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재천(人命在天)의 현대적 해석
동양의 고전 '순자(荀子)'라는 책자에 나오는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고, 나라의 운명은 예의에 달려 있다(故人之命在天, 國之命在禮)"에서 유래된 ‘인명재천(人命在天)’이란 사자성어는 과거 사람의 수명은 하늘(天)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죽고 사는 문제를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또한 ‘인명재천(人命在天)’은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장수를 할지 단명을 할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요즘은 자연재해나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인명(人命)은 재차(在車)"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렀고 세상도 많이 변했으면 ‘인명재천(人命在天)’이란 말의 의미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동양 고전의 틀에서 벗어나자는 말씀은 아닙니다. ‘인명재천(人命在天)’에서 ‘하늘(天)’을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神)’적인 존재로만 해석할 게 아니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근거들이 동양고전에 많이 있습니다.
중국 송나라 주희가 논어의 구절에 대한 선대 학자들과 자신의 주석을 모아서 엮은 ‘논어집주(論語集註)’를 보면 ‘天 卽理也(천 즉리야)’, 즉 “하늘(天)은 이치(理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치(理致)’란 무엇인가 알아볼 것 같으면, 중국의 철학가 왕부지(王夫之)는 그의 철학서 ‘장자정몽주(張子正蒙注)’에서 “이치는(理者) 사물 본연의 법칙이자(物之固然) 사물 발전의 까닭이다(事之所以然也)”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동양의 고전 '대학(大學)'이라는 책자에서도 도(道)를 실천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하여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격물) 지식을 넓히는 것(치지)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치는 사물이다”라는 말씀이고 “사물을 떠나서 이치는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즉 홍수나 폭풍우 같은 자연현상도 하늘(天)이고 식량도 물도 하늘(天)인 셈입니다. 그러니 자연재해인 홍수나 폭풍으로 죽는 것도 인명재천(人命在天)에 해당되며, 가뭄이 오래 지속되어 기근으로 굶어죽는 것도 인명재천(人命在天)에 해당되며, 각종 인재(人害)에 의한 참사로 죽는 것도 인명재천(人命在天)에 해당되며, 교통사고로 죽는 인명재차(人命在車)도 결국 인명재천(人命在天)에 해당되는 셈입니다.
그런가 하면 '맹자(孟子)'에서는 권력(權力)도 하늘(天)로 봤습니다. 맹자에 보면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늘(天)은 권력(權力)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리고 인간의 역사를 보면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인간의 모든 죽음은 병으로 죽든 사고로 죽든 모두 인명재천(人命在天)에 해당되는 겁니다. 이처럼 동양의 고전은 인명(人命)을 자연(自然)으로 본 것입니다. 즉 사람도 자연인 셈입니다. 하늘(天)이 이치(理)가 되고, 이치(理)가 사물(物)이 되고, 사물(物)이 자연(自然)이 되고, 자연(自然)이 인명(人命)이 되고, 인명(人命)이 다시 하늘(天)이 되는 셈입니다.
서양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신즉자연(神卽自然, God or Nature), 자연즉신(自然卽神, Nature or God)”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이 자연이라는 건지 아니면 자연 속에 신이 있다는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자연이 신이고, 신이 자연이면 범신론이 되는 겁니다.
도(道)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자연(自然) 속에서 신성(神性)이나 불성(佛性)을 가진 '한 물건(一物者)'으로 비록 성인도 아니고 범부도 아니지만 때로는 범부 노릇도 하고 성인 노릇도 하는 것 같습니다.
글·사진/이화구(CPA 국제공인회계사·임실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