위에서 차를 세우고 라이트를 껐다. 아직도 눈꽃이 나풀나풀 산의 등고선은 물론 회화나무 숲이며 온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잠시 바람의 현을 타고 일렁이는 꽃송이들, 그 순결한 성채가 산 밑 작은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만나 더 희게 빛나고 있었다. 그 희고 맑은 빛 속에서 한 남자가 현관문 앞에서 머리와 옷에 붙은 눈을 털고 다시 한 번 길쪽으로 눈길을 보내는가 싶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눈길에 선명하게 찍힌 리어카와 그의 발자국, 불빛 속에서 움직이는 동작 하나 하나를 지켜본 나는 핸들을 잡고 있던 손등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2001년 겨울
첫댓글 이렇게 눈소식이 푸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염려가 되는 날들,
김애자선생님의 '눈길'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 받은 감동이 컸던 기억에
다시 한 번 읽어보며 필사를 해봅니다.
다시 보니 오타가 나 고치면서 한 번 더 읽습니다.
전에 스승께서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하라고 하실 때는 속으로
'언제 그러고 있을까요' 했는데
그 깊은 뜻을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여자는 말합니다 고맙구요 미안해요 오직 나만 아는 사람아 ㅋㅋㅋ
측은지심~ 늙은 남자를 미워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