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류근)
어젯밤에는 드디어 약 30여 분의 사투끝에 늙은 호박을 해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곤 그 옛날 어머니가 겨울에 끓여주시던 호박김치국을 끓여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밤 10시 40분이었다. 몹시 흡족하였으므로 자정 넘어 라면의 유혹마저 물리친 채 그냥 누웠다.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 읽는 예언서가 달콤했다. 인류는 곧 멸망한단다~! 아아, 이런 황홀한 복음이라니!
아침을 좀 일찍 먹으려고 오전 11시에 밥솥을 열자 누룽지 두 숟가락이 깔려 있었다.
부처님이 보내주신 쌀이 두 가마니나 쌓여있는 집에 밥이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너무나 행복해서 곧 2015년산 롱패딩을 걷어입고서 중공군 장교 같은 자세로 한남동으로 갔다. 과연 강바람이 매서웠다.
한남동 단골 중국집에서 옛날 짬뽕국물에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오는 길엔 한남오거리 조낸 비싼 빵집에서 조낸 비싼 빵도 몇 개 샀다.
들비도 연말엔 조낸 비싼 빵도 좀 먹어줘야 한다.
오늘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핸드폰을 여는 순간 인생이 구슬퍼지기 시작하였다.
더럽고 썩은 이야기들이 뉴스의 옷을 입은 채 돌아댕기고 있었다.
도무지 제정신으론 살아남기 힘든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마구 나를 두들겨 팼다.
나는 혼자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고 쌍코피가 흐르고 다리를 절룩이며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문앞에 동그마니 들비가 앉아 있었다. 들비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냉장고에 잘 끓여둔 맥주를 꺼내서 눈물을 질질 흘리며 세상을 한탄하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종소리처럼 하느님의 음성이 댕댕 들려왔다. 아이고~ 이 돌대가리 내 새끼여!
그땐 몰라서 행복했고 지금은 알아서 불행한 거시냐! 이 단순한 좀벌레 같은 존재여!
아아, 시바! 그랬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그 예전에도 있었다.
지금보다 더 심하고 음습하고 악랄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명박, 박근혜 시절엔 더 많은 악마와 짐승과 괴물들이 맘대로 설쳐댔었다.
다만 그 사실을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통제되고 관리된 언론에 의해서 지극히 어여쁜 정보만을 취식했던 것이다. 보여주는 것만 보았던 것이다.
나쁜 놈들끼리 다 해처먹어도 그걸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되고 있는가. 맘대로 해처먹는 놈들이 하나 하나 다 알몸뚱이를 들키고 있는 중 아닌가. 정치, 재벌, 언론, 검찰, 사법, 종교, 사학, 의료, 가짜 진보, 기회주의자, 친일매국세력, 반민족 반국가 매국 세력, 그냥 부패 쓰레기 부유물들...
이런 것들은 별안간 뛰쳐나온 것들이 아니다. 원래 있었고 원래 해처먹던 것들이다.
그것이 이제 저수지에 물이 빠지자 펄떡거리는 메기새끼들처럼 도드라지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이 잘못하고 촛불혁명이 실패하고 깨시민들의 노력이 부족해서 준동하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실망하고 좌절할 일이 아니다. 명품 옷 입는다고 몸 안의 때가 사라지는 것 아니다.
시민의 의식과 실력이 발전하자 드디어 드러난 우리 사회의 묵은 때들... 욕탕에 집어넣고
잘 불려서 국산 이태리 땟수건으로 박박 문질러 씻어버리면 된다.
하수구한테 좀 미안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땟수건은 땟수건의 일을 하고,
하수구는 하수구의 일을 하면 된다. 알아서 병이 아니라, 아니까 고칠 수 있는 병이다.
오늘 참 별 디런 뉴스들이 넘쳐나고 있어서 헷갈려하는 동포들 계실까봐 연말 기념으로 좀 긴 썰을 풀었다.
조낸 죄송하고 뜨뜻하다. 묵은 때 벗기러 충주 수안보 온천에 들앉은 기분인 거시다.
그러니 우울과 분노와 실망을 버리고 다 함께 힘을 내자.
나는 안주가 다 떨어져서 이제 들비 주려고 냄겨두었던 조낸 비싼 빵 뺏으러 가... 시바,
첫댓글 구수한 된장국 한 그릇을 먹은 듯 빙그레 웃음이~ 마침표가 아닌 쉼표의 여운이.
방송화면세서 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어조. 인간적이랄까. 인간적인 게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