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계획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은퇴라고 하면 직장을 그만 둔다는 것 이상으로 많은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은퇴 생활을 할 것인지에 따라 살 곳을 정해야 한다.
내 성년기의 거의를 보낸 미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으로 생각해 보았다. 마침 최근 신문에 동남아 지역국가에 많은 은퇴 한인들이 정착하고 있다는 특집이 있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이나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중국 등 심지어는 네팔까지 간 한국인도 있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저렴한 생활비가 장점이었는데 이미 많은 한인들이 정착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동남 아시아 지역은 한국에서 가까운 거리라서 좋은 조건인 반면에 불행히도 이곳을 방문한 어글리 코리언들이 저지르고 있는 부도덕한 행동 때문에 현지인 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느 곳이나 생활비가 저렴하다는 것이 첫번째의 매력이기 때문에 몇 해 전에는 이런 관심을 가지고 중미의 코스타리카를 다녀왔다. 아내의 친구가 별장을 지어놓고 미국을 왕래하며 살고 있는 곳이다. 그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기후 그리고 순박한 인심에 지금도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남미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되어 있는 곳이어서 군대가 없는 나라가 아닌가?
중국을 방문하던 길에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상하이(上海)를 방문했다. 메트로폴리탄인 상하이는 뉴요-커에게는 생리적으로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였다. 대도시인 관계로 뉴욕에서 누리던 문화 혜택을 거의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해 오스트랄리아의 서부 해안도시인 퍼-즈(Perth)로 이민간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특집으로 실은 뉴욕타임스에 관심있는 기사가 있었다. 뉴욕에서 간 이민자들의 거의 전부가 이민 생활을 포기하고 일년 안에 도로 미국으로 돌아왔다는 기사였다.
그들이 막상 뉴욕을 떠나 생활하게 되자 비로소 세계적 문화의 총 본산인 뉴욕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뉴욕에서 갖던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뉴욕에서 살았던 뉴요-커는 영원히 뉴욕을 떠나서 살수 없다고 했다.
뉴욕에서 거의 성년기 생애를 보내온 나 역시 뉴요-커 임에 틀림없고 이래서 다른 나라로 이주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늘 이런 대도시 주변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편리한 문화 시설등의 인프라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조건은 의료 문제의 해결이다. 정기적으로 의사 검진을 받고 있고 각종의 예방을 위한 약을 처방 받아야 하는데 메디케어로 모든 것이 저렴하게 해결되는 미국을 떠나게 되면 이런 의료 혜택이 문제가 된다.
어떤 경우에도 이런 의료 서비스가 마련될 수 없다면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을 떠난다는 생각은 일단 접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뉴욕을 떠날 것이 아니라 바깥 활동이 어려운 겨울 동안만을 다녀오는 철새 같은 은퇴 생활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곳이나 내가 즐기는 골프나 아웃 도어 생활에 적합한 곳을 고르면 될 일이었다.
이런 생각을 굳힌 뒤로 겨울을 보낼 여러 후보가 될 만한 곳을 생각하던 중에 올 겨울을 보낼 제일 먼저 생각이 떠오른 곳이 있다.
십 여 년 전에 친구가 살고 있는 브라질의 “쿠리티바(Curitiba)”라는 소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수도 상파울로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거리의 남서쪽에 위치한 이 도시는 이번에 서울의 이명박 시장이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은 서울의 “중앙(中央)차로(車路) 버스 노선 제도”를 본 받아 온 곳이라서 서울과도 인연이 있는 도시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이 소도시는 그때 연속 두 해에 걸쳐 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던가 혹은 아름다운 도시로 뽑힐 만큼 매력이 있는 곳이다. 일년 사철 우리의 초여름 같은 따뜻한 날씨에 골프 때문에 큰 돈을 쓰지 않아도 되고 "이가수 폭포" 같은 관광지도 멀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철새 은퇴를 한다면 우선 거추장스러운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 중요한 의료 문제도 저절로 해결이 된다.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내 생애를 보내 온 뉴욕의 문화 혜택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오랜 친구들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을 누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안성맞춤 은퇴 계힉이 있겠는가 싶다.
바깥 활동이 어려운 겨울 동안에 반대로 여름철이 되는 남반구가 존재한다는 것은 기막힌 창조주의 디자인이며 우리에게 준 최대의 은총임을 알게 되었다. 거듭 창조주의 빈틈없는 계획을 탄복하고 감사드리고 있다.
이래서 이번 겨울에는 철새 은퇴의 첫 후보지로 브라질에서 남반구의 여름을 체험해 보기로 하고 가슴 설래며 짐을 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