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나 혼자 볶았다고는 볼 수 없다. 반 쯤 볶아진 원두를 받았는데 도대체 이게 칼날에 갈리기나 할까 싶게 너무 덜 볶은걸 준 것이다. 세 가지를 받았는데 그 중 상큼한 꽃향을 풍긴다는 게이샤를 마셔본 결과. 내가 맛 봤던 그 게이샤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배운 바에 의하면 생두를 너무 볶아도 고무 태운 듯한 냄새와 쓴맛이 나지만, 너무 덜 볶아도 이맛저맛도 아닌 대체 이게 커피냐고 반문할 맛이 난다는 거다. 실제로 그런 맛이 어제 났기에 나는 어차피 버린 맛 다시 볶아나 보자 하여 웍을 달구어 살살 볶아 보았다. 볶기 전의 원두는 솔직히 라이트와 시나몬 그 사이 정도? 간신히 생두의 티를 벗었다 싶은 정도였다. 이빨로 씹어보니 완전 플라스틱 버금가는 강도를 자랑한다. 나는 첫 수업부터 원두를 일일이 다 씹어 먹어보며 느껴봤기에 색으로나 부푼 상태로도 대충 짐작은 가능했다. 실제로 음용이 가능한 정도라면 미디엄 정도는 볶아줘야 했다. 그리고 제대로 맛 보려면 시티 이상은 볶아줘야 하는거라 나는 태우지 않은 상태에서 불을 끄고 씹어 보았다. 크랙 정도로 보자면 2차 크랙까지 듣고 불을 껐다고 볼 수 있겠다 . 파삭하게 씹혔고 비교적 골고루 짙은 갈색이 되었다. (사실 어제 원두의 색은 거의 올리브그린과 갈색의 혼합체 정도였으니 ..) 마음이 급해진 나는 가스배출이고 뭐고 신경 안쓰고, (하긴 1차로 볶았던 거라서 이미 이산화탄소는 다 빠져 나갔으리라 본다..) ㅣ인 분량의 원두를 갈았다. 역시 게이샤로군. 상큼한 향이 올라왔다. 이미 보글대며 물은 끓었고 나는 배운대로 물을 좀 식힌 후에 조금씩 부어 보았다. 갓 볶아서 갈아놓은 원두는 빵처럼 부푸는 법. 봉긋하게 솟으며 커피의 향이 같이 솟는다. 드립전용 용기를 다 준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약 220미리 정도의 커피를 내려 향을 맡고 조금 마셔보니 아..이제야 맛이 나네.. 꽃향이 난다는 그 느낌. 로스팅 정도야 본인 입맛에 맞춰 덜 볶을수도 있는 것이긴 한데 어제 그것은 정말 아닌 맛이다.. 내가 처음 맛 봤던 게이샤의 풍미를 완벽하게 재현했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때 커피맛의 놀라움에 눈 떴던 그 기분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