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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팬션 앞에서
환갑여행!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아내가 며칠 전부터 하나씩 준비한 음식물 보따리를 쌌다.
갈비, 양념게장, 깻잎김치, 배추김치, 송편, 멜론, 사과, 참기름을 큰 아이스박스에 담아 체크무늬 보따리를 만들었다.
서울을 거쳐 삼척에 가서 2박3일 동안 입을 옷과 여러 물품을 담은 배낭을 메고 아내는 손가방을 들고 광주역에서니 영락없이 시골 양반 서울 아들 찾아가는 차림이었다.
40년 가까이를 재봉틀에 코를 박고 틀에 박힌 땀수처럼 건너뜀도 없이 촘촘 박아온 세월을 탈피하는 여행은 추석을 코앞에 둔 생일 때문에 아이들이 두 번을 내려 올 수 없어 두 아들과 작은 며느리를 만나러가는 환갑 여행과 추석 역 귀성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며느리가 반갑고 크게 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아버님 어서 오세요~ 아 하하하하”
며느리와 아내는 손을 잡고 안아보고 그렇게 주차장으로 가고 두 아들은 짐을 옮겨 싣고 오늘의 스케줄도 알려 주지 않고 대관령으로 향했다.
나는 카스를 열고 아래 퀴즈 글을 올리고 환갑여행기를 댓글로 달기 시작했다.
‘내가 환갑 여행을 가는 곳은( 0 0 ) 동자도 다 안다.’
‘여주 지나 문막 경동대가 산위로 보인다. 왼쪽으로 처음 들어 보는 송호 대학 이정표가 보인다. 횡성 1킬로 전. 새말 안흥 1킬로 전. 평창 33킬로 이정표가 보인다.’ 이렇게 이정표만 적었다. ‘횡성 휴게소에 도착 잠시 쉬었다. 봉평 터널을 지나 속사까지 속사포로 달려왔다.’
아내는 아이들이 환갑 여행지를 ‘삼척’ 이라는 말 외에 모든 것을 숨기고 하는 깜짝 이벤트라 오늘 일정이 매우 궁금해서 물었다.
“오늘 스케줄이 도대체 어떻게 되지?”
“엄마, 지금 이렇게 가는 것이 스케줄인데요? 하하하하.... 약 3시간가량 차를 타고 달리는 것이 스케줄이라고요 하하하......”
이렇게 궁금증을 유발 시키는 작은 아들 외에 별로 말이 많지 않은 조용한 가족은 간간히 던지는 필요한 말 외에 침묵의 시간이 많아 말없는 내가 말의 미끼로 조크를 던져야했다.
“아들아 스케줄을 너무 진부하고 지루하게 잡지마라, 짭짤하게 소금을 강하게 쳐라”
엉뚱하게 던지는 조크를 누가 알아먹겠나. 그래서 둘째가 물었다.
“네? 진부가 뭐예요 지루는 알겠는데?”
나는 ‘사상과 행동 따위가 낡아 새롭지 못하다’는 진부를 설명하기보다 진부와 소금강이 몇 미터라는 이정표를 보고 한 말이라 이정표를 못 본 가족들은 깜짝 조크를 알 리가 없어 썰렁해졌다.
말이 끊기고 나는 삼척퀴즈에 댓글만 올렸다.
‘대관령 해발 800미터 공기가 청정 지역. 하늘 목장 에코 그린 켐퍼스 도착.’
멀리 산등성에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곳곳에서 보였다.
그 때야 둘째가 ‘양몰이관람’을 하러 왔다고 했는데 이 스케줄은 큰 아들이 검색하여 강 추한 환갑여행 첫 번째 깜짝이벤트였다.
식당에 들러 잠시 먹을거리를 찾았다. 그런데 그곳은 라면과 어묵 구은 계란과 햇반 등 간단한 음식만 있었고 라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00식품 회사의 과자 사진이 식당에 광고판으로 걸려 있는데 추억의 대표작은 아마도 뽀빠이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환경오염을 생각해서 조리 음식은 팔지 않는다고 해서 컵라면이 익는 사이에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
“오 마이 갓!”
