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하는 세상, 의리있는 사람>
영화에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책에서는 영달이 도망간 백화를 술집 주인 뚱보에게 고발하지 않고 “나도 의리 있는 놈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읽던 책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의리”라는 용어가 내가 좋아하는 용어라는 이유에서이기도 하고, 동시에 신선함과 희귀성 때문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발견하기 힘든 진귀한 무엇? “의리”, 이 용어가 왜, 언제부터 이렇게 신선하고 희귀한 용어가 되었나? 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 이유도 때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의리는 당연한 덕목임에도 불구하고 의리보다는 배신이라는 용어를 많이 듣게 되는 세상, 배신한 사람에게 시원하고 처절하게 복수하는 막장 드라마에 열광하는 세상. 쯧쯧쯧...
오래된 사람 사이에서도 의리가 아닌 배신이 팽배한 세상을 사는 나는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사람 사이에도 의리가 존재하는 그 의리가 있는 세상이 그립고 그 세상에 빠져들고 싶다.
나는 결혼한 직후에 어떻게 결혼생활을 할 것인가를 숙고한 끝에 “당당하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살자”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이것은 마치 나만의 엄숙한 가훈과도 같은...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는 당연하기도 하고 쉽기도 한 것이었기에 심도 있게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지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살기위해서는 내가 우선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시댁의 일원으로서의 도리를 지켜야만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내 깜냥을 다해 도리를 지키면서 살았고, 의리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소위 “한눈팔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점점 의식이 몽연해지면서 아무 생각 없는 여편네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도리를 지키지 않았거나 의리를 깬 것은 아니지만, 희미해져가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아마도 더더욱 책 속의 의리라는 단어는 나의 잃어버린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으리라. 우선 세상을 탓하기에 앞서 나를 다잡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지. 쯧쯧쯧...
그리고 나는 하하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의리”라는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고 다시 미소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