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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 方 旻
된장으로 간했는데 새우젓을 왜 넣느냐 그런다. 다른 날은 안방에서 침대와 기나긴 사랑을 즐기고 있을 아내가 오늘은 일찍 나와 참견한다. 어제와 다른 된장찌개를 끓이는 중인데 내 식이니 그냥 두라고 달갑지 않게 대한다. 조금 더 맛난 된장찌개, 딸한테 인정받을 찌개를 지금 주방에서 맘껏 시도하는데.
아침상 요리 품목을 하나 더 추가하는 실습인 셈. 어쩌면 아내보다 더 많이 했을 계란찜은 벌써 전자레인지에서 익어간다. 냉장고에 보관한 쌀뜨물을 냄비에 쏟고 육수로 쓸 멸치를 넣어 가스 불에 앉혀 놓고, 바로 계란 풀어서 레인지에 넣어 놓았다. 계란 개수에 따라 4분 30초에서 6분 30초, 시간만 다를 뿐 내용물과 방식은 같으니 능숙하게 마치고 본 요리인 된장찌개를 막 시작했는데 아내가 곁으로 다가온 거다. 아직 꿈속에서 노닐 시간인데 웬일인가 싶다. 사람이란 간혹 안 하던 짓도 하고 평소와 다른 일도 벌이지만 예외 상황인건 맞다.
계란찜도 아내가 오래 전 가르쳐 주었다. 그것에 TV에서 언젠가 계란찜 고수가 그만의 방법을 방송할 때 보아둔 것을 가미해서 요리한다. 계란 풀어 물 넣고 저을 때는 거품 일게 하라는 것이 요체였다. 가스 불 조절도 있지만 그것만 받아들였다. 그런데 계란찜 하며 아내와 다른 게 있다. 아내는 소금 간을 추천하지만 나는 반드시 새우젓 간을 고집한다. 그것도 아내는 소금 넣어가며 계란 푼 간을 보지만, 나는 새우젓을 대략 넣을 뿐 익기 전 간은 안 본다. 그래선지 간이 약하거나 세 식구들이 먹으면 각각 입맛대로 품평한다. 하지만 나에겐 언제나 맛나다.
된장찌개 요리도 아내가 알려주었다. 언젠가 여행가면서 재료를 사다 두었으니 한번 해보라 하였다. 순두부찌개도 그때 곁들였는데, 아주 간단하였다. 찌개용 순두부와 거기 넣는 국물까지 포장한 재료를 모두 판다. 재료 봉지에 쓴 설명대로 뚝배기에 쏟아 넣고 적당히 끓이면 되는 정도여서 요리랄 것도 없다. 된장찌개는 그보다 손이 더 가기에 요리라 이름 붙여도 될 듯하다. 그 때 가르쳐 준 대로 된장찌개를 만들었는데 그냥저냥 먹을 만했다. 혼자 먹어 그랬는지 제 맛 취해 그랬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어제는 옥상에 올라갔더니 들깨가 웃자라 철쭉을 가린다. 나이 많은 철쭉을 위해 경로석 마련은 아니지만 볕을 가리는 깨를 잘랐다. 자르고 보니 먹을 수 있는 깻잎이 보여 몇 장 따왔다. 쌈 싸먹으려 했는데, 된장찌개에 넣으면 맛이 상큼할 것 같았다. 몇 장 썰어 넣어 함께 끓였다. 딸에게 무슨 맛이냐 물었더니 깻잎 맛이 조금 난다 하였다. 그런데 된장찌개에서 된장 맛은 거의 안 나는 게 문제다. 깻잎 향도 날듯 말듯 하다. 냄새가 서로 강한 된장과 깻잎이 물로 섞이고 불에 끓이니 본래 향이 사라져버렸다. 이도저도 아닌 심심한 맛이 되었다. 남녀가 결혼하여 물탄 듯 뒤섞이고 불처럼 다투며 수십 년 살다보면 각자 성깔이 눅어진 것처럼. 사람살이는 그게 좋지만 음식은 그러면 못쓴다.
예정에 없던 된장찌개를 오늘 다시 끓이게 된 이유다. 전날 실수를 만회하여 더욱 맛나게 요리하고 싶어 나선 참. 간 보는데 왜 찌개에 새우젓 넣느냐고 또 한 마디 한다. 자기 방식과 다른 요리법에 대한 충고였을까 싶기도 하지만 혹시 영역을 침범당한 것으로 견제하는 것은 아닌지 살짝 의심 안개가 피어오른다. 별다른 볼 일도 없는데 아내는 주방을 떠나지 않고 이리저리 얼쩡댄다. 다른 날이면 잠자고 있을 시간인데, 깨기 전에 몰래 끓여 살짝 먹으려다 꼭 들킨 꼴이 되어 버렸다.
아내보다 된장찌개를 혹여 더 잘 끓이게 된다면 어찌될까. 간혹 찌개 요리권, 아니면 요리 임무를 넘길까. 쓸 데 없는 상상인지 공상인지 찌개가 끓을 때까지 마음 정하지 못하고 주방 앞에서 서성인다. 이러다 된장찌개 전문 식당 개업으로 발전하는 건 아닌지, 이제 요리사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될지 모를 일 아닌가. 망상은 크게 날아올라 뻥하고 터질듯 부푼다. 찌개 국물 넘치는 줄도 모르게 빠져 있다. 아내가 화급히 소리쳐 서둘러 뚜껑 열고 가스 불 줄인다.
야생 포식자는 자기 영역이 있고 그걸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다. 사람 동물 둘이 한 공간에서 사는 가정도 그렇잖을까. 어쩌면 설핏 아내 영역을 은연중 침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잔소리란 실상 그에 대한 경고 언어일지 모른다. 아내는 지금 무의식 어느 구석 모퉁이로부터 약간 불편함과 경계를 내비치고 있는 지도. 된장찌개 실험을 더 해야 할지, 이쯤에서 그쳐야할지 헷갈리며 콕을 잠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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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방은 언제든지 넘봐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다른분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저희는 남편이 요리를 더 잘하기 때문에 남편에게 주방을 넘겼습니다. 잘하는 사람이 해야 맛있어요. 솔직히 하기도 싫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