화장실 바닥 타일이 전부 들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타일 부딪히는 소리가 떨그덕 떨그덕 냄새는 역하고 수도꼭지도 불량이고 물길도 약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대한민국 화장실은 더럽지만(?) 여기 화장실이 관광객을 쫒아내는 지독한 환경오염이었다.
컵 라면을 반쯤 먹고 버리고 온 둘째가 서둘러 식탁을 치우는데 아직 햇반과 단무지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느긋한 큰 아들은 컵라면에 햇반과 단무지를 끝까지 모두 먹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그냥 버리지 맛도 없는 밥을 단무지 하나로 다 먹어 치우다니 객지 생활에 얼마나 못 먹었으면 저럴까......’ 하는 자식사랑이 오버하여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내가 ‘운다 운다 운다’하고 세 번만 하면 단무지 같이 진한 모정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아들은 중고교 교사다. 1년 동안 평창에 있는 농장학교 파견 근무로 씨 뿌리기에서 수확까지 하고 토끼와 오골계 등등 가축 기르기 체험의 산교육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왔다. 그런 아들이 쌀 한 톨이라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교사의 자질을 갖추었고, 교사의 말에 설득력이 있으려면 먼저 모범을 보여야하기에 행동이 몸에 익어 그대로 나온 절약 정신이라는 희망의 눈으로 보았다.
스님들의 식사 끝마무리는 단무지로 밥그릇을 깨끗이 닦아 낸 뒤에 그 단무지를 먹는 것처럼 아들은 깨끗이 먹어 치웠고 우리부부는 단무지 하나로 샴쌍둥이 머리에 충격을 가하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잠시 모정은 슬프고 부정은 잘하고 있다는 이심 동체의 다름의 미학을 보았다.
배부른 우리는 목장의 언덕을 올랐다. 나는 입구 화장실에서 맡은 역한 냄새에 중독되어 양의 똥냄새도 그리 역하지 않았다. 아니 양 몰이 공연을 보러 가는데 양 똥 냄새가 별건가라고 생각했다. 생전 처음 보는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양떼가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다. 공연을 하는 리더 아저씨가 바이크에 양몰이 개를 태우고 들어오더니 관람객 앞에 내려놓고 드넓은 초원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휘파람을 불었다.
“삐 위 이이이익~”
갑자기 개가 달려 나가더니 우리를 뛰어넘어 아저씨 곁에서고 아저씨의 지시에 따라 시계방향, 시계반대방향, 에스코스, 뒤쳐진 양을 구해 돌아온다는 빽 코스 등등을 보여 주고 본격적인 양몰이로 멋진 장면을 연출 할 때 우리는 카메라와 디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동영상을 담고 아내는 구경만하고 둘째와 며느리는 사진을 찍느라고 눈 코 뜰 새가 없었는데 이건 내 환갑 여행인지 뭔지 거꾸로 된 것 같았지만 양과 개가 벌이는 개판이(?) 즐겁기만 했다.
우리 가족은 사진을 찍는 스타일도 각각 달랐다.
나는 피사체를 포착하면 실수 없이 찍는 스타일로 나중에 정리할 때 보면 버리는 사진이 별로 없이 찍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2~3분짜리 동영상10여 편과 사진 50여장을 찍었다. 하지만 둘째는 자연스럽게 찍는다며 다량으로 찍어 그중에 하나라도 건진다면 대박이다 하고 300여장이나 찍었다. 장남은 꼭 필요한 사진 외에는 찍지 않는다는 생각인지 사진 찍는 모습이 별로 포착 되지 않았다. 사진 찍기와 찍히기도 싫어하는 아내는 때에 맞춰 핸펀이 고장 나 먹통이라 아무것도 못한 진정한 휴가였다. 그리고 며느리는 동물을 좋아하면 손자가 늦어진다는데 그런 시어머니 걱정에 맞춰 양, 개, 타조, 소 등등 가축만 열심히 핸드폰에 가축하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데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신랑만 열심히 가축하고 있었다.
