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픈 사람을 한번 쳐다보기만 해도 불치병(不治病)이 낫고, 아픈 부위를 살짝 만지기만 해도 불치병(不治病)이 치유되는 신통력(神通力)을 가진 사람이 전북 정읍에 살았다. 최영단(1926-2004)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녀는 불치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하지만, 그녀가 불치병을 고치는 치유(治癒) 방법은 의외로 너무 간단하여 그 누구도 그것을 믿기가 힘들 정도였다. 손으로 액션을 취하는 것도 아니고, 안찰(按察)이나 안수(按手)를 하는 것도 아닌 다만 환자를 한번 쳐다보고 몇마디 말을 건넨 후에 가보라고 하면, 그것이 끝이었다. 최영단(1926-2004) 여사(女士)와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환자는 곧장 환부(患部)가 호전되었다. 그야말로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그녀의 이러한 기행이적(奇行異蹟)에 관한 소문은 금방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환자들이 수백 수천명씩 몰려들었다. 한때는 하루에 수만 명의 환자가 전북 정읍의 그녀에게 몰려드는 큰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곧바로 각종 신문에 대서특필(大書特筆) 보도되었다.
급기야 박정희 정권(1961-1979)에 의해 강제적인 해산 조치가 가해졌다. 1960년대 초부터 신문, 방송, 주간지 등에 요란스럽게 오르내리던 정읍의 만병통치(萬病通治)의 여인! 얼굴만 처다 보기만 해도 질병이 낫는다고 해서 전북 정읍시 입양면 시골에는 하루에도 수십대의 전세 버스가 드나들었다. 경찰에서는 교통 순경까지 동원하여 교통 정리하니라고 진땀을 빼는 일이 벌어졌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일부 환자들은 불만(不滿)을 가지기도 했다. 경찰에서는 미신(迷信) 조장의 우려가 있다고 하여 1963년 03월 그녀를 사기.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협의로 구속했다. 하지만, 공소 유지가 안 되어 무혐의(無嫌疑)로 풀려났다. 그녀는 그야말로 밀려오는 환자 인파 때문에 피신(避身)하듯이 쫓겨 다녀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부산시에 있는 친척집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산시 해운대 극동 호텔에 몰래 숨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에 문을 열고 보니 환자들이 수천명 모여들어 법썩을 떠는 바람에 또다시 도망치다시피 피신(避身)해야만 했다.
1960년대 초반에는 전국 각처에서 매일 1천명씩 인파가 몰려드는 바람에 급기야 철도 당국은 간이역인 천원역(川原驛) 전북 정읍시 입암면)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특별 열차를 운행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최영단 여사는 인정상관(仁正上觀 1887-1954)으로부터 도력(道力)을 전수받았는데, 그녀의 본업(本業)과 사명(使命)은 치병(治病)하는 것에 있지 아니하였고, “지맥(地脈) 잇는 공사(公事)”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공사(公事) 사명(使命)을 모두 마친 후에 2004년 귀천(歸天)했다. 최영단(1926-2004) 여사(女士)의 의원(醫員) 공부는 매우 간단했다. 바로 수연(隨然) 호흡법이다. 아랫배의 하단전(下丹田) 근육을 쥐어짜듯이 수축하여 한숨 쉬듯이 숨을 밖으로 배출하는 것이다. 그 후, 숨을 아주 부드럽게 들여 마시면 된다. 호흡이 하단전(下丹田)에 미치도록 하고, 길게 종용(從容)한다. 마음 역시 하단전(下丹田)에 부착(付着)한다. 앉아 있을 때나 걸어 다닐 때에도 항상 허리를 꼿꼿이 하고 아랫배를 자연스럽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늘 기운(心火)이 땅으로 내려가고, 땅 기운(腎水)이 하늘로 올라가는 천지상교(天地相交)의 이치이다.
"말과 행동은 천지(天地)에서 보고 있으니 깊이 생각하고 말을 아껴야 하며, 호언하고 실행치 않으면 죄가 된다. 애 쓴 것 몰라 준다고 한탄해서는 안 돼. 애쓰면 애 쓴 만큼 덕이 되고 복이 된다. 너희들은 몰라도 신명(神明)은 알어! 도(道) 닦는다고 조용한 곳에 길들여지면 음지(陰地) 식물이 되어서 햇빛을 보면 시들해 져! 참다운 수행을 할려면 생활 속에서 궁구하고 마음을 바루고 덕행을 해야 해!"
연휴 즈음하여 사는 곳에 들고 나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별 대접을 잘 하는 것도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들고 나니 가끔 쓸고 닦기도 하고 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 사람사는 곳에 사람 찾아오는 일이 고마운 일인데 몸이 좀 고단해 하는가? ' 물어보기도 하고 긴장하지 않고 잘할려고 하지 않고 그저 편안히... 숨을 쉬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이곳에 인연이 닿아 온것이지만 그래도 와주니 정말 고마웠습니다.
오늘 부모님을 뵈러 순천가는 은서네를 보내며 은서엄마 손을 잡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 와줘서 고맙다고'
오신 분들이야 편안했는지, 어떤 이유로 왔는지 모르지만 제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아는 선생님이 살아 생전 최영단 할머니를 몇차레 찾아 뵈었는데 최영단 할머니를 찾아 오는 사람들이 늘 150명은 있었다 합니다. 그들을 먹이고 재우는 일 만해도 없는 살림에 참 녹녹하지 않았을텐데 할머니는 평생을 그리 사셨다고 합니다.
저는 최영단 할머니 얘기를 들었을때 병을 낫게 한 얘기보다 그리 오신 분들을 그분이 가시겠다 할때까지 그리 거두어 먹이고 재웠다는 얘기를 듣고 '참 어른이다.' . '정성은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에 오고 가는 귀한 인연들을 이리 모시면 좋겠다 생각하니 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_()_
첫댓글 글을 쓰고 나니 글에 밑줄이 생겼는데 어찌 지워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게 부러 그런것도 아니고 그걸 강조 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생긴줄을 없앨수가 없어 그냥 둡니다.
소설 같은 이야기네요~!
정성을 다하시는 참 어른,
대단하신 할머니를 두셨네요~!
저의 친할머니가 아니라 공부하다 알게된 분인데 저도 알았을때는 이미 세상을 달리하셨고 얼마전에 정읍에서 할머니 따르는 분들과 가족들이 지내는 제사에 다녀왔어요.^^
우리 모두의 할머니~~~^^
불과 얼마전 우리 가까이에 이런 어른이 계셨다는게 놀랍고 고맙고 할머니 가르침을 잘 새기며 살고 싶기도 하고 수행공동체 사랑어린 배움터 식구들과 나누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