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24)
*月白雪白 天下地白 .. 달빛도 희고 눈빛도 희고 세상천지 모두 하얗다.
여인을 따라 들어간 사랑방은 조금 전까지 누군가 사용하던 것처럼 매우 정갈했다. 기름을 잔뜩 머금은 장판은 거울처럼 번들거렸다.
"잠시 기다리셔요. 목욕물을 데워 놓을테니 목욕을 하시지요."
김삿갓은 어안이 벙벙했다. 외간남자가 안채로 들어온 것도 과분한데, 목욕물을 데워 준다는 것은 천만 뜻밖의 일이었다.
허나, 이순간 모든 것의 결정권은 여인이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여인이 하자는 대로 그저 묵묵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혼자 따뜻한 방에 앉아있으려니 졸음이 사르르 찾아왔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과 마주대했던 미모의 여인의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러면서 자신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온 몸을 휘감았다.
"주무셨나봐요."
얼마가 지났을까 여인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방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여인은 바시시 웃으며 문밖에 서 있었다.
"졸리시면 그냥 주무시게 할걸 그랬나봐요."
"아이쿠, 그만 깜빡 졸았습니다." 김삿갓은 여인의 수고에 겸연쩍게 대답했다.
"목욕물이 데워졌으니 욕간으로 오세요. 저 아래 뜰에 있어요."
김삿갓은 실로 몇 개월만에 따뜻한 물로 목욕을 했다. 때가 국수가락처럼 나온다더니 김삿갓의 경우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았다.
목욕을 마친 물이 마치 재를 풀어놓은 듯이 쟂빛이었다.
"뜻하지 않게 호강 한번 잘 하는구나."
김삿갓은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목욕을 끝내자 바로 저녁상이 들어오는데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였다.
어떻게 닭을 잡았는지 닭찜이 올라와 있었고 향기로운 술도 한 병 올려져 있었다. 맛있는 음식에 술 한 병까지 모두 비우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세상 참, 배가 부르니 만사가 조그맣게 보이는군... "
김삿갓은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른후 오늘처럼, 마음 편하게 음식을 먹으며 호사를 부린 때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없었다. 항상 때마다 끼니를 찾아 주린 배를 채웠지만 그것은 피치 못할 형편이었을 뿐, 언제나 부담이 있는 끼니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서의 식사는 편안했다.
그것은 아마도 경계심을 가지고 자신을 대하던 여인의 태도 변화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밤은 소리없이 깊어만 가고 있었다.
주인여자는 깨끗한 금침을 들여놓고 자리끼까지 갖다 놓은후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삿말을 남기고 안채로 들어갔다.
자리에 누운 김삿갓은 갑자기 여인이 그리워졌다. 또 안주인 여자가 아니더라도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청춘의 젊은 피는 본능적으로 이성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불속에서 몸을 이리저리 뒤챘다. 그러면서 지금쯤 안방에서 옷을 벗고 잠자리에 있을 여인의 생각 뿐이었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 혹시 나와 같은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까?"
온갖 잡생각이 그의 뇌리를 채우고 넘쳤다.
"안방으로 슬며시 건너가 말을 붙여 볼까? ..일엽편주(一葉片舟)의 고해(苦海)를 건너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을 함께 논하여 볼까? ... "
온갖 잡념이 그를 짖눌렀다.
"아냐 ..지금쯤 그녀도 내가 오기를 기다릴지 몰라.."
한편으론 "까짓 사내녀석이 과부 하나쯤 꺾지 못해서야 사내라고 할 수 있나!..."
그는 스스로 엉뚱한 자기 생각을 합리화 해보기까지 하였다.
"흥, 기껏 목욕까지 하고 배불리 먹고 따뜻한 방에 금침을 깔고 누우니 고마운 생각보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구나, 쯔쯧 ..."
이렇듯 자신을 꾸짖으며 소리를 내 중얼거렸지만 그의 귀와 눈이 자꾸만 안방쪽으로 향하는 본능은 억제 할 수 없었다.
"헛참!" 그는 입맛을 다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휘둘러 보니 문갑위에 연적과 필묵이 보였다.