목장의 소와 양 그리고 타조를 보고, 가을 동화에 나온다는 사랑 나무도 보고, 한 대에30억이나 든다는 풍력 발전기가 100여대나 있는 대관령 장관을 보고 내려와 몸을 싣고 달리며 ‘정동진 2킬로 전. 동해 1킬로 전.’이라고 올렸다.
동해 이정표 앞을 지나가자 송 창식에 고래사냥이 생각난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운전을 하던 둘째가 말을 받았다.
“아빠, 그럼 어디 한번 불러 보세요.”
그러자 아내가 웃으며 남편이 평소에 즐겨 부르던 송창식 노래를 아이들과 며느리에게 자랑을 하려고 맞장구를 쳤다.
“어디 한번 불러 봐요.”
“그럴까? 그럼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술 마시고를 차 마시고로 가사를 바꾼다. 자~”
“차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지~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 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어~ 어 어이~ 어 어이~~우리의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우리의 가슴속에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안 마아 리이........”
고래사냥을 하려고 리듬의 파도를 타고, 비록 목소리는 환갑 나이만큼 늙었지만 애창곡이니 그래도 봐줄만하다는 자평아래 이어졌지만 너무 길면 지루하고 식상할까봐 중간에 노래를 끊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우리 신랑은 쎈스가 만점이야’하며 활짝 웃음으로 박수를 했다.
이때 조수석에서 인간 네비게이션이 진짜 네비게이션과 핸드폰으로 열심히 교통지도를 하고 있던 며느리가 신랑이 졸음운전을 할까봐 입안이 상큼 하라고 껌을 몇 차례나 넣어주고 손수 받아내고 오징어를 찢어 넣어주고 과자도 넣어주고 식구 모두가 질투 날 정도로 내조를 하다가 특유의 큰 웃음을 날리며 한손을 번쩍 들더니“선택 하겠습니다~”하고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아내가 둘째 때문에 자주 보았던 음악 프로그램의 낮 익은 그 말을 따라했다.
“선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선택에 작은 아들은 반기를 들었다.
“에이 아빠는 노래를 정~말로 못한다. 나는 선택 안 하겠습니다~ x 하하하하”
그래, 그 녀석은 실용음악 학원 원장인데 그리고 전공자인데 정확한 잣대를 들이 댓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남은 아까 단무지 먹는 것을 본 것처럼 무만 뚝뚝 썰어 먹었는지 무뚝뚝 아무 말도 없이 핸드폰만 바라만 보고 있어 할 수없이 아내가 옆구리를 찌르는 말로 여러 차례를 물었다.
“아들 너는 어때 선택이야 아냐? 말해 봐, 빨리 어서~”
“둘이나 선택 했으면 됐지요 뭘 더 물어 봐요~”그렇게 단답형 말 한마디로 말문을 닫았다.
이 장면은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미자의 트롯트 공연장에 끌려온 모습이고 한줄 촌평은 이방인처럼 보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에 있었고 서울로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하고 대학원 두 곳을 졸업하고 그렇게 긴 세월을 떨어져 살았으니 내가 낳은 아들이라도 그 속마음에 깊이를 알리오, 미루어 짐작 하건데 아내의 얼마 전까지 아니 지금도 존재하는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은 밖으로 나오면 분위기가 들떠 약간 오버를 하기 마련이다. 나와 작은 아들이 그렇고 아내와 큰아들은 이성을 잃지 않고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울산 바위만큼 요동하지 않으며 주위의 어떤 일에도 묻어가는 편승이 없는 올곧은 성격의 그런 사람이다.
