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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장
세트장
너와 돌 사이에서 소리 질렀다. 너와 돌과 너와 돌과 조금 갈라지는 피부
폐교 안에 있었다. 계단을 오르며 꿈이 설계되고 있을 줄 알았다. 꿈은 벌써 며칠째 숲을 부수고 빈터를 지었다. 그곳에 너를 서 있게 하려나 보다.
벽을 부수며 뻗어나가는 실금, 네가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손바닥을 펼쳤던 순간,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떨어진 슬레이트를 주웠다.
춤과 뼈와 춤과 뼈. 조금 흔들리는 살.
옥상은 낙하 장면을 도왔다. 바닥이 노출되기 전에 건물은 전달되었다. 죽음이 내레이션으로 처리되었다.
그저 나긋하고 부드러운 움직임만이, 콘크리트와 병치되어 있는,
결말부.
몇십 년 동안 모은 거야. 너는 죽은 잎들로 가득한 채 집통을 내게 건넨다. 다리가 많이 아팠다고 탱탱 부었다고 웃으면서.
돌과 입맞춤*
방은 모래로 된 천국으로 나를 옮긴다. 방에는 시계가 없다. 흰 머리카락이 바닥에 즐비하다.
“천국은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가능합니다.”
모래는 대체로 물에 인접해 있다. 천국의 질료라는 증거였다. 오래전 나는 천국에 의해 부드러운 습격을 당했다. 아문 자리는 뼈와 살이 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단순했다. 구름, 나비, 까맣게 지나가는 머리들, 잎의 뒷면들, 작은 사막, 삼각형, 낮게 나는 비행기, 늘어지는 거대한 천(색이 자꾸 변했다)
방은 적막하고 나는 게을렀다.
“옮겨지는 동안 눈을 뜨세요. 걸리는 시간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먹은 음식과 내게로 쏟아져 내린 빛의 총합이었다. 방에는 거울이 많았다. 보고 있음을 보고 있을 수 있었다. 시선의 마감이 시선의 탄생과 중첩되었다.
방은 지구 위에 있었다. 방은 마음만 먹으면 영원토록 지구의 가운데일 수 있었다. 그러나 누가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방은 어쩌면 지구의 마음인지도 몰랐다. 지구는 수억 개의 마음으로 가득한 신체일 수도.
몇 개의 살아 있는 화초와 몇 개의 죽어 있는 화초가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죽어 있던 화초가 살아나기도 하고 살아 있던 화초가 죽어버리기도 했다. 화분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머리맡에서 창가로, 욕실에서 싱크대 안으로 위치를 바꾸다가 마침내 나의 꿈속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꿈에서 나는 그들에게 물을 주고 싶었다.
조금의 모래도 섞이지 않은 고요한 물을.
그러나 물의 표면에는 언제나 죽은 곤충들이 떠다녔다.
어느 날 나는 나라는 방에 갇힌 내장들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것들을 본 적 없다. 본 적 없다. 본 적 없다. 본 적 없다는 말은 겹쳐지는 어둠이 되어 머리 속을 까맣게 채웠다. 나는 내장의 시야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그것을 본 적 없다. 통증만이 내장의 존재 여부를 알려왔다. 배 속에도 봄이 오고 가을이 왔다.
졸다가 눈을 뜨면 창밖의 설경이 방을 조금 침범해 있기도 했다. 눈송이가 각자의 빛을 물고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방은 느린 속도로 눈발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방은 눈발의 여운일지도 몰랐다.
“세계 위에 그냥 떠 있으세요. 가라앉지 마세요.
방이 건물의 어디를 위치할지 고민하는 일은 꽤 재미가 있었다. 해가 지는 방향은 매일 달랐다. 보는 이의 시선을 조금씩 배반하는 방식이었다. 그처럼 나는 방이 건물 안에서 조금씩 자신의 위치를 옮기고 있음을 알았다. 건물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방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나는 나의 방과 친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방이 내 안에서 돌아다닌다고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눈보라가 끝나면 맑은 날이 끝나지 않았다. 창을 등지고 요리하면 재료는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빛을 이루는 실들이 부엌의 벽에서 자주 엉켰다.
하루는 어두워진 도마가 한참 동안 밝아지지 않아 뒤를 돌아보았다.
창밖에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라니……
나는 흉기에 찔린 것처럼 멈췄다. 그는 창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의 상반신 그림자가 나의 채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있었다.
그와 내가 서로의 반대편에서 얇은 유리를 등진 채 얼마나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아무 곳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서 있음을 위하여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를 바라보지 않았던 영원의 시간 동안 그는 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를 바라보았으므로 그는 검은 뒤통수를 움직일 것이다.
