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유희와 사고의 깊이
- 손창기 시인
시조 장르라 하면 떠오르는 게 3장 6구 12음보, 종장의 제1음보 3 음절, 제2음보 5음절 이상이다. 이 틀 속에 시조를 읽는 현대인은 숨 이 턱 막힌다. 더군다나 배행의 변화 없이 초장, 중장, 종장에 충실한 단형은 더욱 그러하다. 자유시를 쓰는 시인조차도 시조를 창작하기 쉽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로 호흡이 짧은 형식에 근거를 둔다. 긴 호 흡에 길들여진 시인은 짧은 틀 속에 갇혀 제대로 묘사와 진술, 정서 를 담아내는 걸 힘들어한다. 최남선으로부터 귀로 듣는 시조가 아닌, 눈으로 읽고 느끼는 시조가 시작되었다면, 주어진 음보 속에서 최대 한 자유를 모색해야 되지 않을까.
현대시조에서 지나치게 음보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배행에 변화를 주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장, 구, 음보, 단어, 음절 등을 효과적으로 배행하여 시어에 시·청각적 미감을 증대시키는 작품을 접할 때의 쾌 감이랄까. 그중에서도 다양한 언어유희pun를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자칫 언어유희가 사고의 깊이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극복한 시조 작품은 미적 장치와 함께 유머와 풍자로 행간을 넘 나든다. 이 기법은 시어의 발음, 음운, 언어적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 용함으로써 시조의 독특한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장점을 지닌다. 고 시조 중에서 언어유희가 잘 사용된 작품을 살펴보자.
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우니,
산채山菜를 맵다는가 박주薄酒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草野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이정신(조선 영조 때 歌人)
이 시조의 매력은 곤충이 내는 울음소리를 미각적 심상으로 잡아 서 엮었다는 점이다. 곧 언어유희적 발상으로 ‘매미’와 ‘쓰르라미’의 첫 음에서 ‘맵다’와 ‘쓰다’를 도출한 점에서 독자는 시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시인은 산나물이 맵다고 우는 것인지, 맛이 없는 엷은 술이 쓰다고 우는 것인지로 의미를 확장하면서, 종장에선 우리네(혹 은 자신) 삶으로 전환하여 후미진 시골 땅에 묻혀 살아가기에 세상살 이의 고해苦海를 맛보지 않고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음을 형상화한 다. 하여 부와 권력에 매몰되어 있는 인간들을 우회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단형의 형식에서 벗어나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 와 함께 언어유희를 잘 구사한 현대시조를 살펴보자.
1
나는 말했다, 플라토닉 러브라고
그는 말했다, 플라스틱 얘기냐고
가없는 플라토닉이
낯선 플라스틱이라니!
2
플라토닉
플라스틱
플라스틱
플라토닉
토닉과 스틱 사이 찬바람 들이닥쳐
영원한
사랑의 거리
연무 속에
휩싸였다
—이정환의 「플라토닉 플라스틱」
이렇게 사랑의 갈등을 언어유희적 표현으로 구사한 시인의 시어 들이 절묘하다. 손 한 번 잡지 못한 플라토닉 사랑을 지닌 시인에게 느닷없이 플라스틱 사랑이라니! 플라스틱 사랑은 쓰다가 언제나, 어 디에나 버릴 수 있는 일회적인 사랑이다. 토닉과 스틱 사이, 영원한 사랑과 간편한 사랑 사이에 찬바람이 들이닥치고, 회오리가 몰아치 고 폭설이 쏟아질 것이다. 두 사랑 사이에서 해답은 없지만, 그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영원을 꿈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속적인 세 상에 가볍고 편리해진 사랑은 만연해져 있으므로 시인은 언어유희 로 쪼개고 한통치고, 자유로운 행간 속에 풍자를 숨겨둔다.
뚝배기 식당에서 목소리가 깨졌다
받아 든 설렁탕에 머리카락 보인다고
자리가 펄펄 끓는다
쩔쩔매는 늦은 밤
트집이 묻어있는 대접과 대접 사이
대접을 받으려면 큰 그릇 되라는데
큰 뜻을 품을 줄 몰라
사람만 부풀었다
—박화남의 「대접을 대접하다」
시인은 정치법으로 모두 1행으로 처리했다면 단조로웠을 표현을, 종장을 2음보씩 2행으로 배행하여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쩔 쩔매는 늦은 밤”을 도치하여 내용상 앞 연과 뒤 연의 행간 걸침에 놓 이게 함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독자에게 시행 배 열의 식상함을 극복하고 주제에 집중케 하는 효과를 준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다음 시행 “트집이 묻어있는 대접과 대접 사이”는 대접(큰 그릇)과 대접(待接, 歡待)이 중첩적으로 쓰이다가, “대접을 받으려면 큰 그릇 되라는데”서 언어유희로 에피그램警句을 성취하고 있다. 뚝배 기가 아닌 목소리가 깨지고, 자리가 펄펄 끓고, 사람이 부풀어 오르 는 식당에서 시인은 큰 뜻을 품은 큰 그릇이 되라고, 대접을 대접하 라고 외치는 듯하다. 자신이 대접을 받으려면 남을 대접해야 한다는 풍자와 유머가 행간 속에 숨 쉬고 있다.
고시조의 언술을 계승한 위의 두 시에서 언어유희를 구사하고, 입 체적인 시적 언술과 배행을 시도한 것은 시인의 느낌을 독자와 공유 하려는 새로운 시적 지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행간을 넘나들면 서 유머와 풍자를 기조로 삼는 것은 당연한 미적 장치이다. 이에 시 조를 읽는 독자에겐 중의적이고 다층적인 언술에서 열려 있는 사고 의 깊이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단순히 좋은 이 미지, 말장난, 에피그램을 얻었다 해도 사고의 깊이를 담지 못한다 면 독자에게 이야기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실패작이 되기 때문 이다. 필자는 자유시를 쓰는 시인도 시조를 많이 읽고 습작에 응용 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강변하고 싶다.
손창기 대구 군위 출생.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달팽이 성자』 『빨강 뒤 에 오는 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