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조간신문을 뒤적이다가 한 전면 광고 문구에 눈길이 갔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모자’
종이섬유(타이벡)로 만든 모자로 무게가 55.8그램이라 했다. 55.8그램?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새우깡 반 봉지의 무게’라는 부연 설명에 그 가벼움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카펠로 로마노(Cappello Romano)'라 불리는 이 모자는 중세 수도사들, 순례자들의 모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성神性에 이르기 위해 고행의 순례길을 떠나곤 했던 그들에게 절실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가벼움이었으리라.
산티아고 순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TV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한 순례자도 가벼움을 이야기했다. 출발 당시 산더미 같았던 짐 덩어리가 여정 중 반으로 줄어들었노라고. 버리고 또 버리다 보니 걱정 근심 또한 버려져 마음도 가벼워지더라고.
나는 평생을 내 몸과 연애하며 살았다. 아니 ‘나는’이 아니라, ‘내 마음’이라고 해야 맞겠다. 연애에 있어 밀당은 필수. 마음이 삐딱해지면 몸이 마음을 얼러주고, 몸이 어깃장을 놓으면 마음이 몸을 다독여주곤 했다. 그렇게 마음과 몸이 밀고 당기면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나’라는 존재자를 존재하게 해주었다.
오래된 연애가 그렇듯, 언제부턴가 그 밀당의 균형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한쪽이 지고 들어가는 형국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이런 판국에선 정이 더 깊은 쪽이 눈치 보고 매달리는 법. 몸의 위세에 마음이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은 이제 먼 먼 이야기가 되었다.
몸의 눈치를 살피다 보니 절실해지는 것이 가벼움이다. 몸에 걸치는 모든 것들이 가벼움에 무게를 두게 되었다. 몸에 걸치는 것뿐이랴. 먹는 것도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산해진미도 천하 절경도 몸이 원하지 않으면 홀대를 받는다. 가볍게 먹고 가벼운 나들이에 머문다.
"몸은 정신의 감옥이다"
"정신이 그 사람이다"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바로 카타르시스다"
고대, 중세의 철학자들에게 몸은 타락의 도구였다. 그 시대뿐이겠는가. 몸과 마음(육체와 정신)의 관계 정의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뜨거운 감자다. 그러나 몸과 마음에 대한 현란한 언어의 유희는 나의 실존에 이르면 모래성이 되고 만다. 둘의 관계는 연인과 같으며 지금의 나, 노년에 이른 나의 현실에서는 오래된 연인 사이로, 단연 몸의 우세다.
55.8그램.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모자라는 그 무게마저 몸이 원치 않으면 무거워질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무게를 벗어던진 오로지 스스로의 무게만으로 버티다가 티끌이 되고, 질량 불변의 법칙에 따라 우주를 순환하게 될 몸.
그 몸이 지금 내겐 무척 소중할 뿐이다.
첫댓글 글 내용이 평범한 듯하지만 왠지 연민스럽게 읽힙니다.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모자가 55.8그램이라지만 그 존재는 오래도록 존속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 인간은 0.그램도 존속하지 못할 몸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생의가감은 無니까요. 나는 그 무의 세계를 향해 가는 길이 매우 기뿌기도 하답니다.
머리카락을 좀 잘랐더니 가벼워졌어요. 곧 점심시간입니다. 점심은 무겁게 먹으려고요.
건강, 건강....
모든 인사의 마지막 당부.
모든 정보의 단연 으뜸인 화두, 건강, 건강.
밀당할 것도 없이 마음은 늘 몸에 휘둘리지요.
그것이 인생인가봐요.
선생님, 몸이 참 소중 하다는걸 , 그건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지요.힘내세요.
선생님, 몸이 마음을 앞서가는 젊은 시절보다는 몸이 마음의 뒤서기를 하는 시기가
안타깝지만 더욱 안정되고 온기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깊이 있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어느새 우리는 '무계'에 민감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몸이 지배하던 프르렀던 지난 날, 겁을 모르던 지난 날들은 불나방처럼 천방지축하며 살았지만
이젠 마음이 지배하는 나이에 접어드니 몸을 살살 달랠 줄 알게 되서 좋네요.
"덥고 있는 이불이 무겁다 느껴지면 끝장이니라"시던 엄마의 음성이 귓전에서 맴돕니다.
좋은 글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