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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새로운 문학이론을 수입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문학작품들이 출현하였고, 문학사에서는 이들을 대체로 근대문학 혹은 현대문학이라는 명칭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 책은 새로운 문화와 접속하던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근대문학 중에서 소설사의 흐름을 개관하여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다. 일본을 통해 새로운 문학이론을 흡수했던 당시의 지식인들은 고전문학과 다른 ‘근대문학’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웠고, 소설사에서는 새로운 소설이라는 뜻의 ‘신소설’로 문학사에 등장했던 것이다. 이해조와 이인직 등의 신소설 작가가 출현했고, 그들에 의해 <혈의 누>와 <추월색> 등의 작품이 창작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위와 함께 시작된 이른바 ‘계몽운동’은 기존의 문화와 사상을 ‘낡은 것’으로 치부했다. 그렇게 시작된 초기의 근대문학사는 당시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던 형식이었을 것임은 지극히 당연하다.
실상 새로운 이론을 도입하면 그에 걸맞은 내용과 형식을 갖추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새로운 이론과 형식의 도입으로 창작에 임했던 당시의 작가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문화를 작품에 담아낼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그들에 의해 창작된 신소설은 ‘고전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전환기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 책에서도 ‘개화공간의 이념적 형식 및 흥미성 형식의 출현과 그 변모 과정’이라는 제목의 1장을 통해서, 근대문학 초기의 다채로운 양상을 적절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은 <한국소설사>를 개략하기 위해 ‘소설사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섭렵’헤겟다는 목표를 세우고, 작가와 작품은 물론 그에 관한 비평 자료들까지 망라해서 포괄하고 있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기존의 문학사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충분한 장점으로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신소설’이 과도기의 형식이라고 한다면, 본격적인 현대소설사는 19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3.1운동 전후에 등장한 새로운 범주, 예술성과 내면의 탐구’라는 제목의 2장에서는 이광수의 <무정>을 비롯하여 새롭게 등장한 근대 소설들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러시아혁명 이후 거세게 불러온 사회주의 이론은 일본을 통해 한반도에 받아들여졌고, 이로 인해 흔히 ‘카프(KAPF)’로 약칭되는 경향문학이 등장하여 당대의 문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리얼리즘 소설’과 ‘모더니즘 소설’들의 전개 과정이 펼쳐지고, 이러한 문학계의 움직임은 결국 일제 강점기의 상황과 긴밀하게 조응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어쨌든 비록 타의에 의해 한반도에서 해방을 맞이했지만, 이른바 ‘해방공간’의 문단 상황은 당시의 정치적 조건과 연계되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외세에 의한 남북분단이 현실화되고 끝내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이제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이후 소설사는 주로 남쪽이 상황에 대한 개관으로 서술될 수밖에 없으며, 이 책에서는 마지막 장에서 ‘북한소설 개관’이라는 항목으로 간략하게 북쪽의 소설들을 소개하고 있다. 1960년의 ‘4.19’로 인한 짧은 민주화의 시기를 거쳐 1년 후 군사쿠데타로 인해 오랜 동안의 독재 정권을 겪어야만 했다. 아울러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 문학의 소재도 발맞추어야 했으며, 민족사의 비극인 ‘분단문제’ 역시 다양한 작품들에서 형상화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시작된 장편 대하소설의 등장으로 현대 소설사는 새로운 형식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겠다.
실상 방대한 분량으로 정리된 현대소설사의 주요 작가와 작품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할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문학의 본질과 역할을 둘러싼 논쟁들이 진행되었고, 그로 인한 이견들이 여전히 문학계의 주요 논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급적 다양한 자료들을 소개하려는 저자들의 의도가 어느 정도 관철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작업은 현대소설사를 보다 정밀하게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의미가 있는 저작이라고 여겨진다. 독자의 함 사람으로서 나 역시 신소설로부터 시작된 근대 소설사의 흐름을 일별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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