장남과 나는 창가에 앉고 아내는 중앙에 앉았는데 아들이 부스럭 하는걸 보니 무음 진동 핸드폰이 울었다. 아들의 대화 투는 빠르지도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하는데 저쪽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화는 조금 그야말로 조금 길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무표정의 아내, 그것은 세심한 신경 저 밑바닥까지 바짝 끌어당겨 아들의 여러 가지 모습을 살피려는 곤두섬이었다. 조금 더 길어지는 대화에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니 이것은 ‘아들이 사회생활은 잘하고 있구나.’ 라는 안도의 신경 풀림이었다. 그렇게 아내의 숨통을 터준 전화는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고 나도 성화 봉송 주자처럼 아내에게서 희망을 건네받았다. 명목상 나의 환갑 여행기가 아내에겐 두 아들 아니 큰아들 관찰 여행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둘째는 당겨진 활처럼 언제나 팽팽하고 긴장긴박감이 넘치는 활기가 있는데 큰 아들은 위용을 감춘 최종병기를 활용하지 않고 걸어두고 있을 뿐이라 언제 팽팽하게 살아있는 병기가 될까 엄마는 걱정과 근심으로 늦게 터지는 큰아들의 입술만 바라보는 여행기였다.
‘삼척 톨게이트 통과’
삼척 홈플러스에서 이틀간 먹을 장을 보며 둘째가 말했다.
“엄마 오수ㅇ 이가 된장국을 진짜 엄청나게 맛있게 끓이는데 한번 먹어보세요. 엄마가 서운할지 모르지만 진짜 끝내줘요~”
언제나 그랬듯이 자기 마누라 자랑이 꼬리를 물고 따라 다녔지만 아내는 첫 번째 얻은 며느리라 두 사람 사이좋게 사는 모습이 무척 좋아서‘그래 어디 한번 먹어볼까?’하고 빙그레 웃었다.
며느리가 장을 보기를 시작했다. 된장, 호박, 버섯, 두부, 생수 그렇게 장을 보고 다 보았다고 말하자 아내가 말했다.
“마늘은 안사? 대파는?”
그러나 둘째는 단호히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내의 표정이 ‘아니 무슨 된장국에 그것도 안 들어가지?’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자 생각지도 않았던 큰아들이 말문을 열었다.
“엄마, 그냥 하는 대로 놔둬요~”
나는 언제나처럼 말없는 큰아들의 마음을 읽었다. 서울식 된장국을 선보이겠다는 며느리의 음식 솜씨를 원본대로 맛보라는 뜻에서라고.
늦은 밤에 숙소 팬션에 들어와서 저녁을 준비하는데 아내가 거들려 하자 두 아들이 편히 쉬라하여 편안한 식탁을 받을 수 있었다.
바깥마당 식탁에서 큰아들이 숯불을 피우고 양념한 쇠고기를 지글지글 굽는 사이에 분위기 메이커인 둘째가 형을 띄웠다.
“와! 굽는 솜씨가 포스가 장난이 아니네?”
둘째는 자기 아내가 끓여온 된장국을 평해 달라고 하였다. 우리는 같이 산 세월이 40년 가까이라 똑같은 말이 나왔다.
“마늘과 대파가 안 들어가서 우리 입맛에는 2%가 부족하다 하지만 그런대로 맛있는데?”
둘째는 ‘맛있지, 맛있지?’ 하고 자기 아내 띄워주기에 열중했는데 두 사람의 사랑이 숯불처럼 뜨겁고 너무 달콤해서 저 불똥이 나에게 튀어 여행이 끝나면 마누라음식 잘하는 솜씨를 칭찬 좀 거하게 하라고 윽박지를 것 같은 숙제를 떠안으며 ‘서울식 된장국은 이렇게 생겼나?’ 생각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왔다. 작은 아들이 사전에 인터넷으로 삼척에 유명 떡 집을 검색하여 맞춤 주문한 떡 케익을 앞에 두고 촛불을 밝힐 라이터가 없어 한참을 찾다가 불 없는 케익으로 썰렁하게 축가를 부르려 할 때 며느리가 케익 자르는 칼에 부착 되어있던 성냥을 찾고서 크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 찾았어요, 성냥이 여기 있어요, 아 하하하하”
그러자 둘째는“어이구 우리 오수0 이가 찾지 못했으면 어쩔 뻔했어, 이건 기념할 만한 사건이야 이런 건 사진으로 남겨야 돼” 하면서 케익 칼을 카메라로 찍으며 제 아내에게 축가를 부르라고 했다.
