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고 짧은 인연을 맺고 원장님이 영면 하셨다. 한치 앞을 못 보고 산다는 말을 실감한다. 향년 77세의 영정 사진 속에서 수줍게 활짝 웃으신다. 전 날에 농담 처럼 스치던 말씀이 자꾸 귀에 맴돈다.
점심시간을 이용 해 용무를 마치고 들어오시며 하시는 말씀 '이곳 저곳 은행갔다가 안갖고 간게 있어 다시 집에 들렀다가 가지고 나와 천변들러 돌아서 왔네 아이고 나는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것다.'
날 향해 혼잣말을 뱉고는 기다리고 있는 환자분 때문에 숨도 못 돌리고 바삐 가운을 걸치고 나오신다.
이어지는 옆 체어에서 진료 할 때에는 뒤로 살짝 놓여 있는 미러와 핀셋을 찾지 못하시다가 돌아서 직접 챙겨드리니 또 툭 하니 하는 말씀 '죽어야 할란갑다.' 하시며 눈을 맞추신다.
뭐 그리 빠쁘게 떠나셨을까? 뒷날 일어 날 일을 예감이라도 하셨을까?
점심의 바쁜 용무로 든든한 식사를 못하셨는지 오후에는 맞은편 만두가게를 내다보시며 "언니 만두 드실란가 물어 봐라." 항상 내가 좋아 할란가 물어 봐주시는 원장님이다.
마침 우리도 점심에 나가서 과식을 하고 배가 꺼지지 않아 단팥이 가득한 진빵과 만두 네개를 혼자 드시게 끔 챙겨 드린 것 조차 지금은 후회가 되어진다.
근검이 몸에 배이신 원장님은 참 알뜰하게 감사히 맛있게 드신다. 겨울 내내 식후 잘 드셨던 홍시는 겨울이 되면 원장님을 떠올리는데 충분 할 것 같다.
뒷 마무리 청소 시간이 되면 김선생님 너무 고생 하셔서 안된다며 운동 삼아 하신다고 꼭 거들어 주셨다.
여느때 처럼 전 날도 하루 일과를 밀걸레질로 마무리 하시며 "나 먼저 들어가 쉴라네"~ 하셨었다. "네~원장님 들어 가세요.~" 빼꼼 인사 드리는데 "와 ~이쁘다. 엄지척 들어 주시고 역시 멋쟁이" 하며 멋찐 노년의 모습으로 퇴근 하셨었다.
이튼날 출근길 에레베이터서 쓰러져 계신 원장님을 보고 건물 여주인이 부를 때 만도 이렇게 황망히 가실 줄 생각도 못했다.
희미하게나마 의사소통과 몸의 움직임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급히 부른 119 대원의 메뉴얼 대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응대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 응급 환자 인데도 전대 병원에 도착 해서는 응급실에 남은 병상이 없었고 의식이 있으니 코로나 환자만 받는다며 응급실 이용이 불허되었단다. 언성을 높여 서러도 그 곳에서의 처치가 있었어야 했다. 다시 찾은 조대 응급실에선 심혈관 관련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구급차에서 내려보지도 못하고 촌각을 다투었다는 말은 원장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구급차 안에서도 희미하게 의식이 있으셔 소변 마렵다는 의사도 비치셨고 가슴이 답답하다며 손으로 가슴을 치셨다는 말은 지금도 밤마다 떠올려져 쉽사리 잠들지 않는다.
겨우 찾은 광주병원 응급실 다시 못 깨어 나실 지도 모른 다는 사인을 받고서야 응급 수술로 향하셨단다.
그리고 20분 후 모든거 다 놔두시고 먼 길 떠나셨다. 불과 2시간 10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준비하지 못 한 죽음에 남은 모든 이들이 얼마나 황 망스러워 하는지를 알았다.
6ㆍ25 참전용사로 군 제대를 하신 원장님을 임실 호국원 추모관에 모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ᆢ이 우연의 인연도 깊구나!
