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입력 2023.08.28 10:00 수정 2023.08.28 13:14
존엄사 선택 증가세…찬반 논란은 여전
6개월 시한부 말기 환자만 문 열려
약물 처방 받은 환자중 65%만 실행
"고통 대신 행복 선택해야" 적극 찬성
종교계 "신의 영역 안돼" 극력 반대
가주 존엄사법이 시행된지 8년째지만 아직도 찬반으로 나뉘어 거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해마다 치사약물을 처방받는 환자는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지투데이]
가주에서 존엄사법(End of Life Option Act: ELOA)이 시행된 지도 벌써 8년째다. 지난 2016년 발효된 법안에 따라 수 천명이 죽음을 선택한 가운데 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본지 8월 16일자 A-1면, 17일자 A-3면〉 특히 약물을 처방할 수 있는 의사들도 찬반으로 나뉘어 논쟁 중이다. 이제까지 현황을 알아본다.
◆존엄사와 존엄사법
가주 존엄사법(ELOA)은 2016년 발효됐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을 존중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법안이다.
존엄사는 나라와 문화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안락사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다. 특히 가주 존엄사법의 경우, 원래 '선택적 안락사(aid-in-dying)' 혹은 '능동적 안락사'에 관한 법안인데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로 명확한 번역이 어렵고 길고 복잡해서 그냥 '존엄사법(ELOA)'으로 부르고 있다. 반면 '수동적 안락사'는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가족들이 동의 하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무의미한 추가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좁은 범위의 존엄사로 일반적으로 존엄사라 하면 이를 말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수동적 안락사와 더 좁은 의미의 존엄사를 구분하기도 한다. 가주에서는 '존엄사법'이라고 쓰고 '선택적 안락사를 실행하기 위한 법률'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가주 존엄사법을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안 적용조건을 따져보면 명확해진다. 우선 18세 이상의 가주 거주자여야 한다. 타주 거주자가 '극약 처방'을 위해서 가주 의사를 만난다면 안된다고 볼 수 있다.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 환자여야 한다. 6개월이나 시한부라는 것이 의학적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최소 2명의 의사로부터 판정을 받아 처방을 받아야 한다. 당뇨 같은 일반 불치병은 제외된다. 또한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여야 하는데 누군가에 의해서 떠밀리 듯 의사에게 잘못된 요청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6개월 시한부 말기 환자로 자신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를 원해 2명의 의사에게 극약 처방을 받아 이를 시행하는 것이다.
반면 '적극적 안락사(active euthanasia)'는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것으로 존엄사법과는 거리가 멀다. 가주에서는 불법 의료행위다. 안락사는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뜻이지만 한국, 미국, 그외 여러나라에서도 불법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실제 의사들조차도 존엄사와 안락사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안락사를 동의 여부에 따라서 다르게 분류하기도 한다. 환자가 처방약을 먹거나 의사나 법이 허락하는 의료인이 환자의 요구대로 극약을 주사하는 '자의적 안락사'와 환자의 동의 없이 극약을 주입하는 '수동적 안락사'가 있다. 수동적 안락사는 살인으로 해석하는 나라도 많다.
◆가주 법 제정 경과 및 결과
2016년 6월9일부터 가주 존엄사법(ELOA)이 시행됐다. 당시 가주는 오리건(1994년), 워싱턴주(2008년), 몬태나(2009년), 버몬트(2013년)에 이어 전국에서 5 번째로 존엄사를 허용했다. 현재는 이들 외에도 워싱턴DC, 뉴저지, 뉴멕시코, 버몬트, 콜로라도, 하와이 등 총 11개 주에서 시행하고 있다. 2022년1월1일부터는 개정된 가주 존엄사법이 시행되고 있다. 약물 신청 기간이 15일에서 48시간으로 크게 단축됐다. ELOA에 따르면 ▶18세 이상의 가주 거주자 ▶환자의 기대 생존 기간이 6개월 이하라는 의학적 판단 ▶치사 약물을 처방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의사 2명으로부터 정신적으로 결정 능력이 있음을 확인 받아야 한다.
가주에서 2022년 853명이 존엄사를 선택했다. 전년 522명에 비해 331명(63%)이나 늘었다. 최근 4년간 추이는 423명(2018년), 497(2019), 496(2020), 522(2021)이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지만 증가세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이런 결과는 가주공공보건국이 발표한 '2022 연례보고서'에 나타난다. 2022년 가주에서는 1270명이 ELOA에 따라 치사 약물을 처방 받았고 이중 853명이 실제 약물을 복용해 사망했다. 처방 받은 환자 10명 중 7명이다.
