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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혈연주의 바알을 섬기는 신앙인들-성경도 하나님도 입으로만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 명이었으며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니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하니라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이르되 우리가 한 사람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말며 한 사람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말고 우리가 이제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를 뽑아서 그들을 치되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 명에 열 명, 천 명에 백 명, 만 명에 천 명을 뽑아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가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그 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이스라엘이 기브아 주위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셋째 날에 베냐민 자손을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에 맞서 전열을 갖추매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 길 곧 한쪽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쪽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베냐민 자손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들의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서 전열을 갖추었고 이스라엘의 복병은 그 장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34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만 명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치열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백 명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깐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로 돌격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과 복병 사이에 약속하기를 성읍에서 큰 연기가 치솟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 하고 이스라엘 사람은 싸우다가 물러가고 베냐민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쳐죽이기를 시작하며 이르기를 이들이 틀림없이 처음 싸움 같이 우리에게 패한다 하다가 연기 구름이 기둥 같이 성읍 가운데에서 치솟을 때에 베냐민 사람이 뒤를 돌아보매 온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았고 이스라엘 사람은 돌아서는지라 베냐민 사람들이 화가 자기들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몸을 돌려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그 가운데에서 진멸하니라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싸고 기브아 앞 동쪽까지 추격하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만 팔천 명이니 다 용사더라 그들이 몸을 돌려 광야로 도망하였으나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 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오천 명을 이삭 줍듯 하고 또 급히 그 뒤를 따라 기돔에 이르러 또 이천 명을 죽였으니 이 날에 베냐민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가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 명이니 다 용사였더라 베냐민 사람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에서 넉 달 동안을 지냈더라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 (삿 19:25-30, 20:1-48)
1.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
사사기를 읽어가다 보면 큰 슬픔이 느껴지고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우리의 어두운 마음과 믿음이 없이 불순종하는 자세를 보면서 사사 시대의 모습이 남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그렇고,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려는 것이 너무나 강하여서 이 시대가 어떤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는지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다원화 사회에서 상대주의가 절대적으로 점령하고 있으니 (자기들은 상대주의를 강조하면서 그 상대주의를 절대적으로 주장하니 스스로 모순 아닌가요?) 누가 남의 생각이나 행동에 함부로 말할 수가 없는 시대가 되고, 그래서 공동체 생활에서 법과 질서와 예의라는 권위와 제도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2. 음란과 폭력의 시대와 어둠과 죄악의 시대
사사기 16장까지 사사들의 이야기가 계속되다가 삼손에 대한 기록에서 끝나고, 17장부터는 그 시대의 어둡고 죄악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19장부터 나오는 레위인의 영적, 도덕적 상태는 지극히 나쁘다고 할 것이며, 첩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을 비판하자면 한없이 비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첩을 데리고 사는 레위인과, 불량배들에게 첩을 내주는 레위인, 그리고 간음을 하고 남편을 떠나 자기 아버지 집에 가 있던 첩은 우리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성읍의 불량한 사람들이 노인에게 손님을 내놓으라고 하여 문제가 발생합니다(22절). 이 장면은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원어상으로 보면 창세기 19장 4절~8절과 69단어를 일치시킴으로 저자는 의도적으로 두 사건을 대비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이방인들의 타락상을 다룬 사건이었지만 기브아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이 가공할 만한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쨌든 우리 시대도 이 시대에 못지않게 음란과 폭력의 시대라고 할 것입니다.
3. 베냐민 지파의 혈연주의와 불신앙
그러나 여기에서 주로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베냐민 지파의 행동입니다. 기브아 불량자들이 레위인의 첩을 욕보이고 죽인 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역이 흥분하여 미스바에 모였고, 레위인은 기브아 사람들의 망령되게 행음한 일에 대해서 성토했으며(거짓도 섞어서), 이스라엘 총회의 어른들은 모두 베냐민의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해서 징계를 해야 마땅하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연합군 대표들이 베냐민을 찾아가 그 불량자들을 내놓으라고 했는데, 베냐민은 불량자들을 내주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 연합군과 전쟁을 결정합니다.
과연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요? 그들에게는 12지파를 하나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뜻보다도 자기네 지파인 몇 사람이 더 소중했을까요?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고 할지라도 분명한 악행은 척결하여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자기들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는 자기네 지파가 거의 망할 것을 예상할 수 없었을까요?
4. 한국의 지역주의와 신앙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상황을 많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는 전라도와 경상도라는 두 지역의 바알과 아세라 신이 대단히 강력한 것 같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다양한 가나안 신들을 섬기고 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많은 목회자들과 기독교 신자들은 성경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지역주의와 혈연주의 혹은 학연주의라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가들의 부정과 불법이 신문이나 TV에 보도가 될 때에 전라도 지역민과 경상도 지역민의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저는 이것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권위자들을 세우신 이유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선을 이루게 하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보응하도록 함입니다(롬 13:1-4). 다니엘은 왕에게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단 4:27)라고 권고합니다. 만약 한국의 대통령이나 장관들, 국회의원들이나 법조계 인사들이 이러한 것을 바르게 알고 따르려고 한다면 우리는 열렬히 지지해야 할 것이고, 반대로 이러한 것에 역행하며 악을 옹호하고, 공의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적극 반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정당에 상관이 없어야 하고, 출신지역에 무관해야 하며, 친인척이나 동문이라는 이유도 부당하다고 물리쳐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개혁주의를 외치는 상당수의 목사님들이 이런 원칙보다도 지역주의를 중시하는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기이하기만 합니다.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성경도 하나님도 뒤로 물러나야 하는 것일까요? 왜 평소에는 교회에서 그렇게 정의와 진리를 가르치시면서 현실 생활에서는 부정과 거짓과 탈법을 옹호하려고 하실까요?
5. 왕은 어디에?
사사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왕이 없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우리의 왕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과는 전쟁으로 이어지며, 그 전쟁의 최후는 멸망이라는 것을 사사기를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요즘 시대는 그런 것을 긴급히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에 처음 신앙을 가질 때는 목사님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굉장히 무겁게 여기고 엄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동일한 목사님들께서 너무나 느슨해져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할 때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이 왕이시던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목사님이 왕이시고(교회마다 목사님들이 ‘교황’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들으니까요.), 나 자신이 왕인 것을 많이 느낍니다. 특히 죄에 대하여 너무나 추상적이고 막연하며, 너도나도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이 되어 버려서 기독교의 타락을 가속시키고 있습니다. 정말 왕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