문득 나는 내가 그의 영혼 같았다. 그의 존재로 인해 내가 방이라는 착시적 현상 속에 머무는 것 같았다.
썰어둔 채소들이 창백해져갔다. 물기가 느리게 증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름은 빠르게 식별되었고, 그와 나는 영혼과 육체의 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머리, 그의 기립, 그의 태양, 그의 어지러움, 그의 먼지, 그의 저수지, 그의 종이비행기, 그의 연주, 그의 졸음, 그의 밥, 그의 낮, 그의 절뚝거림, 그이 이빨, 그의 궁전, 그와 번지점프, 그의 귀여움, 그의 거품, 그의 리듬, 그리고
나는 그를 봄으로써 그보다 내가 선행하고 있음을 확인하고자 하는가?
천천히 그를 보았다. 그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돌을 들고 있었다.
나의 시선이 그의 손에 쥐어진 돌로 옮겨지는 순간, 그는 오른편으로 달려 나갔다. 돌을 그대로 쥔 채였다.
도마 위의 그림자가 거두어졌다.
나는 순식간에 그와 돌을 잃었다.
채소는 갑자기 땅에서 뽑혀 나온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공기 중의 수분이 모두 채소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어째서 창문의 길이는 저게 전부인가. 창이 방을 모두 둘러쌀 만큼 길었다면 그의 달리기를 더 오래도록 볼 수 있었을 텐데.
밤에는 돌 속에서 달리는 꿈을 꾸었다,
그곳은 영원한 어둠이었다.
그러나 꿈은 깨지는 장소였다.
그가 돌을 쥐는 방식으로
나는 칼을 쥐어보았다.
비누를 돌처럼 쥐어보았다.
귀를 돌처럼 쥐어보았다.
열대어를 돌처럼 쥐어보았다.
형광등을 돌처럼 쥐어보았다.
살충제를 돌처럼 쥐어보았다.
왼손을 돌처럼 쥐어보았다.
향수를 돌처럼 쥐어보았다.
오렌지를 돌처럼 쥐어보았다.
바이올린을 돌처럼 쥐어보았다.
허공을 돌처럼 쥐어보았다.
물을 돌처럼
밤을 돌처럼
빛을 돌처럼 쥐어보았다.
결국 그가 돌을 돌처럼 쥐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죽어 있던 화초가 어항으로 변해 있었다. 어항 속에 석양이 지고 있었다. 그 사이로 푸른 돌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는 내 방에 드리워졌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그가 사라진 창에는 내가 비쳤다.
“천국의 방향은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계의 바깥입니다.”
나는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의 문장이 시작되면 이전 문장이 머릿속에서 휘발되었다. 책을 덮을 때까지 모두 다른 한 개의 문장만을 읽을 수 있었다. 오직 한 문장만을.
모든 문장이 다음 문장을 침범하지 않았다.
모든 문장이 이전 문장을 경험하지 않았다.
수천 개의 도시에서 울리는 안내 방송처럼 머릿속에서 다른 목소리로 외쳐졌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는 어떤 비명을 들은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었다.
글자들은 물에 빠진 듯 머릿속에서 번졌다.
뒤를 보면 언제나 맑은 날이었다.
빛 뭉치가 방 안을 날아다녔다.
몇 번의 샤워, 몇 번의 못질, 몇 번의 식사가 끝나고, 몇 번째로 식탁을 닦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창밖에 그가 서 있었다.
그의 어깨가 나무를, 그의 머리가 구름을 가리고 있었다. 측면으로 돌아온 빛이 그의 모서리를 잠시 비추었다. 식탁은 여전히 더러웠다.
그가 또다시 달려 나갈까 봐, 나는 시선을 오른쪽 몸통으로 옮기다가, 문득 그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돌이었다.
손가락에 둘러싸인 돌이었다.
한낮의 돌이었고
엉켜 있는 어둠이었고
물결의 손에 들린 바다였다.
돌은 하나의 공터였다.
(돌도 나를 보고 있는가, 돌 위에서 떠진 눈이 있는가)
색종이가 비행기가 되듯이, 털실이 스웨터가 되듯이, 비행기가 색종이를 기억하고 스웨터가 털실을 기억하듯이, 이차원의 비행과 일차원의 온기를 간직하듯이.
돌의 기억이 드러나듯이 그가 있었고, 그의 기억이 드러나듯이 돌이 있었다.
