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주나라의 집권체제가 무너지고 제·초·진·연·위·한·조 일곱 나라가 서로 대립하던 때라 지식과 교육을 독점하던 귀족 계층이 문란해지자 사학(私學)이 등장하게 된다.
공자는 자기 집 마당에 은행나무를 한 그루 심어놓고 단을 세우니 이른바 행단강학(杏壇講學)이 시작되었다.
이 공자의 행단강학이 중국 사학의 시초였다.
공자는 인(仁)의 사상을 만들어 난세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공자의 학문적인 경지에 가장 근접했다고 하는 안연이 “仁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仁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사람이 본래 지켜야 할 법도를 따르는 마음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란 의미로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하였다.
주희는 극기복례라는 의미를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의 이치를 부여받았으나 욕심에 가려져 있어서, 이를 다시 찾아 온전하게 실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공자는 주희처럼 형이상학적으로 관념적인 언어로 仁을 말하지 않았다고 본다.
공자시대는 무한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사회가 이기심이 만연하여 개인의 이기심이 공동체적인 삶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생각하고, 당시 혼란한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안연에게 한 말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공자가 말한 仁은 서로 사랑하며 함께 어울려 살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공동체적 윤리가 나타나 있다.
공자는 仁의 실천은 효(孝)로 시작된다고 여기고 있다.
孝를 중시한 것은, 孝로 이룬 가정의 화목이 퍼져 사회와 국가를 평안하게 한다고 하는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은‘집안이 잘 되면 모든 일이 잘된다.(家和萬事成)’는 교훈이‘자신부터 갈고 닦아야 가정을 정갈하게 할 수 있고 나아가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세상을 평정하는 단계까지 이른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유가(儒家)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공자는 孝가 의(義)보다 더 큰 사회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
孝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은 ‘사랑’이다.
사랑이 부모에게 미치면 孝가 되고, 형제에게 미치면 우애가 되고, 자식에게 미치면 자애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 미치면 공손함이 되고, 나라에 미치면 충(忠)이 된다고 유교에서 가르쳤다.
공자가 「논어」에 백 여 회에 걸쳐 말한 仁의 의미를 종합해 보면 仁은 공손함, 관대함, 자애로움, 지혜로움, 효성, 충서(忠恕) 등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현대사회는 경쟁이 날로 심해져 사회가 개인 또는 집단이기심이 자행되고 있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우리는 국민적 화합과 소통, 그리고 도덕성 회복이 절실한 시대에 공자의 공동체적 윤리관을 말한 仁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