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흑염소
최승자
문학동네로 올라가는 명륜동 도로변에 바오로 흑염소 사당 하나 숨은 듯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 사당 앞 거리에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 검은 흑염소 한 마리의 울음이 낮게, 아주 낮게 깔려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몇 날인가 계속 불타는 아궁이 위 항아리 속에 담겨진 채 불타다 불타다 물로 변해버리는, 비명을 지르다 지르다 침묵으로 변해버리는 그 물ㅡ침묵의 울음소리, 몇 날 며칠을 불에 태워져야 순하디순한 물, 흑염소탕으로 변하는 흑염소의 에고(ego). 그 아궁이 불을 보살피는 사람이 연금술사인가, 그 항아리 안에 든 흑염소, 혹은 흑염소의 혼, 혹은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 자신이 연금술사인가, 아니면 그 거리 지나면서, 낮게 깔린 자욱한 안개 같은 그 검은 울음소리의 그물에 매번 발목이 사로잡히는 내 자신이 연금술사인가.
저 20세기의 상점으로 변해버린 바오로 흑염소 사당.
저 몇천 년 전의, 저 이방의 상징이 아직도 살아 "내 영혼의 어두운 밤"을 증거한다.
상징이란 지독하게 살아낸, 살아 달이고 우려낸 삶의 이미지이다. 살아내지 않은 것은 상징이 될 수 없다.
최승자 시집 <연인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