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 점고(點考) / 김옥순
내 어쩌다 방귀 한 번 잘못 뀐 죄로 톡톡히 망신당한 지 7일째라. 눈앞에 약수터의 산책길이 아른아른, 삽상한 가을바람에 코는 벌름벌름, 온몸은 근질근질. 그 남자와 마주칠 때 마주치더라도 자꾸만 산에 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노르것다. 기어이 산에 가고야 말것다.
일주일 전 오후 5시, 어느 때와 다름없이 야트막한 산을 세 바퀴째 돌던 날.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느라 주의를 기우릴 틈이 없었던 차, ‘뿌웅~ 뿡’ 큰 소리가 울렸으니. 제 방귀에 놀란 강아지마냥 깜짝 놀라 사방을 살펴보니 맙소사, 열 발짝 뒤에 작달막한 키에 등산복을 입은, 가끔 마주치는 남자가 뒤따라오고 있었것다. 내 눈과 그의 눈이 딱딱 마주친 순간 그는 아조 묘한 웃음을 보였으니. 도둑놈 제 발 저린다고,
‘칠칠치 못한 여편네, 제 괄약근 하나 건사하지 못해 허둥대는 꼴이라니’
조롱하는 것 같았것다. 방귀 뀐 놈 성낸다고 그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젊은 놈이 직업도 없나, 지금쯤 열심히 일해야 할 시간에 산이 다 뭐당가. 제 여편네 고생시킬 놈.’
되지도 않는 역정을 부렸으니 앞으로 세 바퀴를 더 돌아야 한 시간을 채울 텐데. 쥐구멍에 숨을까. 갈참나무 뒤에 숨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숨을 곳 마땅치 않으니 이럴 땐 줄행랑을 치는 게 상책이라. 내 어찌 그 수치스러웠던 순간을 잊을 수 있으리오.
방귀란 원래 ‘후안무치’한 놈이라. 낯가죽 두껍기는 두텁떡이요, 염치없기는 계란지단이라. 크고 작은 소리로, 냄새와 강도로 능수능란하게 변신하는 카멜레온이라. 말쑥하게 잘 차려입은 신사라도 그 놈 한방이면 한순간에 형편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니, 그런 촐랑거리고 가벼운 놈을 어찌 두고 볼 수 있으리.
손님만 오면 징징대며 보채는 어린애처럼, 내둥 조용하다가 산에만 가면 뽕뽕뽕,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아 낭패를 주는, 간땡이가 큰 방귀 놈을 끌어내어 멍석말이를 해도 시원치 않거늘. 방귀 왈, 나 죄 없소. 때맞추어 가스를 배출하는 건 나의 임무인데, 직무유기란 턱도 없지. 내 한 가지 묘수를 일러주리라. 모든 일에는 다 원인이 있는 법, 주범을 소탕하시오. 옳거니, 이 잡것들을…. 두 눈을 부릅뜨고 주방으로 종종걸음을 쳤것다.
요기가 바로 놈의 소굴이렸다. 기생 점고를 하는 변학도의 심정이 되어 냉장고 문부터 열어젖혔다. 뽀옹~ 뽕, 미스 우유의 방귀는 냄새가 없다. 우유를 먹고 마시고 바르고, 피부는 탱글탱글 매끈매끈, 뼈도 튼튼, 몸매는 S라인, 얼굴은 V라인 사뿐사뿐 걸어 나오는 미스 우유. 네가 방귀의 주범이지? 별꼴이야 나는 아이어라. 뼛속에 바람 들어 구멍 숭숭 뚫릴까봐 도와주는 것도 죄가 된다요?
서리태 양이 방귀를 뿡뿡 뀌며 나온다. 콩알같이 미미한 냄새다.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얼굴은 동글동글. 까만 빌로드 드레스 입고 까불까불 걸어 나와 한 바퀴를 돈다. 긴 생머리를 쓸어 넘기며 핼끗핼끗 쳐다보았것다. 네가 주범이냐? 아니오. 나는 아니오. 나는 신토불이요. 우리 몸엔 우리 것이 최고랑게.
빠바방~, 구린내를 폴폴 풍기며 싸목싸목 걸어 나오는 보리쌀군. 누렇게 뜬 얼굴에 쪽 째진 눈은 실쭉셀쭉, 엄지손가락을 치켜 보이는 게 무슨 메시지가 숨어 있으렷다. 아무리 봐도 냄새가 나는지라 너로구나?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나는 절대 아니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율무도 있는데.
따다다 피식 픽~, 꼬리가 길다. 지독한 냄새다. 얼굴은 길쭉길쭉 피부는 붉으족족 방뎅이를 흔들며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오는 고구마여사. 옷 입은 꼴 좀 보소 어울리지도 않게 배꼽티가 웬 말이냐. 뭐라꼬? 변비에 너 만한 게 없다고? 믿을 수 없다. 바로 너지? 어마, 뜨거라 진짜 억울하오. 생사람 잡지 마시오.
요것은 곰보도 있고 째보도 있다. 개성이 강하다. 공갈빵 앙꼬빵 잉어빵 휘적휘적 걸어 나오는 빵빵한 아줌마. 살점은 피둥피둥 목소리는 능글능글, 하는 일도 없이 흑설탕 황설탕 온갖 단 것 다 먹었다. 네가 주범이지? 절래절래 고개를 저어가며 아니오 아니오 아뇨 니오 니오 기오 기오? 그럼 그렇지 네가 적이 분명코나. 나랏돈 먹어가며 물 건너서 온 것이 바구미도 못 살게 해? 내 너를?
빵빵한 아줌마를 때리고 두들기고 옆차기 앞차기 어퍼컷레프트 훅 라이트 훅을 날렸다. 보다 못한 주범들이 모두 달려들어 한 목소리를 내었으니, 쇤네들은 정녕 억울하오. 지금까지 건강을 지키고 있는 데 다 누구 덕인데.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방귀는 알랑방귀요.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와 아부하는 냄새가 더욱 구린 알랑방귀?
옳다구나. 그래, 니들 말이 다 맞다. 내가 어저께 그 놈을 만났니라. 때는 점심시간, 놈은 형님 옆에 찰싹 달라붙어 던적스러운 짓을 했느니라.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흘려가며 형님 어깨를 주물러 주더구나. 알랑방귀로 공을 세워 잘 나가는 놈도 많지만, 자존심까지 내동댕이치고 아부하는 꼴이란 눈꼴시어 못 보것다.
비루한 웃음으로 비굴하게 아첨하는 알랑방귀라. 너냐? 이실직고하면 목숨만은 살려준다. 모르시는 말씀, 때론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해야 출세하는 세상이오. 자신이 잘못한 일을 순순히 인정하는 사람도 드물거니와, 높은 사람 면전에서 바른 말을 했다간 한순간에 미운털 박히기 십상이오. ‘아부의 기술’은 읽어 보셨나?
저마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발뺌을 하니 주범을 소탕하는 건 헛일이 되었것다. 곰곰 생각하면 한순간 방심했던 내 잘못이라. 하다못해 돌부리에 넘어져도 돌 ‘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때문에’라며 핑계 대는 나의 버릇. 내 마음 하나 잡도리 하지 못하고, 어쩔끄나, 이 망신을….
방귀를 치료하려면 맴보를 곱게 써야 쓰것다. 내 속이 편하지 않아 소화가 안 되어, 죄 없는 니놈들에게 퉁바리를 주며 뒤집어씌우려 했으니 부끄럽구나. 참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