명절 일주일을 앞두고 시부모님이 계시는 순창군 임실 호국원으로 늘 그랬듯이 성묘를 갔다. 친지들이 모여 성묘를 마친 뒤 조용히 믿기지 않는 죽음에 마지막 인사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추모관으로 향했다.
고인을 검색하니 창에 활짝 웃고 계시는 원장님이 계신다. 왜 여기에 계시는지ᆢ 왈칵 코끝이 찡하고 뜨거운 눈물이 솟구친다.
덩그러니 이름표 한장에 생전 사진 한장 붙여지지 않는 유골함 옆으로 꽃송이를 달아 드렸다. 여러 추모관들과는 다르게 사진이나 꽃송이들이 놓여 있지 않는 분위기에 더욱 더 인생사 공수래 공수거가 생각난다.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 퇴근 때면 나난히 걸었다. 이런저런 제법 깊게 속내를 털어 놓는 원장님과 봉숭아빛 벗꽃나무도 보았다. 알록달록 연분홍 진분홍 철쭉꽃길도 걸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시간이 너무 잘 간다는 말과 김선생님 그만 다닐 때 까지 만 치과 할란다며 펑펑 내린 하얀 눈길도 걷고 우린 길동무 다며 웃던 날들이였다.
2년 전 코로나로 제대로 모셔 보지 못한 아버지가 떠올려져 노원장님께 애정을 담았었나 보다.
오늘밤도 그 기억을 안고 세찬 바람에 몸을 웅크리며 불꺼진 원장님댁 창가를 올려본다. 위트 넘치는 말과 해맑은 웃음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원장님 원장님과의 좋은 인연에 감사 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행복과 기쁨만이 넘쳐나길 바랍니다.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짧든 길든 일년여를 함께한 분인데 얼마나 황망했을까요. 좋은 인연 길게 이어졌음 좋으련만 너무나 황망히 가셔서 나조차도 슬픕니다. 한동안 가슴에 담고있을 원장님의 편안한 영면을 바래봅니다. 그리워하며 슬퍼한다는 추도보다는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추모의 시간이 그리 길지않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아~눈물납니다. 글을 읽으며 소름이 돋습니다. 왜 갑자기 그렇게 가셨나요. 원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마지막이 된 직원이 밝고 환한 모습으로 기쁨이 되셨을 원장님, 모두의 슬픔과 함께합니다.
언니, 살아서도 돌아가셔서도 그분께선 말년에 언니같이 세심하고 센스있고 깔끔하게 일 잘하고 기분까지 살펴주는 딸같은 직원 귀하게 여기실 겁니다. 딱 한번 뵈었지만 깔끔하시고 당신 하시는 일에 자부심, 소명의식을 가지신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언니 추모의 마음이 고인께 닿으실 것 같습니다.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현경씨 얼마나 황망했을까요
살고죽는게 한순간이군요. 빠른응급수술만
했더라도 살수있었을지도요. 의료상황이 그정도라니
그동안 정이들어 떠나보낸 현경씨 마음 아프고
힘들겠어요 .하늘의뜻으로 받아들이고
마음 추스리세요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짧든 길든 일년여를 함께한 분인데 얼마나 황망했을까요.
좋은 인연 길게 이어졌음 좋으련만 너무나 황망히 가셔서 나조차도 슬픕니다.
한동안 가슴에 담고있을 원장님의 편안한 영면을 바래봅니다.
그리워하며 슬퍼한다는 추도보다는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추모의 시간이 그리 길지않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와의 이별 뒤에 오는 그리움, 회한, 아픔, 안타까움......
세담 님 슬픔따라 저도 많이 아픕니다.
원장님과 함께하며 즐거웠던 순간들조차 슬픔의 덩어리가 되어 아픕니다.
인생 '공수래공수거' .
늘 목격하며 살면서도 이리 살지 못하니 참 처량한 인생들입니다.
뜻밖의 슬픔을 겪고 계시는 세담 님, 그간 원장님께 아낌없이 드린 정성과 사랑, 원장님께서 품고 가셨을 겁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무상이 보이며 무상이 느껴 집니다 나의 죽음도 그러하지 않을까 ....
죽음은 가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