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 한 장 / 문육자
지하철 속에서 자유롭게 쳐다볼 수 있는 것은 광고다. 그리고 지하철 속은 작은 광고의 나라다. 깜깜한 굴속을 달리는 차속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 논 광고는 ‘승강기 대학 학생 모집’, ‘취업률 100%’라는 말이 꽤 매력적이다. 경제적인 독립이 없이는 사람은 살아가는 기틀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에 빠진 내 앞에 도와달라는 내용이 어설프게 써진 빳빳한 종이와 손수건 한 장이 놓여졌다. 별로 승객이 없어서인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 앞에 놓여졌다. 지하철 안에서 손수건을 두 장이나 샀고 오늘이 세 번째라는 생각에 망설여졌다. 이리저리 둘러보았더니 모르는 체하고 눈을 감도 앉은 사람, 돌려줄 요량으로 쥐고 있는 사람, 손수건은 귀찮기도 하고 필요도 없으니 천 원 한 장이라도 주려고 손수건과 돈을 쥐고 있는 사람,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참, 저러면 되겠구나, 돈을 그냥 주고 손수건은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 무릎 앞에 놓인 종이와 손수건을 회수하러 간 장애우는, 손수건과 돈을 주는 사람 앞에서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발음이 똑똑하지는 않지만 큰소리로 손수건을 가져가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 손수건은 자기의 또 다른 친구들이 애써 만든 것이며 그래야만 계속해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진정으로 도와주려면 자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얼굴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눈을 감고 있던 사람들조차도 부스스 눈을 뜨고 손수건을 한 장 씩 사기 시작했다. 지하철 안에서 흔히 만나는, 귀찮은 구걸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활을 원하는 한 장애우의, 온몸으로 던지는 절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일어설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었고, 그것은 던져주는 몇 푼의 돈으로는 해결 될 수 없음을, 아직은 움직일 수 있는 손이 있음을 떳떳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아니 손쉬운 방법을 택하려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좀 다른 경우이기 하지만 내가 가는 시설에 있는 중증장애우들은 K제화의 쇼핑백을 접는 일을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고작 쇼핑백을 접고 손잡이 끈을 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수녀님들은 무료하지 않게, 또 손놀림을 통하여 그들의 운동 신경이 둔해지지 않게 그들에게 일을 시키고, 거기서 벌게 된 돈을 개인의 용돈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내가 갈 때마다 껌을 사서 주기도 한다. 입을 잘 다물지 못해 침을 흘리면서도 껌을 받으라고 재촉한다. 자기가 번 돈으로 산 것이란다. 물론 그들은 자활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둥지를 틀 곳이 없으며 도움이 없이는 행동조차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일한 보람을 느끼며 껌 한 통이라도 선물할 수 있음을 자랑스러워한다. 나는 “고마워요.”라고 대답하며 그들을 스스럼없이 껴안거나 악수를 한다. 함박웃음이 그들 입가에 핀다.
소외된 이들을 진정으로 돕는 것은 어떤 것일까. 스물다섯의 나이에 뇌성마비로 생을 접은 조카를 향한 스스로의 물음이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식 만나게 되는, 손을 내미는 사람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많은 갈등을 했던가. 기껏 동전 한 잎 떨어뜨려주는 것으로 선행을 베푼 듯 의기양양하며 누군가가 보아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던가.
며칠 전 강남역에서 녹음된 노래를 울리며 비닐로 몸을 싸고 배로 밀며 기어가는 사람을 보았다. 그날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낙엽이 눈을 때리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이 온통 돈이 되어 그 사람의 작은 통 속에 가득하기를 건절하게 빌었다. 불가능한 바람인 줄을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상의 기도였다. 그리고는 지폐 한 장을 끄집어내어 그 통 속에 두고 비켜왔다. 일상에서 행할 수 있는 최선이며 한계라고 생각하고.
탈무드에 ‘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이다’라는 격언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 그는 영원히 남의 도움으로 사는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방법을 택한 것이다. 손수건 한 장에, 남은 생의 전부를 걸었다. 손수건 한 장이 자신의 미래임을 믿었다. 그 속에 그려진 그림들이 자신의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달리는 전철 속에서 그는, 단순한 동정으로 던져 주는 한 푼의 돈보다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물건을 사 주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라는 것을 어눌한 말씨로 설득시켰던 것이다.
경제적으로 떳떳이 일어서기를 소망하며, 자활할 수 있는 날을 꿈꾸는 그가, 흐뭇한 마음으로 손수건을 계속해서 만들 수 있기를 빌어본다. 그리고 지하철 속에서보다 다른 곳에서 그를 만나기를 바라고, 더 멋진 그림의 손수건을 내밀기를 고대한다. 그러면 나는 그 손수건을 또 살 것이며 영원한 직업을 위해 그를 응원한다고 분명히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