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스치는 옷자락 사이 사이와 가벼워진 발걸음에서 봄이 오는 길목임이 느껴진다. 저녁 무렵 집에 온 딸 나윤이가 연어 주문 배달 보다 10분 먼저 왔다. 나윤이가 빈손으로 오지 않고 마음을 표현한다.
이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서 스니커즈가 아닌 앙증맞은 단화를 신고 은색 체인줄에 주먹만한 크기의 포인트 핸드백을 메고 왔다. 세담인 옥의 티를 찾 듯 볼 옆으로 이틀 전 쯤 움트고 있었을 것 같은 청춘 심볼 자국을 빠르게 알아차린다.
엄마의 마음이다. 나 보다 더 이쁘기를 나 보다 더 좋은 거 먹기를 나보다 더 잘 지내고 있기를.
이튼날 뭐라도 필요한게 있으면 사주고 싶어 무작정 집을 나섰다. 신세계 백화점과 이마트 진입이 주말 특수 답게 긴 차량꼬리가 이어졌다. 빠듯한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겠다.
그나마 잘 이동하나 싶었는데 옆으로 낄 수없도록 차선 금지봉이 완벽수비를 하고 있다. 가끔은 왔었어야 헷갈리지 않게 이용하겠구나 싶다. 그럼 이마트 주차를 시도 해 보려는데 들어가는 입구가 다시 한바퀴는 돌아서 들어가는 모양새다.
이러다 시간만 낭비하겠다 싶어 행선지를 바꾸려고 지나가는 이곳은 내가 초등 5학년 때 살던 동네 광천동에 벌써 와 있었다.
10살 세담이가 시골서 올라와 5ㆍ18을 겪은 첫번째 집은 전대 후문이였다. 인심 좋고 음식 솜씨가 좋은 엄마는 하숙을 하셨었다.
그 시절 재테크의 수단으로 여느 엄마들 처럼 엄마도 계를 하셨었는데 중요한 건 계주 이모께서 야밤 도주로 우리집 가세는 급격히 기울어 버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폭망했다.
그래서 남은돈에 맞춰 이사하느라 이 곳에서도 살았었다. 도시 환경속에 새롭게 단장된 새 학교를 뒤로하고 사방팔방 허허벌판 같은 극락강 뚝길을 오고가며 도시 속 시골 학교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내 최애 친구 문희를 있게 해 준 추억과 애정이 넘친 곳이다.
십년이 넘도록 재개발 기운만 돌더니 얼마전 문희가 큰언니 얘기를 하면서 재개발이 확실해 졌다고 들었다. 딸 다섯에 막둥이 아들이 있는 문희 친정가족 중 큰 언니네가 여태 지키고 사는 동네이기도 한다.
어릴적 기억이 많아서 일까? 난 아주 가끔 지나쳐 온김에 일부러 찾아가 이곳에서의 어렴풋한 기억에 퍼즐 맞춤을 즐기곤 했었다.
단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듯 한 기분도 들고 어릴적 내가 막 돌아 다니는 것 같아서 좋았다.
구획을 정해주 듯 아직도 약국이 그 간판 그대로 지키고 있고 정류장 앞 석유집이던 문희집도 그대로 있다.
딸 나윤이가 엄마 살던 동네를 가보자고 한다. 나의 어릴적을 딸과 함께 더듬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것 같아 한바퀴를 돌아보고 마땅한 주차자리를 찾아 놓고 걷기 시작했다.
그 당시 수퍼 옆 단층 양옥집에 살던 꼬마가 재래식 화장실에서 빠져 죽어 온 동네가 떠나 갈 듯이 통곡하던 아주머니를 옆집 살던 세담이 담벼락 넘어 보았었다. 덕분에 온식구가 세담이 화장실 문을 지켜주고 살았었다. 그 때 그 집들이 그대로 있다. 낡다못해 삭아버린 우편함도 여러번 덧칠한 구멍 똟린 담벼락의 모습으로 옛날 우리집도 있다. 들어가 보고싶은 충동이 일지만 기웃거리기만 했다.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저작거리 처럼 두부와 콩나물 심부름이 잦았던 부식거게도 그 자리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부잣집으로 기억되었던 이중 대문 집도 보인다. 첫 대문 위로 늘어졌던 빨간 장미 덩쿨이 위화감을 줬었다. 큰 개가 늘 컹컹 짖어대어 세담인 멀찍이 부터 달려 다녔었다. 이중 대문은 위태롭게 보인다. 휘어진 우리네 할머니 뒷 모습 처럼 간신히 삐닥 하게 검은 쇠먼지를 둘러쓰고 열려져 있었다.
내 언니들이 주산과 부기를 배웠고 취직이 된 후 잠시 알바를 하며 집을 오갔던 그 건물도 찾았다. 지금은 어린이집으로 변해있다.
