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의 발전으로 자연을 물리적 관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대적 관점에서, ‘하늘’은 그저 예측이 필요한 대상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연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고대인들에게, ‘하늘’은 막연히 공경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경외(敬畏)의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자연 현상을 예견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논의가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를 하는 자들은 흔히 하늘의 명령이라는 의미의 ‘천명(天命)’을 내세웠고, 천둥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 현상을 ‘하늘의 뜻’으로 치부하며 대중들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따라서 고대에는 ‘하늘’이란 분석이나 탐구의 대상이 아닌 ‘해석’의 수단으로 이해되었다고 하겠다.
이 책은 과학사를 전공하는 저자가 ‘전통시대의 천문관’을 밝히기 위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함께 탐구할 수 있는 주제로 역사적으로 ‘하늘’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피고 있는 내용이다. 곧 ‘우주관이 세계관이라는 문제와 결합할 때’ 그 해석의 의미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더욱이 그것을 해석하는 권한을 쥔 이들은 당대의 권력자들이었다. 물론 당대의 대중들 역시 특정한 자연 현상을 ‘하늘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예컨대 ‘하늘이 노했다’거나 ‘하늘이 도왔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었던 현실에서 그러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전통시대의 하늘’이라는 주제가 저자 개인의 학문적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나아가 그것이 ‘결과적으로 세계관의 변화’라는 엄청난 인식상의 변화‘를 초래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전통시대의 하늘 즉 우주에 관한 사색은 비단 과학적인 면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인식의 변화를 초래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임은 분명하다. 전통시대의 역사 기록이나 문학작품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결국 막연한 두려움의 존재에서 과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변화했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고 하겠다. 이 책의 편제에서도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탐구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고 하겠다. 저자의 ‘들어가는 말’에 이어 첫 번째 항목에서 ‘하늘과 땅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출발’이라는 제목으로, 흔히 ‘혼돈’으로 논해지는 신화시대의 우주관으로부터 ‘하늘과 땅’을 대립적으로 인식했던 내용들과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우주론의 탄생과 발전’이나 ‘우조론 논쟁과 지구운동설’, '한국의 고대 우조론‘과 조선시대 절대적 이념으로 자리를 잡았던 ’성리학적 우주론으로의 변화‘라는 소항목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자연과학이 서양의 학문적 기초에 토대를 두고 있기에, 저자는 두 번째 항목에서 ‘서양철학의 전래와 영향’을 논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다양한 기기들을 통해 자연과 하늘을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의 동양인들에게 낯설고도 새롭게 다가왔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하여 ‘우주관의 대전환’이라는 세 번째 항목을 통해서,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여 ‘하늘’을 관찰하고 해석하고자 했던 면모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전통시대 천문관의 변화’라는 제목의 맺음말로 정리하고 있으며, ‘보론’으로 조선시대 탁월한 자연과학자로 평가할 수 있는 ‘천문학자 황윤석의 서양천문학 수용기’를 덧붙이고 있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