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탁상달력을 다이어리로 쓴다. 회사에 다닐 때는 매년 ‘몰스킨(moleskine)’ 브랜드의 데일리 다이어리를 구매해 꾸준히 스케줄을 기입했는데 깔끔한 까만 커버에 내지도 심플한 디자인이어서 메모하기가 편했다.
보다 젊은 나이였을 때는 시중에 나온 각양각색의 다이어리 중에 내 것을 고르는 재미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항상 써온 다이어리를 별 고민 없이 재구매하면서 즐거움보다 편안함을 추구하게 되었다. 서점 주인이 된 후부터는 그마저도 시들해져 아예 다이어리를 구입하지 않았다. 전에는 그날의 업무 계획이나 회의시간에 나온 아이디어 등을 적곤 했지만 이젠 다이어리에 꼬박꼬박 메모해야 할 만큼 긴박하게 돌아가는 일이 없어졌다.
올 초에 야심차게 가계부도 샀지만 한 페이지도 쓰지 않고 한 해가 가버렸다. 대신 다이어리가 아닌 탁상달력에 일정을 적기 시작했다. 일정이라고 해봤자 원고마감, 강연, 녹음, 녹화 같은 재미없는 일들뿐이지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손으로 한 번 더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대외적으로 약속된 일과 함께 공과금 납부일, 보험료 입금일, 아이 학원비 지급일 등을 써놓는다. 이제는 책방에 출근해 자리에 앉자마자 달력을 훑어보며 일과를 체크하는 게 빼놓을 수 없는 루틴(routine)이 되었다.
다양한 스마트폰 앱이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펜으로 할 일을 적고 그 일이 마무리 되면 달력의 엄지손톱만한 날짜 칸에 커다랗게 ‘X’ 자를 표시할 때의 후련함은 차가운 기기를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나의 2020년 달력에는 전년보다 여백이 훨씬 많았다. 상반기에는 두 권의 단행본 마감과 출간, 브랜드와의 슬로건 작업 등의 업무들이 듬성듬성 적혀 있고 하반기에는 코로나19 확진 양상에 따라 취소되거나 온라인 강연으로 바뀐 표시들 때문에 지저분해지기도 했다. 때로는 스케줄 조절에 실패해 일주일 내내 외부 일정으로 책방을 못 여는 날도 있었고 바쁜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고대하던 시기도 있었다. 걱정했던 일들이 무사히 끝나면 책상 의자에 앉아 탁상달력을 손에 들고 펜으로 ‘OK’를 쓰는 것으로 자축하곤 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지면서 어린이집도 휴원해 일주일 동안 집에만 있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책방에 출근하는 것이 무리여서 어쩔 수 없이 휴업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자연스레 책상 위 내 달력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올해는 다이어리에 애정과 관심을 쏟지 못했으리라. 갈 수 있는 곳이 줄어들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제한되면서 텅 비어버린 날짜 칸만 남겨지지 않았을까. 원치 않게 증발해버린 우리의 시간들을 어디서,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
며칠 전에 열두 살 조카아이가 했던 말에 가슴이 아팠다. “이모, 2020년은 없었던 걸로 하고 한 번 더 2020년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5학년을 다시 즐겁게 다니는 거지.” 2020년을 무효로 치고 싶은 마음은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인이 같을 것이다. 나 역시 인생에 빈 공간으로 남은 마흔 한 살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이뤄질 리 없는 상상을 하며 잠시나마 설렘에 빠졌다.
어제는 오랜만에 책방 문을 열었다. 책상 한편에 덩그러니 놓인 탁상달력이 새삼 반가워 12월부터 거꾸로 한 장씩 넘겨보았다. 바이러스가 앗아간 시간 속에서도 의외로 많은 날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무사히 해내고 살아남아 있었다. 특별한 계획이 아니었더라도 ‘가족과 김치찌개 만들어 먹은 날’ ‘아들과 애니메이션 감상한 날’ ‘남편과 오랜만에 둘만의 맥주타임을 즐긴 날’까지 합해본다면 공중 분해됐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다시 내 삶 속으로 살아 돌아올는지도 모른다.
2021년 탁상달력을 선물 받았다. 지난 한해는 조용히 다독여 보내주고 새해는 보다 의미 있는 시간들로 채워지길 소망한다.
이유미(에세이스트) 8년 넘게 총괄카피라이터로 일했던 ‘29CM’을 퇴사한 후 안양에 책방 ‘밑줄서점’을 열었습니다. 《자기만의 (책)방》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등을 펴냈으며 브런치에 ‘소설로 카피 쓰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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