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치매 환자 36만명
도둑망상 / 김연성
가야한다 헛헛한 허기 때문이 아니다
흐릿한 기억의 몸뚱아리, 마디
마디 부르르 떨고 있지 않은가
지친 몸,은 떠나간 길 기억하려고 욱신거린다
도난당한 시간 찾아서 가야한다 반들거리는
시멘트 바닥에 내려앉은 햇살도 길을 트는구나
한 가지만 그리워하면 모든 게 따사로웁다
바람은 또 얼마나 달콤한 날이냐
텅 빈 골목은 자꾸 자식새끼처럼 꽁무니를 빼는구나
저 흘러가는 바닥을 따라가면
진흙 빛의 시간이 몰려오리라 건들거리던
청동의 시간 너머 저 쪽에 대문은 꼭곡 잠겨있을 것이다
기억한다 아주 오래 전에 내 청춘 바깥으로
내몰린 적 있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자신이 아쉬울 때에만 간절한 눈빛이었다
끙하고 용을 써 몸뚱아릴 일으킬 때마다
갈비뼈 비집고 자꾸 어둠이 스며든다
생각해 보면, 분실한 것은 자식만이 아니다
나에게서 도망친 물건이 한둘이 아니다
얇은 기억은 길을 잃었다
길은 더이상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 꿈은 전부 도난당했다
빈 가죽은 채워도 채워도 배가 고프다
가야한다 지루한 생의 저기 저 끝, 더 멀리까지
* 2006 시현실 봄호
<<시에 대한 느낌 나누기>>
-이 시는 치매 걸린 노인이나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이 연상되는 시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기억을 도둑맞고 망상적인 생각에 휩싸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 같은,
-“흐릿한 기억의 몸뚱이”나 “떠나간 길 기억하려고” 또는 “도난당한 시간을 찾아서 가야 한다든지” 나 “한 가지만 그리워하면”은 가장 즐거웠던 때만 기억하려는 뇌의 그 무엇과 “꽁무니 빼는 자식새끼들” 등등이 그렇게 생각되게 합니다.
-2연에서는 “자신이 아쉬울 때에만 간절한 눈빛이었다.”에서처럼 기억도 못 하고 엉뚱한 행동으로 괴롭게 하니 다 싫어하게 된다는 말처럼 들리지요.
-그리고 “분실한 것은 자식만이 아니다.”라는 것이나 “내 꿈 전부를 도난당했다”는 말은, 그래서 물리적인 현상으로 채워도 채워도 배가 고프게 나타나는 것 같은,
-가만히 새겨보니 정말 가슴 아픈 상황을 그린 시 같습니다.
-가끔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던 안타까운 이야기지요.
-현재 한국 치매 환자가 36만 명 정도나 된다고 하는데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더구나 이 시는 버려진 환자를 빗 된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도 나이가 들면 늙기 마련인데 한번 되돌아보며 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 -문 향-
김연성 시인
1961년 강원도 양양출생
웹웰간詩 <젊은 시인들> 동인
서울 시청 재무과 근무
2005년 계간 <시작> 신인상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