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에서 축배를 - 금주 일지 33일(2022.10.16.)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오전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마친 후 오후엔 “광주 도심 찐 기행 – 풍영정에서 산동교까지” 영산강변을 걸으면서 광주의 속살을 톺아보는 나들이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행의 길라잡이는 고등학교 때 내게 배웠던 해설사가 맡기로 되어 있기에 신청한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분이시다. 그래서 평소에도 든든하게 여기고 있는터다. 또 내공이 튼실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광주에서 가장 훌륭한 해설사라고 여기는 분이시다. 말하자면 오늘 나의 일일 선생님이시다.
아내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풍영정을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풍영정 입구 정류장에서 내리려고 출입구로 나오는데 갑자기 “선생님!”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버스 출입문 입구 자리에 앉아 있던 오늘 해설사 선생님이었다. 반가운 마음이 하나 되어 버스에서 내려 풍영정으로 이동하는 중에 해설사 선생님이 문득 주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혹시 오늘 행사 끝나고 저녁에 일정이 있으세요?”
“오늘 저녁에 약속된 일정이 하나 있는데? 왜?”
했더니 “아뇨, 일정이 없으시면 저녁에 모시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요.”
“아, 그래, 어쩌지. 그런데 어디를 같이 가고 싶었는데?“
”네, 지금 충장 축제 기간인데 축제 중에 음식점 부스를 차린 단체에 모시고 가려고 했어요“
”그래!? 나도 충장 축제의 음식점 부스에 갈 일정이었는데?!‘
“그래요? 거기가 어딘데요?”
“OO 친구가 대표로 있는 OOO 부스.”
“어, 저도 거기 선생님 모시고 갈 생각이었는데요!”
“어, 그래!. 그럼 같이 가자!”
갈려고 했던 목적지가 같음을 확인하고 마치 후련하게 화장실을 다녀온 사람처럼 풍영정에서 산동교까지 산들거리는 마음으로 영산강변을 제자 해설사님의 해박한 설명과 함께 거닐었다.
산동교에서 석양과 함께 일정을 마치고 곧장 충장축제의 현장으로 이동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닫고, 막고, 금지하고 참았던 것들이 일시에 무장해제를 한 것인지 도청 앞 분수대 민주광장을 중심으로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촛불 행동 이후로 처음 보는 인파들이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떠밀려가는 상황이었다.
길가에 마련되어 있는 음식점 부스마다 길게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해설사 제자와 함께 OO 친구가 대표로 있는 주막 부스에 들어서니 그곳은 더 긴 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OO 친구의 말로는 자신이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이번 자리에 대한 제비뽑기라며 들뜬 표정으로 자리 자랑을 했다. 장사는 목이 좋아야 한다했는데 관연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민주광장의 분수대를 바로 정면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명당(?)이었다. 긴 줄 사이로 먼저 도착한, 만나기로 했던 제자들이 자리를 미리 확보하고 있어서 그냥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참 오랜만이다. 코로나가 이유가 되어 만나지 못했던 제자들과 모처럼의 해후이다. 물론 아내도 익히 아는 제자들이어서 그냥 어우러졌다.
그런데 역시 또 술이 곁들여지는 자리이다. 안주와 술을 선불로 계산하는 상황인지라 얼른 가서 안주와 술을 주문하고 술을 먼저 가져왔다. 술병을 들고 차례로 술을 따랐다. 오늘 병권은 내가 잡았으니 내가 따르겠다는 선언과 함께. 그리고 마지막 내 잔에는 생수를 따랐다.
“건배합시다”
“그래요, 선생님이 한 말씀하시죠?”
“좋지, 자, 오늘은 오랜만의 대면 축제의 날입니다. 우리들이 이곳에 모인 것도 축제입니다. 특히 늘 곁에 있어 든든한 OO 미녀 여러분들과 자랑스런 해설사님, 그리고 최고의 자리를 뽑은 OO 대표와 단체가 날마다 오늘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축제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제가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하면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로 축배를 들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드론이 수놓은 민주광장의 빛 공연처럼 화려한 축제의 밤은 깊어 가고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만남을 통한 관계의 신뢰는 마음의 축제를 무르익게 하며
내 금주의 날은 하루의 눈금을 더하며 사부작사부작 1년 뒤의 축제를 바라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