보고서 본지 분석 결과, 지난 2016년부터 가주는 총 5168명이 약물 처방을 받았고 이중 3349명이 약물 복용 후 사망했다. 역시 처방자 중 65%가 존엄사를 선택했다. 인종 별로 보면 백인(2951명.88.1%)이 가장 많고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210명.6.3%), 히스패닉(116명.3.5%), 흑인(28명.0.8%) 등의 순이다. 한인은 21명이다. 아시아계만 보면 중국계(90명), 일본계(32명)에 이어 3번째다. 연령 별로 보면 70~79세(1048명.31.3%)가 가장 많았으며 60세 이하도 345명(10%)을 차지했다.
말기 질환별로 보면, 2291명(68.4%)이 폐, 췌장, 전립선 등의 말기암 환자였다. 신경계통 환자(351명.10.5%)이었으며 이중 루게릭병(202명), 파킨슨병(61명)이 가장 많다. 이외 대졸 이상은 1714명(51.2%), 남성이 1703명으로 여성(1646명)보다 많았다. 대부분이 가족의 동의(2875명.85.8%)를 얻었고 자택(3028명.90.4%)에서 생을 마쳤다. 대다수가 존엄사 신청을 메디케어 또는 의료 보험(2384명.71.2%)을 이용했다.
◆찬성론
법안에 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은 무엇이 더 인도주의적인 것이냐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도 중요하지만 존엄도 중요하다고 보며 인간답게 살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고 불치병으로 인한 고통이 투병 중일 때보다 더 크다면 이를 멈춰 주는 것이 더 인도적인 것이라는 논리다.
법안을 실제로 통과시키고 시행하는데 큰 역할을 한 찬성 측은 말기 환자의 가족이거나 이들을 바로 옆에서 치료했던 의료진이다. 찬성론자 중에 암전문의, 너싱 홈 관계자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다. 법안을 이끈 비영리 단체도 고통이 극심한 환자를 지켜보다가 법안 제정에 나섰고 25년 만에 법제화시켰다고 알려졌다. 한 찬성론자는 "존엄사는 자살 방조가 아니라 환자에게 의료 행위의 선택권을 넓혀준 것"이라며 "법에 대한 진실을 널리 알리겠다"고 밝혔다.
◆반대론
법안을 반대하고 폐지하자는 소송이 지난 4월에 제기된 바가 있을 정도로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찬성측에 의료진이 많듯이 반대측에도 의료진이 많다. 이들의 주장은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치료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6개월 시한부, 말기 환자에 대한 판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예측이 50%는 틀린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고통은 고통 치료 전문가들에 의해서 경감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견해다.
다른 견해는 '고통 경감'을 핑계로 보고 있다. 뒤에는 돈을 절약하기 위한 의료 시스템의 교묘한 방법의 살인이라는 것이다. 상당수의 말기 환자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의료 시스템에서 치료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먼저 시행되고 있는 나라들이 의료 시스템이 효율적이지 않은 북유럽 국가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는 12세부터 존엄사가 가능해 실제로는 인권 침해 문제로 보고 있다.
한 종양 관련 전문의는 "대상자가 결국 가난하고 늙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로 몰리는 최악의 상황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장애인의 삶은 무가치하다고 믿는 사회적 인식, 우생학적 관점으로 의심하기도 한다.
또한 환자 중 상당수가 남은 가족들에 대한 배려로 존엄사 선택을 도모한다는 의견이다. 말기 환자의 경우 대부분 회생 가능성이 높지 않은데 병원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나오고 가족들이 환자에 매달려 생계에 어려움이 있어 환자가 오히려 가족을 걱정하며 선택한다는 것이다.
반대론의 가장 강력한 그룹은 역시 종교계다. 가톨릭의 경우 '신의 영역'이라며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고 개신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절대자에 의해서 주어진 생명을 그렇지도 않은 인가들이 종료 시킬 권리는 없으며 누구든 서둘러 사망하게 하는 것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가주 존엄사법에 따르면 병원 등 의료 시설은 고용한 전문의에게 약물 처방을 금지할 수 있다. 가주 전체 병원의 13%를 차지하는 가톨릭 및 개신교 관련 병원들이 그렇다. 개인 클리닉 역시 처방하지 않아도 되며 상담조차 거부할 수 있다.
장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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