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이들 가운데 현실 세계가 전부인 줄로 아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성적인 판단을 앞세운다. 하지만 현실은 하나님의 세계의 일부다.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던 길이 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길이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롬 4:18)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제하는 세계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8)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 된 우리에게 잠깐 있다 사라지는 이 세계에서 영원히 있는 그 세계를 경험시켜 주고자 하신다. 많은 경우 막다른 길은 바로 아버지께서 초청을 위해 완벽하게 조성하신 환경이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상황은 누가 봐도 막다른 길이다. 눈앞은 바다, 뒤로는 애급 군데. 모든 상황은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확증한다. 뭐라도 보이면 시도라도 해 보겠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것은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상황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미 새로운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초청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모세는 기도한다.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제발.” 하나님은 알아서 해주시는 대신에 말씀하신다. “네가 서라.” “예?” “네가 서서 지팡이를 내밀어.” “그런다고 무슨…”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출 14:16)
다른 길이 없는 그가 사람들 앞으로 나서서 말씀하신 대로 홍해 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내어민다. “이런다고 무슨 일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다는 그 발아래에서 쫘악 갈라진다. 누가 모세처럼 놀랬을까? 보기는커녕 들어본 일조차 없는 일이다.
얼마 전에 제리가 그랬다. "한국의 손님들이 공항으로 가는 길에 너의 대학을 보길 원한다. 그 길을 준비하고, 대학 안의 박물관도 볼 수 있도록 움직이면 좋겠다.”는 말에 제리의 눈빛이 흔들리고 머릿속이 이내 하얘지는 것이 내 눈에 선명했다.
무리가 아니다. 필리핀에서 사전 예약이나 허락 없이 대형버스로 학교를 투어 할 수 있는가? 더욱이 토요일에는 규정상 열지 않는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제리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 그는 말하고 있었다. “목사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방문팀에게 그 사정을 알리고 난감해하는 제리 곁에 섰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그에게 세 가지 조언을 건넸다. 먼저, 네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라. 그는 그 대학의 학생이 아니라 교수였고, 혁신센터장으로 일하는 중이다. 그들의 호의를 구하기보다는 협력을 구할 수 있는 위치다. 다음으로 결정권자가 누구인지를 찾아라. 마지막으로 어떤 손님들인지 소개하고 이 일이 학교 측에 얼마나 큰 유익이 될 것인지를 나누어라.
애굽왕 바로 앞에 선 모세가 그랬을까? 자신이 누군 줄 알고,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 줄 안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통화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니 표정은 차분하지만 당당하고, 목소리는 겸손하지만 힘이 느껴졌다. 결국 제리의 요청에 결정권자들은 하나 둘 동의하기 시작했고, 서로 의논했다. 마침내 거대한 철문 같던 학교의 규율과 박물관의 관람규정도 열렸다.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제리는 자신의 발 앞에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으므로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이 됐다. 방문팀은 제리의 안내를 받으며 학교 투어를 했고, 박물관도 돌아봤다. 할 수 없다, 안 된다고 한 학교의 규정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제리의 확신도 다 치워진 일이었다.
피하여 숨고 싶었던 제리를 통해 여신 길로 나아간 방문팀은 홍해바다를 마른땅을 딛고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흥겨워했다. 길은 보이지 않았으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은 분명 거기에 있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로운 이야기요 선물이었다. 제리나 방문단에게나 3D나 4D 영화관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고, 어떤 과학기술로도 흉내 낼 수 없는 황홀하고 신비로운 실제의 경험이었다. 우리를 그 세계로 인도하신 아버지의 일하심이었다.
큰 열쇠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크든 작든 열쇠는 작동한다. 그 열쇠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그 열쇠에 맞는 문들을 앞에 두시고 열어보라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예비하신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어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