“생일 축하 합니다......환갑축하 합니다.......”
“어이구 우리 오수0이는 노래도 잘해 하하하하”
둘이서 환갑 분위기를 띄우는데 오버가 오버랩 되어 다운을 시키려고 한마디를 했다.
“야 임마 축가가 어디 잘 부르고 못 부르고 가 있냐? 다~ 똑 같지 하하하하”
이번에는 둘째가 대관령에서 사온 두병의 우유를 내오더니 어느 것이 맛있고 비싼 우유인지를 맞추는 입맛 대결을 벌였다.
우유를 잔에 따라놓고 모두 돌아가며 한 모금씩 음미하며 선택을 했는데 나만 틀렸다. 여기에서 그 우유가 왜 비싼지를 박학다식한 큰아들이 긴~설명을 하자 그렇게 긴 말을 하는 아들의 말에 놀라 내 마음은 큰 바위가 흔들리는 사건처럼 여겨졌는데 아내를 살피니 그는 나보다 더 큰 울산 바위가 흔들리는 것을 본 사람 같았다.
밤은 깊어 가고 큰아들먼저 다음엔 작은 아들이 잠자리에 들고 넓은 거실에서는 강원도 큰 모기가 여기저기서 날고 나는 아내와 며느리의 대화를 위해 전자 모기 채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광주 모기는 작고 빨라 박수를 너 댓 번이나 쳐야 겨우 한 마리나 잡을 수 있었는데 강원도 모기는 굼떠서 박수 한번으로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놈의 모기는 도대체 우리가 어느 도시에서 왔는지 궁금하지도 않은지 한~마리도 물어 보는 입질도 없었다. “나 원 참 강원도 모기는 참말로 이상하지?”
나는 모기를 잡고 아내와 며느리는 도란도란 하하 호호 밤이 깊도록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가끔 듣는 귀동냥이 즐거웠다.
여행 둘째 날. 오늘은 대금 굴을 보러간다.
주위의 경관을 보며 감탄 하는 아내, 계단과 물소리 숲과 바위를 보면서 여행이 즐거운지 오래 걷기를 힘들어 하는 사람이 아픈 내색도 없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서 동굴 속에 폭포와 200년에 1센티 자란다는 여러 형태의 석순들을 보며 태고의 신비에 푹 빠졌다. 안내자가 웨딩드레스 뒷 태를 닮았다는 물줄기를 보았다. 또 앞을 보면 불상이고 옆을 보면 세종대왕 초상이라는 돌을 보라는데 나는 돌하르방을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안내자가 바로 하르방도 닮았다는 설명을 했다. 어찌나 물이 많은지 또 물 흐르는 소리가 엄청나게 커서 아내가 무서워서 벌벌 떨고 귀가 먹먹하여 말소리 전달도 어려울 정도였다.
굴에서 나와 강원도의 유명한 곤드레 비빔밥과 도토리묵을 먹었지만 내 어머니의 묵 쑤는 솜씨보단 덜하였다는 아내와의 공감. 감자전을 먹고 이번엔 숙소 코앞에 있는 삼척 해양 레일 바이크를 타러갔다.
폐선을 이용하여 만든 왕복 10킬로의 바이크는 편도 1시간20분으로 2인승 40대 4인승 100대로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탈수 있으며 동굴 안으로 루미나리와 레이져 쑈와 바닷가 구경은 언제 다시 와서 보고 싶었지만 올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아내는 신이나 웃고 고개를 까불까불 흔들며 바이크 페달을 신나게 밟아댔다.
