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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수요일에 비엔나를 다녀왔다.
목적은 그곳에 있는 아시안 유통마켓을 알아보고,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현지에 아시아 식품을 유통하는 사업을 타진하기 위해서이다. 이곳 크로아티아(자그레브)에는 아시안이 한 1200명 정도 사는 것 같다. 물론 이 통계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 들은 바로는 중국인의 경우 1000명 정도, 일본인 200명, 한국인 40명 그리고 기타 다른 아시안이 나머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동양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오리엔탈 식품이 들어오는 유통 마켓이 없다.
대게 중국사람이 사는 곳에는 당연히 중국 수퍼마켓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곳은 예외다. 물론 중국 레스토랑은 여러군대 있다. 또 일본 레스토랑도 한 곳 정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아시안 식품을 조달하는 숖은 이곳에 없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중국인들이 하는 사업은 저가의 중국 공산품을 판매하는 것이 다다. 그래서 중국 가게라고 해서 들어가 보면 식품을 구할 수는 없고 단지 중국산 옷가지나, 제품들로 모두 채워져 있다.
겨우 아시안 식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중국 레스토랑을 통해서 구매가 가능한대 그 가격은 만만치 않게 비싸고 부르는게 그 값이다. 일반 크로아티아 대형 슈퍼에 가 봐도 기껏 작은 구석에 아시안 푸드 코너가 있긴 하지만, 거의 살 만한 식료품은 없다.
아시안 입맛에 맞추어 판매한다기 보다는 크로아티아 인들의 입맛에 맞는 퓨전식 조미료나 소스등만 존재하고 또 가격도 일반 사람들이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비싸다.
쌀을 예를 들면, 이곳에서의 쌀(스티키한 쌀, 한국인의 주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타이쌀, 알랑미라는 불리는 쌀 가격의 1.5배 또는 2배 정도 비싸다. 그나마 한국인들이 먹을 수 있는 쌀은 1킬로에 13쿠나(2800원)정도다. 유럽 다른 나라와 비해서라도 1.5배에서 2배 가량이 바씬 가격이다. 또 유럽 타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참기름(시세미오일)등도 구하기가 쉽지 않고, 설령 있다하더라도 가격이 비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게 아시안 식품이나 소스등은 외국에 나가서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까운 슬로베이나 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직접 가서 물건을 구입하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일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차를 타고 1시간에서 3시간 이상을 국경을 넘어 쇼핑을 해야 한다는 것은 즐기는 사람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먹고 사는데 허겁지겁하는 자들에게는 고달프고 괴로운 일이다. 이 비지니스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함께 나중에 글로 나누도록 하겠다. 대신...우체국에 관한 작은 에피소드가 있어 소개한다.
선교사로 이곳에 파송받고 난 이후에 난 한국에서 사랑하는 지인들을 통해서 소포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게 소포 내용물은 음식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곳에서 한국 음식을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 이를 알고 지인들과 친구들, 그리고 후원자들이 물건을 보내준다. 이런 소포를 받는 날을 우리에게 두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하나는 기대와 기쁨이다. 어떤 물건이 들어있을까? 또 아이들은 그 날이 성탄절이다. 만약 그 상자안에 한국 과자라도 하나 들어 있으면 아이들은 너무 행복해하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또 다른 감정은, 이번에 이 소포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긴장이다.
딱히 이 나라 세관이 까다롭다고 말하지만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안한 세관도 아니다.
벌써 한번은 이곳 세관에 잡혀 소포 가 한국으로 반송된 경험이 있고, 또 몇번에 걸쳐 많은 세금을 물고 물건을 받은 적이 있다. 우체국과 나의 인연은 그렇게 좋지 않은 듯 하다.
얼마전 한국에서 10킬로 가량의 음식물 소포가 이곳에 도착했다. 그 안에는 라면과 고추가루 등의 이곳에서 살 수 없는 식료품들과 큰 딸 영은이에게 필요한 고약이 들어 있었다. 딸 아이가 발에 티눈이 생겼는데, 이곳 병원에서 고쳐보려고 찿아 갔다가 허탕만 치고, 차일피일 미루다 너무 티눈이 커지는 것 같아,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그 소포가 한국을 출발한지 드디어 2개월 하고 열흘이 지나 도착한 거다.
