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예배를 마치고 남은 자투리 시간, 교외선 열차를 타기로 했다. 지난 해 오늘, 남편과 함께 경의선 열차를 타고 눈마중을 하던 기억이 새로워서 마음이 설렌다. 가끔은 차를 두고 이렇게 훌쩍 열차를 탈 수 있는 작은 여유가 즐겁다. 삶에서 느끼는 풋풋한 정겨움에선가.
멀리 보기
원릉역은 무인 간이역이다. 하루 세 번씩 있는 상·하행선 시간표만 벽에 붙어 겨울 바람을 맞고 있다. 그렇지만 주변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시 한가운데 있는 이 역은 시골 들판에 있는 간이역처럼 황량하지만은 않다. 잠시 역무원이 자리를 비운 듯한 느낌이 들고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것 같은 따뜻한 간이역. 바람도 살금살금 분다.
기차가 다가온다. 느긋하게 앉아서 교외 경치를 즐기려던 우리는 차에 오르면서 눈이 동그래졌다. 빛깔 고운 천을 씌운 의자마다 볼이 붉은 젊은이들이 쌍쌍이 앉아있다. 맞아, 오늘이 크리스마스다. 서로 손을 맞잡거나 살며시 어깨를 기대고 앉아있는 젊은이들이 참으로 고와 보인다. 그들의 밀착한 거리가 끈적거려 보이지 않고 따뜻하게 보이는 것은 내 나이 탓인가 보다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기둥에 기대서서 느리게 움직이는 차창 밖의 풍경과 차안의 풍경을 번갈아 본다.
일영이 가까워온다. 경기도에서 내 초임지다. 고향을 떠나와 외롭던 시간, 출퇴근 버스에서 만나는 이 곳의 아름다운 자연은 커다란 위안이었고 이곳에 발령을 받았음을 늘 감사했다. 10여 년 전이라면 여기에서 모두들 일어나련만 지금은 아무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미 유원지로서의 영광을 장흥에게 내준 일영역이 쓸쓸하다.
일영은 휴일이면 무척이나 붐비던 곳이었다. 기차가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로 푸르게 일렁였고, 솔밭으로 무두리로 진달래동산으로 손을 맞잡은 젊음의 행렬이 이어지곤 했다. 이들로 인해 역 앞 가게 주인은 늘 입이 벌어지고 가장 목 좋은 가게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장흥이 국민 관광지로 개발되고 자가용이 늘어나면서 이 역은 국도 뒤로 슬그머니 가려져 갔다. 산더미처럼 물건이 쌓였던 가게도 문이 닫히는 날이 늘어나더니 마침내 간판이 내려졌다. 유원지에서 장사하는 학부형들이 많아 여기서 근무하던 3년 동안은 주말에 비라도 내리면 내일처럼 걱정이 되곤 했다. 두어 사람이 내린다. 멀찌감치 까마귀 서너 마리가 날고 있다. 허허로운 역사를 까마귀 소리가 훑고 지나간다.
일영을 지나고 나니 조용하던 열차 안이 조금씩 술렁인다. 겉옷을 입는 사람, 배낭을 챙기는 사람. 장흥임을 알리는 안내방송에 작은 움직임들이 물결처럼 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선 사람들이 썰물처럼 열차를 빠져나간다. 그리곤 장흥역은 순식간에 바다가 된다. 일영이 그랬던 것처럼 장흥은 푸르게 일렁이고 손을 잡고 걸어가는 발자국마다 발그레한 꽃으로 핀다. 전에는 일영역에 피었을 꽃발자국들이다.
갑자기 텅 비어버린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멀어져 가는 장흥을 바라본다. 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그 안에 맑은 계곡과 폭포를 품고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석현리에 사는 아이 집을 방문할 때 십리가 넘는 길에 흙먼지가 날렸지만 아름다운 산과 계곡에 흠뻑 빠졌던 곳이다. 국민관광지가 되어 도로가 포장되고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산과 계곡이 파헤쳐질 때, 외딴 곳에 감춰진 폭포 앞에 모텔이 들어설 때, 계곡이 아파하는 만큼 나도 아파했던 곳이기도 하다. 반짝이는 불빛에 숨을 할딱여야 하는 잠들지 못하는 계곡과 위에서부터 자꾸만 흐려지고 가늘어지던 폭포의 물줄기. 그 물줄기들이 두어 해 전 여름에는 폭우에 갈곳을 잃고 마침내 미쳐버렸던 상처 입은 땅 장흥.
이곳이 국민관광지로 개발이 되면서부터 홍수에 의한 피해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저 가고 싶은 곳으로 흘러가야 할 물길을 막고 구부리고 땅을 파헤쳐 물을 가두고, 그리고 환락이 질펀하게 계곡과 산자락을 뒤덮었다. 그 여름 마침내 산과 계곡이 머리를 풀고 주저앉아버릴 때까지.
물줄기 앞에서 사람들은 맨발로 달아나야 했다. 아직도 그 상처가 다 아물지 못한 곳이지만 달리는 열차 안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산들은 그 아픔을 꼭꼭 묻어두고 고운 능선만을 보여준다. 그래, 산은 늘 그렇게 말이 없고 그 아픔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제 자신이 무너져 내릴 뿐이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개발에 눈 먼 사람들이 안타깝다. 조금만 멀리 바라볼 수 있다면….
요즘에는 시력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많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반에도 안경 쓴 어린이가 제법 여러 명이다. 컴퓨터며 텔레비전, 무엇이든 가까이 보는 것에 익숙해진 탓이란다. 멀리 바라볼 줄 모르는 아이들의 근시가 육체적인 근시이기만 할 것인지 걱정스럽다. 그뿐이랴. 그들을 가르치는 나 또한 아이들의 먼 장래를 내다보며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을 만들기보다 눈앞의 성적에나 연연하는 근시안적인 교사는 아닌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멀리 보아야지. 살아온 길 돌이켜보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저질렀던 잘못들이 하나둘이 아닌데, 바라볼 길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은 지금에야 멀리 보고 싶은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창 밖 먼 곳의 아름다운 능선에 눈과 마음을 모두 주어버리고 열차가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며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