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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밤바다 方 旻 여수엑스포역에 내리니 봄비가 앞을 가린다. 예보가 이렇게 잘 맞기도 쉽지 않은 일, 정확성에 놀라기보다 오늘만 맞히는 배신감이 얄밉다. 혹시나 해서 챙겨온 우산을 펼치고 빗발을 헤치고 걸음을 뗀다. 여수 땅 첫발에 환영 의식치곤 쪼금 거시기 하다.
역 앞 광장 한편에 비 맞고 있는 관광안내소가 보인다. 벌써 재바른 사람 두엇 무언지 묻는다. 그때 들려온 말, 지금 바로 관광투어버스 1번이 떠날거니 서둘러 가보세요. 안내인 말을 훔쳐듣고 바다 쪽 도로에 정차한 버스 두 대를 향해 빗속을 내달린다. 비가 뿌려 달려들었지만 반가운 인사를 하나보다 내비쳐 두고서 바람 속을 뚫는다.
두 대 중 앞쪽이 1번 코스 운행버스다. 여수 관광 핵심인 오동도와 돌산도 향일암을 돌아오는 일정이다. 다른 패보다 걸음이 빨라 일착으로 버스에 타려는데, 문 앞에서 막는다. 이미 예약 손님으로 좌석이 거의 차고 두엇 맨 뒷자리만 남은 상황. 걸음이 느렸으면 다른 방식으로 돌아야 할 판, 우산 접고 사람 당 1만5천원을 내니 승차를 허용한다. 통로를 지나 높다란 후미 좌석에 배낭을 내린다.
결혼기념일 맞이 남도 여행길, 애초엔 목포에 가보려 했다. 지금은 잠잠해 졌지만 한동안 여자 국회의원이 주인공으로 방송과 신문지면을 떠들썩하게 했던 곳. 오래 전 풍경이 남아 있다는 그 거리를 손잡고 돌아보곤, 세발낙지 연포탕을 후루룩 거리며 지나간 슴슴한 부부 살이 맛과 비교해보려 했다. 산 낙지 회 안주 삼은 소주 한잔과 더불어 신혼 시절을 잠시 회상해보고도 싶었기에.
목포보단 여수에 가자고 아내가 여행지를 바꿨다. 여수 밤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다. ‘여수밤바다’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다. 한 두어 번 들었지만 선율과 가사가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노랫말 중에 여러 번 반복하는 ‘여수♬ 밤바다♪~’만 귀에 들어 왔다. 여수밤바다가 그런 이미지로만 남았는데, 아내는 다른가 보았다. 한 서린 ‘목포의 눈물’과 애달픈 유달산을 제쳐두고 말이다.
서울에서 여수는 1일 관광으로도 오동도와 향일암, 엑스포 광장 정도는 즐길 만하다. 이른 시각 떠나는 KTX를 이용하면 아주 늦지 않게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 아내가 밤바다 얘기만 안 했다면 그리 했을 거였다. 당일 여행을 1박2일 일정으로 변경한 것은 오직 그 때문.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들었지만 안 맞는 게 더 많은 기상청을 또 기대해보기로 하고 나섰던 길.
관광버스 타고 안내사의 남도 사투리 섞은 해설 들어가며 오동도 동백나무 숲길을 걷는다. 님 기다리다 지쳤나 동백꽃은 떠나고 잎 사이로 흔적인양 목판에 새긴 시 구절만 비에 젖어 애처롭다. 오동도 앞바다에 내리던 비는 가림 막 치고 보수중인 진남관 앞과 박물관까지도 따라온다. 봄비 치고는 끈질긴 왜 적선처럼 따라 붙는다. 이순신 광장 충무공상의 근엄함에도 기죽지 않고, 근처 먹거리 골목에서 게장 백반을 먹고 나와도 여전히 성깔 사납다. 이건 미처 몰랐지라 놀리듯, 해산물 시장에서 잔멸치를 사고 나서도, 관광버스를 탔던 역 앞 광장으로 돌아왔을 때도 여수의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징글맞게도.
점심도 맛깔나게 돌산 갓김치와 든든히 먹었겠다. 오후 시간이니 비도 이젠 지쳐 쉴 때가 되었기를 빌었다. 닦아도 도로 뿌옇기만 한 버스 안 차창 너머로 보일 듯 사라지는 여수 바다를 흘끔대며 바라보기도 지쳤다. 향일암에선 부처님의 가피에 희망을 품어보기로 하는데, 천연 바위굴을 지나 당도한 법당 벼랑 아래로 바다는 여전히 비에 젖고 있었다. 흐릿한 하늘 아래 바다가 있건만 몰아치는 비 비람은 떠나길 재촉했다.
관광버스가 서는 곳에 갈 때면 모처럼 찾아온 서울 나그네를 위해서 한번쯤 너그럽게 인심을 쓸 줄 알았다. 넉넉한 전라도 인심을 내리는 빗줄기한테라도 기대보려 했다. 왜적을 물리칠 때는 세찬 물결로 혼을 빼지만 인정을 베풀 때는 동백꽃 화사한 낯빛으로 방글대며 푸짐하게 베푸는 게 남도의 풍정이 아니겠는가. 넉넉한 물산만치 인심도 따라다니지 않았던가.
밤바다는 빗줄기 따라 멀어진다. 혹시나 하던 기대는 시야에서 흐릿하다. 예상한 설렘은 떠나고 아쉬움만 소주잔에서 찰랑댄다. 돌아본 30여 년 결혼 생활도 여수 밤바다처럼 기대한 것을 선뜻 보여주지 않았다. 후일을 기약하며 더 공을 들여야 하겠지…. 아내의 허전한 낯빛과 밤비 내리는 창밖을 번갈아보며 빈 잔에 술을 따른다. |
첫댓글 방민 교수님 반가워요.
참으로 부러운 여행, 부러운 글을 남기셨네요.
방민 선생님 반갑습니다.
징글맞게도..계속 비가 왔었군요.결혼 기념일에.
방민 교수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와서 된장찌게 맛도
느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