저녁 식사는 삼척 횟집에서하고 저녁 예배를 드리려고 교회를 찾는데 검색한 교회는 없고 깊은 산속 언덕을 이리저리 올라가며 모두 의아해 하면서도 ‘여긴 강원도니까 산속에 전원교회가 있을 수도 있겠지?’했는데 산을 내려오니 도로가에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다니는 교회와 달리 추석 이라고 저녁 예배가 없어 못 내 서운해 하고 숙소로 돌아와 지구의 역사와 대금 굴 신비를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께서 창조한 걸작 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루를 마쳤다.
나는 타지에 가면 아침 일찍 일어나고 주변 학교운동장을 산책하는 습관대로 장호 초교와 장호 중과 장호 항을 선택하여 산책 겸 조깅을 했다.
마지막 스케줄은 큰아들이 근무하는 00산 학교를 구경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등포에 있는 아들의 학원과 신혼집을 방문하는 것인데 속초에서 서울 가는 길이 총 7시간이상 걸려 큰 아들네는 생략되고 말았다.
중간에 유명하다는 여주 이천 쌀로 밥을 해준다는 식당에 들렀는데 식당 분위기는 주막 분위기로 음 침에 가까웠다. 유명한 집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북적 거려 그냥 가는 사람이 많고 40여분을 기다려 나온 진하고 구수한 된장국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간장 게장은 비리고 짜고 별로였다. 그리고 역시 바깥 화장실은 10점 만점에 0점 화장실이었다.
식사 후 출발하여 3시간여를 달리며 아내가 말문을 열었다.
“엄마하고 아빠하고 음식 장사를 해보려고 하는데 어때?”
“식당 요? 엄마가 음식을 잘하시기는 하지만 음식장사는 몸으로 하는 수고비를 건지는데 엄마는 일을 장시간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안 되는 거예요”
나도 거들었다. “너희 엄마 스타일은 카운터에나 앉아 있는 스타일인데 장사가 되겠냐?”
이렇게 이어지는 장남의 장광설에 아내는 넋이 나갔다. 아니 장사는 물 건너가고 비록 느리지만3일 만에 후끈 달아오른 무쇠 솥 같은 아들이 믿음직스럽고 자식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과 단답형의 말이 아니라는 그것 자체만으로 행복 만땅(?)의 아내 얼굴 이었다.
둘째의 냄비같이 달아오르는 모습만 보다가 무쇠 솥을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그러나 나는 말한다. 둘째는 금방 끓었다가 바로 식는 양은냄비 사랑이었다면 이제 결혼을 하여 양은 냄비가 최첨단 신소재 합금을 만나 새 제품으로 만들어져 나왔으니 나는 누가 못 사가게 떨이를 하고 싶은 둘째와 며느리를 소장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행복 2배다.
둘째네 빌라에 도착해서 작년 8월부터 못 본 신혼여행 사진을 보았다.
며느리는 1년 사이에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성숙함이 묻어났다, 아니 그때가 너무 어리고 깜찍한 문근영이 같이 어린신부 같았다는 말이 더 바른 말 같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아내가 내말을 너무 똑바르게 며느리에게 돌 직구를 날렸다.
“ㅇㅇ아 1년 사이에 네가 고생을 많이 했나 나이가 들어 보인다.”
새 신부에게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것은 유쾌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을 분석 해보면 ‘그동안 내조 하느라고 고생해서 그런다 우리 착한 며느리.......’하는 며느리 사랑의 짠한 마음이 내포된 말이었다.
곧이어 결혼기념일에 둘째가 실용 음악가답게 만들어 주었다는 깜짝 동영상을 보았다. 마치 손오공이 다리털을 뽑아 훅 불어서 만든 것처럼 닮은 꼴 트리오 가수를 설정하고 아래에 자기 이름 자막을 넣었는데 의상 코디만 부분적으로 조금 다를 뿐이었다.
