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내게 온 알로카시아, 너는 불운하다.
꽃말은 '수줍음'이라는데 넒은 잎새는 전혀 수줍지 않구나.
그래도 연둣빛 연한 줄기가 아니라고 하네.
잘 돌봐줘야 하는데...
너를 받으며 반갑고 기뻤지만 한편 걱정도 되었어.
꽃기린도 망쳤고 시클라멘도 내 손에서 가버렸으니
열악한 환경을 탓할까?
베란다라는 명색은 있지만 여름엔 너무 강한 햇볕
겨울엔 그나마 비껴가고 찬바람만 등등한 기세
할 수 없다.
집안의 햇볕 따라 아침이면 햇살샤워를 위해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는 정성이라도 보일까 해 .
별로 큰 화분도 아닌데 너를 들다가 요즘들어 약해진 허리가 싫다고 하니
미안하지만 발로 쓱쓱 밀며 햇볕 사냥을 나선다.
발로 그런다고 기분 나빠하진 말아다오.
아! 이런 짓이 집사의 도리인가보다.
그래도 알로카시아, 너의 집사가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나는 감당 못해.
이렇게라도 내가 움직이는 편이 낫거든.
시원찮고 서툰 植執事지만 오래오래 가보자.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아침이면 잎사귀 뾰족한 끝부분에 맺힌 아주 작은 물방울은 뭐지?
설마 밤새 울거나 한 건 아니지?
어쩌면 밤새 어둠 속에서 살아낸 생의 진액일까?
훅 사라져버릴 듯 너무도 가벼운 작은 물방울은 애잔하고도 신비해.
곧 사라져버릴 것들은 늘 그렇지.
굳이 비밀은 알려주지 않아도 돼.
아침이면 또 만날 수 있을까 기다려져.
이 어설픈 집사에게 생긴 기다림이 왠지 간지럽네.
첫댓글 아침에 맺힌 물방울을 보면 기분이 좋았어요
예전에 키웠던 알로카시아가 생각납니다
현영샘, 그 물방울 왜 생기나요?
고 작은 물방울의 투명함이라니....
묘하게 설레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