문득 식탁을 닦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전히 더러운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좀처럼 이곳을 벗어날 수 없구나.
산의 정상과 내 방 사이에 눈보라가 쳤다. 현악기의 줄처럼 고르게 날아오는, 간혹 튕겨 나가는 눈송이들.
나의 발끝과 정수리 사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엎드리세요. 서서히 천국으로 끌려가세요.”
하나의 운동장이 사라지는 동안 몇 개의 달리기가 시작되는가.
하나의 해변이 사라지는 동안 몇 개의 모래성이 함락되는가.
끝없는 실에는 몇 개의 매듭이 묶었다 풀려나는가.
졸음은 나를 잠시 방으로부터 뺏어 가기도 했다. 심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도 있었다. 잠 속에서 소리 없는 폭포가 쏟아졌다. 잠 속애서 소리 없는 폭포가 쏟아졌다. 폭포의 허리쯤에 수백 개의 무지개가 쌓여 있었다.
무릎을 감싼 채 아침이 왔다. 내리는 비 사이에 고여 있는 세상.
방 안에 바퀴가 생겨났다.
나는 유물처럼 창밖에 갇혀 있다.
그는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
말한다.
아, 맛있다, 고마워.
*카를로 로렐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중원 옮김. 쌤앤파커스, 2019.
익사하지 않은 꿈*
잠을 뚫은 비가 꿈속에 쌓인다. 물은 누구의 테두리인가. 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물속에서 물은 표면을 상실한다. 파도를 상실하고 물결을 상실한다. 나는 피부를 상실하고 떨림을 상실한다. 아무것도 이륙하지 않는, 동시에 거두어지지 않는 물, 어둠처럼 사방에 그러나 빛이 들이쳐도 얇아지지 않는 물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고민 끝에 물은 장소다. 잠긴 몸은 물을 왜곡하고 닫힌 물이 몸을 굴절한다. 물은 가끔 물 밖으로 태어나려 한다. 사실 몸은 그러한 시도의 흔적이다. 나는 기억력이 나쁜 편이다. 기억 속에서 숱하게 밀려나고 밀어낸다. 기억은 물인가. 질문이나 기억이나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숨이 막힌다. 그러니까 물이 폐에 들어차고 있구나. 감은 눈이 물속으로 나의 머리를 밀어 넣고 있구나.
다시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2011년 여름 나는 친구들과 바다 여행을 갔다. 선크림을 바르고 파라솔을 빌리고 대천해수욕장에서 저물녘까지 수영을 했다. 나는 수영을 잘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수영의 어떤 흉내를 내보고 싶어서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한걸음을 내디뎠을 뿐인데 목 언저리 즈음 오던 바다가 순식간에 내 키를 넘어섰다. 멀리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스무 살인데. 그런 생각을 했다. 스무 살인데. 바다에 빠져 죽다니. 나는 스무 살인데.
쌓인 것은 비인가. 비는 언제까지 비인가. 비는 해수면에 닿는 순간 바다라 불린다. 비는 혼자일 때 빗방울이라 불리는 편이 낫다. 그러니까 꿈속에 비가 쌓인다는 표현은 틀렸다. 비는 차곡차곡해질 수 없다. 빗방울은 손등에 닿는 순간 무너져버린다.
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말은 꿈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말과 동일한가. 십 년 전 대천해수욕장의 바닷물이 왜 어젯밤의 꿈속으로 흘러 들어오는가. 그런데 그 물은 해수욕장의 물이 아니었고 이국의 바닷물도 아니었고 물이라는 공간이었다는 것. 그곳의 온전함이 나를 가두고 나를 기르는 듯했다는 것. 물이라는 시간이기도 했다는 것. 통과하며 내가 어찌할 바 몰랐다는 것.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파동이듯이 어깨동무를 하고 버스를 타고 해수욕장으로 향하던 우리가 파동이듯이 그해 여름의 유난스러웠던 더위가 한낮의 맨발들이 은빛 돗자리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져둔 배낭들이 파동이고 우리의 툭 튀어나온 뼈가 우리의 눈 맞춤이 모두 파동이듯이 그날의 노을이 노을빛 묻은 모래들이 다, 모두 다, 그래서 물속에서는 도저히 들리지가 않고 보이지가 않고 기억나지가 않는다는 것, 물이 파동을 삼켜버리는 바람에, 물속은 꿈속이 되어버리는 것.
나는 기억력이 나쁜 편이다.
-키 큰 친구 한 명이 화들짝 놀라 나를 구해주었을 수도 있다. 멀리서 구급대원이 달려와 나를 건지고 심폐소생술을 해주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밤이 되어서야 바다 한가운데에 시체로 둥둥 떠올랐을 수도 있다.