한명은 잘생긴00. 원장님00. ‘남편00’으로 설정하여 메인은 보컬가수, 양편으로는 허밍과 부분 파트를 맡은 백업 가수가 서있고 따로따로 동영상을 찍은 것을 한 화면 안에 집어넣어 세 사람의 가수가 노래를 하는 영상으로 만든 것이었다.
신선한 결혼기념일 뮤직 비디오에 웃음소리가 가장 큰 며느리는 기쁨과 행복의 박장대소를 하고 우리 부부는 신선한 충격 영상에 한아들을 놓고 이놈 저놈을 했다.
“이놈이 더 어려 보인다. 아니야 저놈이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아니야 저놈은 귀여워”
모두 입이 귀에 걸린 웃음을 웃었는데 나는 갑자기 웃을 수가 없었다. 아직 미장가인 큰아들도 그 영상을 처음 볼텐데 우리처럼 웃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오버 하지 말자는 걸림이었다. 큰 아들의 불편함을 마음으로 감싸주자는 정지된 웃음 이었다.
둘째에게 말을 걸었다.
“00아 이 영상 유투브에 올리면 조 횟수가 엄청 나겠다 참 신선해.”
며느리는 결혼기념일 선물로 받은 동영상에 싱글 벙글 호호 하하 밝은 웃음을 웃었다.
밤은 깊어가고 큰 아들은 집으로 가고 우리부부가 열차를 타러 갈 때 둘째 부부가 역까지 배웅을 했다. 간단한 저녁을 먹고 시간이 되어 몸을 실었는데 환갑 여행의 피로가 몰려오고 깊은 잠에 빠졌다. 장모님을 뵈려면 전주에서 내려야 하는데 우린 그만 오수까지 가서 잠이 깨었다. 전주에 사는 처제에게 전화를 걸어 그 차를 타고 안개가 조금 낀 도로를 달려 처제 집에서 지친 몸을 쉬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갔다가 며느리에게 오수까지 갔다는 문자를 날렸는데 조크를 전혀 못하는 며느리가 조씨 집안 입성을 대박으로 알리는 조크를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 왔다.
“제 이름이 ‘오수0’이라서 오수까지 가셨나 보네요ㅋㅋㅋ 몸은 좀 어떠셔요?”
“어머님 너무너무 행복 했어요. 언제 또 가요 하하하하”
아내도 전화를 받고 기쁜 웃음이 떠나지 않아 며느리 닮은 큰 웃음을 웃었다.
이렇게 행복한 환갑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그제야 죽마고우 두 친구 아들의 슬픔을 떠올리며 그렇게 잘 살지도 않은 내 아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는 호사를 누리지 않았나 싶었는데 아내의 재치 있는 발상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00아 욕탕수건 함에 적지만 돈을 넣어 두었으니 너희들 필요한데 쓰도록 해라.”
이번엔 큰아들이 마음에 걸려 둘째와 똑 같이 계좌 이체를 시키고 문자를 넣었더니 답장이 왔다.
“엄마, 저희가 준비해서 모시려고 한건데 다음엔 고마움은 말로만 표현하시고 부담 없이 대접 받으세요, 몸 건강히 다음에 뵈어요.”
깊이를 알 수 없는 장남의 한 문장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아들보다 못하게 너무 답답하게 장가도 안가고 혼자 산다며 작은 미움(?)을 키운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휘휘휘 휘휭”
내 핸드폰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매일 도착을 알렸다.
“다시 한 번 환갑 축하 드리구요 사실 그 노래 차에서 불렀을 때 잘 부르셔서 놀랐어요. 저도 선택하는 걸로..... 이말 하려고 문자 보내요 ㅎ”
둘째가 또 반전의 깜짝 쇼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전통에 가득 찬 화살을 본 병사처럼 내 가족을 보며 흐뭇한 환갑 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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