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습 이 대로(백진선)
내 나이가 팔십일 세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가끔 있다. 정말 내가 팔십이 넘었단 말인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 긴 세월을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단 말인가? 초저녁에 한 숨 자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그 때마다 돌아가신 부모님들 생각이 떠오른다. 시어머님, 친가 할머님, 아버님, 어머님. 한분 한 분 생각할 때마다 행복하게 잘 사시다 가셨다고 생각되는 분은 한 분도 없다. 하나같이 다 고생고생하고 사시다 돌아가셨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모두 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참 아프고 아리다. 인생이란 각자의 타고난 숙명대로 살다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부모님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지을 수가 없다.
마음이 슬플 때면 가끔씩 박근혜 의원을 생각할 때가 있다. 부모가 다 총에 맞아 죽고, 동생마저 맨날 신문 기사에 좋지 않은 일로 오르내리고 하니 말이다. 그 어렵고 곤란한ㅇ 환경을 어떻게 해쳐 나왔을까. 또 자기 자신도 얼굴에 자상(刺傷)까지 입어가면서도 정치를 그만 두지 않는 이유는 주위의 사람들 때문일까. 정치란 도박에서 손을 떼기보다 더 어려운 것인가. 그것도 자기의 숙명인가.
나는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과거사의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법문을 깨닫지 못하고 내가 내 목을 조여가면서 살아 온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내가 너무 한심스럽고 싫어진다.
이제 나는 나의 남은 생이 얼마일지 모르나 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모든 것 훌훌 다 털어버리고 멋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특히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못내 아쉽다. 이제는 내 몸 하나 가느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니 육체적인 배려는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으로라도 진실로 남에게 배려하고, 시린 손 따뜻하게 잡아주고, 등 토닥여 격려해 주며 살아야겠다.
언젠가 아침 기도 가는 길에 폐지 줍는 할머니가 그 흔한 면장갑 하나도 끼지 않은 채 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 손이 얼마나 시려 보이든지 내가 장갑을 끼고 갔더라면 장갑을 벗어드렸을텐데……. 마침 장갑을 끼지 않은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또 내가 빨리 걸을 수 없는 것이 원망스럽기만 하였다. 빨리 걸을 수 있었다면 집에 가서 장갑을 가져다 끼워 드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나도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름을 느낀다. 바라기는 현재의 이 모습 이대로 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싶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통 없이 고요하게 본래 제 자리로 돌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첫댓글 눈물이 나네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욕심부린 제 마음이 슬퍼지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항상 따뜻한 미소와 손길로 격려해 주시는 백선생님, 저도 당신처럼 아름답게 늙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