그는 벼루를 꺼내 천천히 먹을 갈았다. 먹물이 짙어지기도 전에 글이 그의 머리속에서 이미 정리가 다 되었다.
쓸쓸한 나그네의 베갯가의 꿈은 산란하고 /
客愁蕭條 夢不仁 (객수소조 몽불인)
서리찬 달빛만이 더욱 외로워라 /
滿天霜月 照吾隣 (만천상월 조오린)
푸른대와 소나무는 영원불멸의 절개를 뽐내지만 /
綠竹蒼松 千古節 (녹죽창송 천고절)
홍도와 백리는 봄에만 피고지지 않던가 /
紅枇白李 片時春 (홍비백이 편시춘)
왕소군의 뼛가루도 오랑캐 땅의 한줌 흙이 되었고 /
昭君玉骨 胡地土 (소군옥골 호지토)
꽃같던 양귀비도 마외파 아래 티끌로 변했네 /
貴妃花容 馬嵬㕓 (귀비화용 마외전)
세상살이 이치가 이러할진대 /
世間物理 偕如此 (세간물리 해여차 )
그대 오늘밤 몸풀기를 너무 아까워하지 마소서 /
幕惜今宵 解汝身 (막석금소 해녀신)
김삿갓은 이렇게 써놓고 몇번씩이나 읽어보았다.
복숭아 꽃이나 오얏꽃이나 봄에만 화려하게 피어났다 지고 나면 그뿐이며,
청춘도 이 같아 일생을 통해 잠깐 지나가는 한때라는 암시였다.
게다가 천하 미녀 왕소군도 흥왕에게 끌려가 임을 그리다 죽으니 한줌 흙으로 돌아갔고,
당 현종을 사로 잡았던 양귀비도 안록산과 함께 잡혀 한 줌 티끌이 되었으니 허무한 일이 아니냐는, 충동을 불사르고 어여쁜 밤을 함께 하자는 추파의 글이었다.
김삿갓은 혼자 빙그레 웃었다.
"그럼 이것을 어떻게 전한다?"
김삿갓은 써놓기는 하였으나 다음 생각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사내 대장부가 먹은 마음을 그대로 실행 해야지 무엇을 망설인단 말인가"
그는 스스로를 위안하고 종이를 들고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안방을 살펴보니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살그머니 방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방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여인은 잠 든것 같지는 않았다. 가슴은 연신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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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훈사 (表訓寺)
북한의 전통사찰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리
문화재지정: 국보유적 제97호
연혁670년(신라 문무왕 10) 능인·신림·표훈이 신림사 창건
673년(신라 문무왕 13) 표훈사로 개칭
1682년(숙종 8) 중건
1778년(정조 2) 중건
1864년(고종 1) 중수
표훈사는 금강산 4대 사찰(유점사, 장안사, 신계사, 표훈사)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찰이다. 670년 신라의 승려 능인·신림·표훈이 처음 세우고 신림사라 하였다가 3년 후 이름을 고쳤다. 불에 타버리거나 쇠락한 것을 1682년(숙종 8)과 1778년(정조 2) 두 차례에 걸쳐 복원하였다. 원래 20여 동의 많은 전각이 있었지만 현재 경내에는 반야보전(般若寶殿), 명부전, 영산전, 어실각(御室閣), 칠성각, 능파루(凌波樓) 등의 전각과 7층석탑이 남아 있다.
7층석탑을 중심으로 본전인 반야보전과 입구인 능파루가 남북의 중심축을 따라 마주 보고, 반야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과 영산전이 양쪽에 나란하게 있으며, 석탑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에 극락전터와 명월당터가 있다. 또 능파루를 중심으로 동서 양쪽에는 요사채인 판도방(判道房)과 어실각이 있다.
반야보전은 표훈사의 중심 건물로 잘 다듬은 돌로 쌓은 높은 축대 위에 서 있다. 정면 3칸(14.09m), 측면 3칸(9.4m) 다포계 팔작집이다. 내부는 천장 복판에 현란한 단청을 장식한 반자로 꾸미고 섬세하게 조각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불단에는 법기보살의 장륙상(丈六像)을 봉안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정면이 아니라 동쪽 법기봉을 향해 있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주심포 형식의 맞배지붕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