세담이 그냥 지나가지 않았던 그 건물 앞 노점 포장마차가 오버랩 된다. 새끼 손가락 크기의 불량 소세지를 그나마 반으로 잘라 넣고 이스트를 가득 넣고 만들었는지 살이 빵빵한 핫도그. 베어 먹어도 먹어도 나오지 않는 소세지였다.
계로 망한 집안 살림살이는 좀처럼 펴질 않았나보다.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한번 더 이사했던 이층 집도 들렀다. 새 집이고 내 서랍장도 따로 있다고 세담이 들떠있었다. 보물들을 몰래 넣어두고 내 것의 명의를 확실 하게 한 시절이였다. 그 때 부터 세담인 니스칠 냄새와 페인트 냄새를 좋아했던거 같다.
이층 방 창문을 꼿발을 딛고 내려다 보면 상가로 늘어선 한쪽 칸에서는 찐빵과 만두가 가득 앉아있고 모락모락 피오르는 우주만 한 은색 찜통이 지키고 있었다. 오늘은 보니 컴퓨터 수리 상회가 되어있다.
봄이 오는 길목 뜻밖에 장소에서 콸콸 틀어 놓은 수돗물 처럼 그시절 얘기 보따리에 따스한 봄볕이 내리쬔다.
토방에 앉아 무릎 베개는 베어주지 않았지만 어릴적 엄마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 졌는지 나윤이 얼굴에 보드라운 미소가 봄 아지랭이 처럼 피어오른다. 어린 세담이가 제법 귀여운가 보다.
내 어릴적 동네를 아직까지 볼 수 있다는거 자체가 크나큰 행운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오손도손 딸과 함께 참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잘 온 거 같다.
한참 때를 지났으니 한번 더 백화점을 가보자며 드디어 들어왔다. 배웅하는 겨울과 마중 나온 봄이 엉켜 있다. 상큼한 봄에 심쿵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겨울에 아쉬움이 묻어지고 있다. 다 큰 딸과 둘이 만 즐기는 맛이 이곳은 있다. 무겁지도 않은 쇼핑백을 서로 들겠다며 옥신각신.
엄마 옆에 있을 땐 아무 것도 시키고 싶지 않는 내 마음과 엄마를 최대한 편하게 해주고 싶은 살뜰한 딸의 마음이다.
눈길 머무는 곳엔 서로 사주까? 물어보는데 똑같이 아니야로 팔을 당긴다. 어리광 좀 피우지? 사달라고 떼 좀 쓰지? ᆢ
봄이 오는 길목에서 휘리릭 오트밀 롱코트를 날리며 나윤이가 또 간다.
이렇게 왔다가면 세담이 이쪽저쪽 한달 가량을 또 기다린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살겠지ᆢ
보내고 이틀 남짓은 아린감이 남는다. 밥맛도 안돌고 우리만 먹는 먹거리에 마음이 짠해진다.
어릴적 살던 동네 얘기에 왠지 스산해지네요. 멀지않은 곳의 내 고향도 들를적마다 마음이 싸아하니 쓸쓸해져옵니다. 번성하긴 커녕 쇠락해져가는 풍경들이 마음 아픈게지요. 세담은 좋겠네요. 딸과 자주 만나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요. 좋은거 놔뒀다 딸 주면 엄마도 좋은거 써~하며 매번 사양하는 딸이 서운해요. 사달라고 떼써도 되련만 도무지 그런적이 없으니요. 살뜰하고 다정한 모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글에서도 느껴지는 따스한 시간이었어요.
첫댓글 창가에 드는 햇볕같은 이야기 너무 정겹습니다. 도란도란 얘기 소리 들리는 듯 평화롭습니다.
엄마와 딸,
서로 애정하는 모습에 가슴이 촉촉해집니다. 봄결같은 부드러운 모녀 사이입니다.
옛 추억을 더듬어 '동네 한바퀴'.
세담 님의 감성따라 저의 그리운 옛날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릅니다.
어릴적 살던 동네 얘기에 왠지 스산해지네요.
멀지않은 곳의 내 고향도 들를적마다 마음이 싸아하니 쓸쓸해져옵니다.
번성하긴 커녕 쇠락해져가는 풍경들이 마음 아픈게지요.
세담은 좋겠네요.
딸과 자주 만나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요.
좋은거 놔뒀다 딸 주면 엄마도 좋은거 써~하며 매번 사양하는 딸이 서운해요.
사달라고 떼써도 되련만 도무지 그런적이 없으니요.
살뜰하고 다정한 모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글에서도 느껴지는 따스한 시간이었어요.
세담님, 서정 넘치는 수채화같은
글솜씨 다시 놀랍니다.
비유법 은유법 화려하며 재밌네요
성숙한 모녀의 마음씀이 정겹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