마침 소포가 도착한 시점이 이 곳 부활절에 맞물려 있어, 나름대로 좋은 핑계가 생겼다. 이유는 그게 부활절 선물이라고 하면 되니깐 말이다. 하지만 예상한 날이 훨씬 지나도록 소포가 집으로 배달되지 않아 내심 불안하기 시작했다. 또 어머니께서도 자신의 생활비를 쪼개어 보내준 소포였기 때문에 더욱 심적으로 마음이 많이 갔다. 근데 기다리던 소포는 오지 않고 푸른색 봉투에 세관이라는 도장이 찍힌 편지 한통이 달랑 우리집 우편함에 있는게 아닌가? 혹시나 하고 했지만 역시나 또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래서 그 내용을 살펴보니 세관에 물건이 보관되어 있는 상태니 직접 우체국으로 찾아오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보니 갑갑함이 몰려왔다. 아니 지난 겨울에 그곳에서 경험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전혀 대화가 안되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다시피 하다, 물건은 받지도 못하고 반송되어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간 아내는 우체국은 나오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한국을 떠나 이곳에 와서 적응하느라 힘들고 또 이국생활 속에서 쌓은 감정이 그 일로 인해서 터진 것이다. 우체국이라고 하면 좀 친절할 것도 같은데 이곳은 아직도 사회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인지 관공서 비슷하게 생긴 건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굉장히 권위주의적이고 융통성이 없다. 그것은 내국인이나 외국인이나 다를바가 없다. 그런 기억이 되살아나니 또 그곳에 가서 이 소포 문제로 그들과 실랑이를 벌인다는게 갑갑함으로 몰려온 것이다.
그 다음날, 나는 우체국을 찾아 갔다. 하지만 그날을 허탕을 치고 말았다. 부활절 휴가 기간이 막 시작되는 시점이어서 담당자가 없다고 하면서 그냥 돌려 보냈다. 사실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서 말하는 것도 나에겐 고역이다. 일반 거리에서는 영어가 통용이 되어도 유독 관공서는 절대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은 철저하게 언어의 힘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부활절 기간이 다 지난 후 그들과 약속한 날에 다시 우체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세관 담당 사무실에 가서 노크를 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문의를 하려는 순간 냉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사무실에 들어왔냐?"는 듯 나에게 크로아티아 말로 추궁하듯 묻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내가 배운 크로아티아 실력으로 그들에게 "한국에서 온 소포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러니 그 증빙서류를 달고 하더니 나가 있으라고 한다. 이 정도 되면 한 30분은 기다려야 된다고 이미 감지했다. 정말 한 30분정도 기다렸을까...그러자 문이 열리고 나 보고 들어오라고 한다. 뭐 소포 하나 찾으러 왔는데 마치 범죄를 저지르고 심문 받으러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정도다. 들어가니 담당자인 한 중년의 여성이 대뜸 나에게 빠른 크로아티아 말로 자기들의 입장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잡아 들은 말은 이 물건들은 업소용으로 사용할 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나에게 줄 수 없고 다시 한국으로 돌려 보내겠다고 하는 것이었다.(내 언어실력으로 뭐라고 말하는지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마지막에 그가 말한 "돌려보내겠다"는 말은 정확히 알아 들은 것이다. 그나마 큰 진보다..예전의 경우는 말한마디도 못하고 바보같이 당하고 나왔다)
순간 내 머리속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사람과 담판을 지어야겠다. 이렇게 계속 당할 순 없다.." 이런 류의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그때부터 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배운 모든 단어와 문법을 사용하여 그녀와 논쟁하기 시작했다. 나의 요지는 간단했다. 이 물건은 한국에서 온 부활절 선물이고, 또 이 물건은 선물이지 판매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물건은 밀봉포장이 되어 있고 이 나라에서 위법으로 취급한 물품을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크로아티아 말로 논쟁하듯이 내가 했다고 상상해 보라. 이제 갓 말문이 터인 내가 말이다.
