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처럼 반짝이는 짝꿍 여행 –수정 씨와 고창을 걷다
하하에서는 2022년 들어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이른바 “하하님과 2인 여행”이 그것이다.
여행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 설레고 기대감 뿜뿜인데 하하님들과라니!
정말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그런데 내 짝은?
하하는 짝을 ’제비뽑기‘를 통해 정하도록 했다.
모든 하하님들이 어떤 하하님을 만나도 하하스러운 모습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기를 바라는 기획자의 의도렷다. 그래도 은근히 기대도 되고 긴장이 된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이인 하하님이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이런 마음으로 제비를 뽑게 되었다.
이수정!
2022년 7월에 하하님이 된 수정 씨
생각해 보니 나와 둘만의 시간을 가진 건 고작 20여 분이나 될까.
어떤 사람일까, 어떤 아내일까, 어떤 엄마일까, 삶의 가치관은? 신앙관은? 등등
궁금함보다는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긴 ’나‘ 자신도 잘 모르긴 하지만.
어쨌든 수정 씨가 나의 2인 여행 짝꿍이 된 것이다.
한편으론 여행의 설렘 또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움이 교차한다.
수정 씨도 마찬가지겠지!
수정 씨와 짝꿍 여행을 준비하면서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이니까 함께 걸으면 좋겠다 싶었다. 산책길을 선택하면 좋을 듯하여 작년에 못다 둘러 본 고창읍성, 고인돌 공원, 운곡 람사르 습지를 제안했다. 마침 수정 씨가 가보지 않은 곳이라니 잘 됐고, 또 수정 씨가 흔쾌하게 ’좋다‘고 하니 더 잘 됐다. 수정 씨가 운전의 수고를 자진하여 맡겠다니 만사가 형통이다.
드디어 12월 12일.
아침 출근길 도로가 번잡했을 텐데 약속 시간 전에 도착한 수정 씨.
언어, 표정, 몸가짐, 자세, 느낌마저도 과유불급, 계영배의 교훈으로 절제된 중용의 도가 익숙히 배어있는 수정 씨가 언제나처럼 단정한 매무새로 나를 반긴다,
훈기 도는 아늑한 차 안. 그녀의 섬세한 배려가 자욱하다.
차창을 달구는 환한 겨울 볕에 마음까지 부시다.
수정 씨의 수정 같은 배려와 따뜻한 겨울볕 거기에다 여행길에 나선 부푼 마음들이 제비뽑았을 때의 긴장을 한꺼번에 무장해제 해 버린다.
참 좋다. 그냥 좋다.
사람의 마음이란 요상한 것이어서 수정 씨가 오랜 시간 만나온 정인(情人) 같다. 마음이 이러할지니 승용차로 40여 분 거리의 고창이 지척 같다.
우리들의 마음이 지척이니 나누는 얘기도 흐르는 강물처럼 쉼이 없다.
고창읍성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 아래 곡선으로 두른 고창읍성 성벽 길.
번잡한 도시 공간에서 놓여난 것만도 여유와 자유가 빵빵하게 느껴지는데 한적하기까지 하다.
줄기 곧은 소나무 숲, 제 양껏 자란 왕대 숲, 흙으로 다져진 갈래길 등이 모두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준비된 소품들 같았다.
자연 앞에 속수무책 속속들이 벌거벗는 삶의 가면들.
자연에 빙의된 듯 홀가분하다.
“사모니~임 우리 여기서 잠깐 앉았다 가요. 하루 종일 있어도 참 좋겠어요. 다음에 또 꼭 와야겠어요.”
줄곧 앞서가는 나를 벤치에 앉히는 수정 씨.
순간 ’아차!‘ 싶었다. 평소의 여행이나 산행 습관이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나보다.
’그래, 2인 여행인데. 줄(행)이 같아야, 나란히 걸어야 동행인 것을. 줄곧 내가 앞장서고 있었구나.‘
발걸음을 멈추고 수정 씨를 본다. 소나무 숲 사이사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에 취해있는 수정 씨. 이름처럼 자연처럼 맑아 보인다.
재촉할 필요 없는 발걸음을 옮겨 <한국의 세익스피어 동리 신재효> 고택에 들어섰다.
’왜 한국의 셰익스피어라고 했을까?‘
판소리의 성자, 신재효의 업적을 눈여겨보는, 새롭게 그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졌다.
점심때가 됐다. 고창이 낯설다는 수정 씨가 음식별로 맛집을 알아 왔다. 거기에 이한 언니의 추천을 받아 선운사 근처 식당에서 풍천장어로 입맛을 즐겼다. 깨끗이 비워 낸 접시들 속에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한가득, 흐뭇함에 포만감이 더욱 크다.
식사 후의 느긋한 발길을 고인돌 공원으로 옮긴다.
널따란 야산에 자연스레 널브러져 군집을 이루고 있는 고인돌 공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고인돌 공원 유적지다.
선사시대 생활상을 나름대로 그려보며 감상에 젖는다. 아쉽게도 월요일엔 박물관 휴관에 해설사가 휴무인지라 그저 관광에 그쳐야만 했다. 고창 고인돌 공원을 지나 오르막길을 조금 걷자니 운곡 람사르 습지 안내판이 기다리고 있다. 습지 내 데크 오솔길을 쭈~욱 걸어 아주 커다란 운곡호 가장자리에 닿았다. 강처럼 큰 규모의 운곡호 둘레를 100여 미터 정도만 걷고 발길을 돌렸다. 운곡호의 탐방은 가까운 봄날로 기약하고 습지를 되돌아 걸었다.
산속의 습지, 기생하고 있는 생물들에 주저 없이 다가서며 운곡 습지 생태에 대한 소중함을 느낀다. 생태를 세세히 살펴 보전에 기여하고 있는 분들에 대한 감사가 절로 생긴다.
벌써 여행의 끝길에 이르고 있다.
<사랑 새봄>의 이름으로 논 가운데 서 있는 조그만 농부의 카페. 어느 공간 하나 소홀함 없이, 마치 농부가 벼 한 알 한 알을 소중한 생명 다루듯 정성으로 어루만진 카페 <사랑 새봄>.
말간 창에 판박이 된 소소한 행복의 언어들이 내밀한 언어로 다가와 속삭인다.
’행복하고 달콤한 날들은 진주알들이 하나하나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한 줄로 꿰어지는, 단순하고 조그만 기쁨들이 소소하게 이어지는, 그런 하루하루의 날들이야말로 정말로 더 행복한 날들이라고.‘
나의 오늘이, 수정 씨와 나의 오늘이 그런 날이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귀뜸하고 있다.
오늘을 윤슬처럼 반짝이게 해 준 나의 여행 짝꿍, 수정 씨가 참 고맙다.
또한 하하 2인 여행의 기쁨을 선물해 준 하하 이계양 교수와 하하 님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첫댓글 아~반가워요.^^
우리 사모님
또렷하니 잘근잘근 보기좋게 떠올려지는 섬세한 아기편지로 그 날의 짝꿍 여행기를 펼쳐 주셨네요.
배려와 겸손이 가득한 수정씨와 사모님이 서로를 알아가기에 충분한 여행이라 생각됩니다.
커플 여행 후기 감사해요.^^
조심스레 배려하고 나란히 호흡 맞춰 기쁜듯 걸어갔을테지요.
어쩐지 정겨웠을 뒷모습을 그려봅니다.
어쩌면 닮은듯해 보이는건 나만의 느낌일까요.
두분의 실루엣이 고창의 넉넉한 들녘을 보는듯합니다.
머지않아 하하와 걷게될 운곡저수지를 고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