-서른 살인 나는 그때 죽은 내가 꾸는 꿈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젯밤의 꿈이 사실은 꿈이 아니고 물속이었던 그날로, 그날의 현실로 잠시 깨어난 것일 수도, 어쩌면 내가 잠겨가는 순간은 그곳에서 영원히 상영되고 있으리라는 것……
*Koldsleep의 공연 ‘이인환각연쇄고리’의 1차 연쇄고리 텍스트로 제작됨.
풀의 밀폐
연쇄되는 무덤이었다. 무덤으로부터 자라나는 풀이었다.
아치형 그림자 속이었다. 봄밤에 거듭되는 산책이었다.
서서히 청바지의 물이 빠지고 있었다.
어두워지는 하늘이었다. 종잡을 수 없이 꽃이었고 착색되는 길이었다.
파릇파릇한 질주였다. 달리고 달려서 되돌아온 곳이었다.
무덤을 이대로 두고, 가야 할 곳이 있단다.
검고 거대한 이불이 나를 덮었다.
나는 꿈속에 남겨졌다.
팔다리가 나 대신 무덤 주변을 뛰고 있었다.
R을 제외한 해변의 전체
구름이 자신의 꿈을 길게 풀어둔 해변에서, 약간의 바닷물이 담긴 콜라병이 굴러다니는 풍경 속에서, R은 장편소설을 한 편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러므로 구름이 R에게 그 일을 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R에게는 구름에게 없는 손발이 있었고, 콜라병 속 바닷물처럼 약간의 말들이 R의 내부에서 출렁일 때가 있었고, 그것은 R이 정체 모를 파도에 떠밀려 이곳에 이르는 동안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흔적이기도 했다.
해변은 온갖 종류의 지상이었다. 이 정도의 넓이는 현재라는 시공간의 운신의 폭과도 유관하여 과거와 미래를 얼마간 이곳으로 끌어올 수 있었고, 그러므로 R은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해변의 왼편을 과거로, 오른편을 미래로 설정하였다. 소설은 해변의 왼편부터 오른편까지를 세세히 묘사하는 방식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R은 생각했다. R은 왼손과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R은 자신이 선형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선형성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렇게 해변의 바위에 앉아 한가롭게 소설이나 써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R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R에게는 많은 것이 아름다움이었다. 이러한 해변이 구름의 펼쳐진 꿈이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늘을 뒤덮은 저 부드러운 구름들이 해변의 꿈이기도 했다. R은 구름이 꿈의 표현 방식이었다. R은 자신이 방식이라는 시실이 마음에 들었다. 그 사실이 R에게 자유를 주었다. 해변에 온종일 내리는 눈과, 사랑에 빠진 연인들과, 희미하게 드러나는 수평선이 그와 동족이기에 R은 흡족했다. R은 해변의 모든 것과 자신을 가리켜 ‘우리’라고 불렀다.
우리 안에서 따뜻한 해풍이 콜라병을 굴리고 있다. 우리 안에서 약간의 바닷물이 쏟아진다. 우리 안에서 모래가 길게 젖어간다. 우리가 구름의 꿈이구나. 구름이 우리의 꿈이구나. 소금 향이 나는 낡은 간판들, 산책과 굴뚝, 눈물과 안개, R의 기쁨과 절망과 그리움이 모두 하나였다.
R은 공책을 꺼냈다. R을 제외한 해변의 전체가 R을 지켜보고 있었다. R이 해변을 바라볼 때와 같은 방식이었다. R은 이러한 관측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페이지를 뒤적였다. R에게 소설이란 소설의 방식을 뜻했다. R은 기억을 뒤져보기 위해 왼쪽 해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왼쪽 해변은 순식간에 오른쪽 해변으로 스며들었다.
기억이 아니라면, 소설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나, R은 고민을 시작했다. 소설에는 우선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소설이라 칭하는 순간 소설의 시간은 이미 발생했다고 보아도 좋았다. R은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시간이 있으면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은 하나인 것 같았다. 과거가 해변의 왼쪽이고, 미래가 해변의 오른쪽인 것처럼, 그리고 소설에는 우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천천히 드러나도 좋았다. 또…… 무엇보다 빛이 있어야 한다. 빛이라는 표현이 필요하다. 해변에 내리쬐는 빛이 R의 윤곽을 밝히는 바람에, R을 R로 제한한 덕분에 이렇게 소설도 쓸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R은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도입부 같다고 R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