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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芚山 太古寺 태고사
태고사는 신라 무열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 터가 좋아서 3일 동안 가사장삼을 수하고 “세세생생 도인이 끊어지지 아니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그후 고려말 태고 보우국사가 중창하였고 조선시대 중엽 진묵대사가 삼창하였다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전소당하여 1957년 도천대선사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정진하시며 난행 . 고행 . 선과 일이 둘이 아닌 둘이 아닌 마음으로 중건, 중창하였다. 극락보전에는 주존으로 아미타불을 모시고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 "대둔산은 동쪽에 태고사라는 유명한 고찰이 있다. 호서와 호남에서 '1태고(太古), 2월명(月明), 3운문(雲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태고사는 영험한 도량이었다. 산의 8부 능선쯤에 위치해서 전망이 시원하게 나온다. 태고사는 마당에 들어서면 앞이 첩첩산중의 산풍경이 펼쳐져 보여서, 태고의 장엄한 풍광을 보여준다, 뒤에는 바위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최근까지 100살이 넘는 장수를 누리다가 돌아가신 도천(道川) 노장이 주석하던 절이라 한다."
- 조용헌의 靈地 기행에서 - 。 。 。。
" 102년을 살고 깨친 것이 없어 나는 다시 수미산 주인집으로 머슴살러 갈겨!"
102세에 돌아가신 도천 큰스님의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입니다. 어느 선사의 열반송에도 비교될 수 없는 소박하면서도 의미있는 말씀입니다.
"힘이 드니까 수행이 되고, 수행이 되니까 일을 한다."
스님에게 일은 곧 수행이고 기도였습니다. 참 스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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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 선생을 친필을 음각했다 한다. '석문'은 태고사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듯 하다.
。。。 극락보전 주련
世尊當入雪山中 (세존당입설산중) 부처님께서 설산에 계실 때
一坐不知經六年 (일좌부지경육년) 한번 앉아 6년이 흘러감을 알지 못했네
因見明星云悟道 (인견명성운오도) 밝은 별을 보고 도(道)를 깨달으시니
言詮消息遍三千 (언전소식편삼천) 그 말씀 그 소식 삼천세계에 가득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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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古寺는 원효가 12승지의 하나로 꼽았다는 명당이라 한다.
한용운도 "태고사를 보지 않고 천하의 승지를 논하지 말라." 라고 극찬하였다.
금산의 고찰 태고사는 해발 660m에 위치하여 주변에 낙조대외에는 높은 산이 없으므로
주변의 실루엣처럼 펼쳐진 산그림자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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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사 대웅전은 ㄷ자 형태의 청와지붕으로 흔치않은 건축물이었다. 주지스님께서는 "태고사의 수행 가풍(家風)은 보살도와 일, 참선과 계행이 오롯이 하나인 수행입니다." 경허 스님의 맏상자인 수월당[水月堂] 음관대선사 진영 도천스님의 은사스님 。。 "열심히 혀라. 땅을 팔때면 다만 땅만 파거라. 어려운 가운데도 일없이 되는 공부라야 공부라고 할 수 있는겨, 땅 파면서 오직 한생각만 챙기고 그 밖에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일랑은 다 쓸어버려야 하는 겨, 이렇게 되어야 다만 밭일만 하는 것을 넘어 마음 밭을 일구게 되는겨..." - 수월스님 - 。 。관음전에는 주존으로 관세음보살과 좌보처에 해상용왕, 우보처에 남순동자를 모셨다. 도천스님의 상좌이신 주지 정안 스님은 . 1968년 입재 후 41년동안 관음ㆍ지장 기도정진을 멈추지 않은 놀라운 정진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다. 스님은 3년마다 천일 기도결제를 하고 해제하는 바로 당일, 결제로 들어가기 때문에 태고사는 사시사철 기도정진이 끊어지지 않는 도량으로 유명하다 하다. 공양간 모습 。。 "왜 일만 하십니까. 힘들지 않습니까?". 스님이 답했다. 힘이 드니까 수행이 되고, 수행이 되니까 일을 하지. 탐(貪).진(瞋).치(癡) 삼독을 비롯한 온갖 번뇌를 여의는 길은 열심히 일하는 것뿐이야. 후대사람이 편히 공부하고 수행하도록 터를 닦아두는 일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절을 내려오며 도천큰스님의 말씀에 산객은 우리절 회주스님의 삶을 생각합니다. 수행이란 얼마나 외롭고 고행의 길인가... 새벽녘 홀로 찾은 산사에서 많은 가르침을 가지고 내려갑니다. - 慧命 합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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