다행히 그들은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지만, 더욱 더 그들은 나에게 더 빠른 자기내 말로, 그리고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언어의 강력한 힘으로 나를 무력화시키는 것 같았다. 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만약 줄 수 없다면, 정확한 언어로 나를 납득시키려고 하지도 않고, 내가 이미 그 물건들이 판매용이 아니라 선물이고 나 자신 신분이 학생인점, 그리고 이곳에서는 아시안 식품을 살 수 있는 곳이 없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또 납득이나 이해시키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안된다고 자기네 말로 말하며 나가라고 하는 것에 폭발한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가 가져야 할 겸손과 온유의 덕목을 잠시 접어 두었다.
적진(?)의 한 복판인 우체국 세관 사무실 안에서 나는 내 정당함을 끝까지 주장하면서, 그 물건을 가지고 가야겠다고 말했다. 만약 그 물건의 양이 많다면(11킬로) 세금을 낼 수 있지만, 그 물건을 돌려보낸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고 또 이것은 외국인에 대한 경멸과 조롱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곳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 보스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만약 당신 보스를 데리고 오지 않으면 나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오늘 안 나갈 것이라고 으름장을 났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참..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외국 땅 한 복판, 세관 사무실에서 그런 이상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그러니 그 담당 여자 직원은 나를 쫓아내려다가, 도리어 자기가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이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그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와서 나에게 타이르듯 말을 했다.
"오늘은 보스가 있는 날이 아니다. 보스는 격주에 한번씩 온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가라.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와라. 그럼 보스를 만나게 해 주겠다" 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타이르듯 그리고 느린 크로아티아 말로 또박 또박 해 주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알았다고 말하고 그 날 돌아왔다.
우체국을 나오면서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며, 또 다른 쾌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말을 못해서 당한 답답함과 설움을 오늘 한번에 해소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말문이 더욱 터지게 됨을 느꼈다. 물론 내가 소리친 것에 대해서는 반성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이방인으로 나그네로 외국에서 살아갈때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또 하나의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의 조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감정과 의지가 섞인 그런 류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날을 저물었다.
그리고 보스를 만나는 다음 월요일이 되었다.
월요일 아침 집을 나설때 나름대로 다짐한게 있다. 그것은 "만약 소포를 받지 못하더라도 좋게 끝내자.."
소포를 받고 못 받고를 떠나 나는 이미 이 일을 통해서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방법의 다른 시도를 배운 것이었다.
하지만 뜻 밖에도 우체국에 가니 그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렇게 냉랭허던 분위기도 죽었고 그냥 나 보고 바깥 창구에 가서 기다리리가 한다.
그러길 5분정도 지났을까?
직원 중 한명이 나에게 와서 그 소포를 전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하는 말이 "이번에는 주겠지만 다음번에는 안된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난 보스를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그들이 알아선 일처리를 한 모양이었다.
어쨌던 난 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것이다. 내가 원했던 바를 이룩했으니...
하지만 이렇게 끝낼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물건을 받은 후 다시 그 담당자가 있는 사무실에 갔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 만났다. 그리고 화해를 청했다. 크로아티아 말로 "소리친것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니...
그녀가 나에게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충분히 알아 들을 수 있는 영어로 나에게 말을 한다.
진작 나에게 조금이라도 그렇게 설명했으면 내가 그렇게 그녀와 논쟁하지도 않았을텐데...지금에서야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난 그녀에게 "그렇게 영어를 잘 하면서 왜 나에게 설명조차 하지 않았냐?. 내가 화가 난 것은 너의 태도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니 그녀가 "네가 크로아티아에 있으면 크로아티아 말로 해야 한다. 나는 니가 크로아티아 말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곳이 학교가 아니기에 그녀의 말에 온전히 동감하진 못하지만, 나에겐 일리가 있게 여겨졌다.
또 한편으로는 도전이 되었다.
첫댓글 참 잘하셨습니다. 담대함과 용기는 소리칠때 고함치시고, 화 날때는 화를 내십시요. 정신건강에도 좋고 비온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한번 강하게 부딪치시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어디에서나 용감하소서
아멘^^, 더 조심할께요...겸손과 온유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