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愼言)(정병선)
채울 수 없는 욕망이 불만ㆍ불신ㆍ분노의 말로 변해 인터넷이라는 허무의 공간에 창궐했다. 말들은 교배하거나 복제되어 세상으로 퍼졌다. 관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고 하였건만 죽기를 각오한 듯 거친 말들이 마구잡이로 튀어 나왔다. 양설(兩舌)ㆍ악구(惡口)ㆍ망어(妄語)ㆍ기어(綺語)가 총소리에 놀란 새떼처럼 흩어져 허공을 떠돌다가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허언虛言)ㆍ괴언(怪言)ㆍ기언(欺言)ㆍ원언(怨言)으로 급조된 정의가 시퍼런 날을 세워 사람들을 베었다. 저주로 엮은 말의 채찍이 세월의 간극(間隙)을 날카롭게 찢으며 죽은 자를 불러내어 매질했다. 말들이 점령한 세상에서 레테의 강물을 마시지 못한 죽음은 삶보다 무거웠다. 때로 말을 대신하여 뜻 없는 소리와 음란한 몸짓을 담은 음악이 눈과 귀를 파고들었고 사람들은 자지러졌다. 말들은 엉키고 섞이어 서로 싸웠다. 말들의 싸움은 그 목적이 불확실했고 피아를 쉽게 구분할 수 없는 난전(亂戰)이었다. 선거의 승자와 패자 사이에서 시작된 말들의 싸움은 확전(擴戰)의 길로 치달았다. 말들은 세대로 갈라져 싸웠고, 지역으로 찢어졌으며, 이념으로 맞섰다.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가 다투어 떠들었으므로 '진실로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떠들어 대는 자는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는 노자(老子)의 경구(警句)도 부질없었다. 말은 애초에 행동을 기약하지 않았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지 않았다. 진실과 사실은 묵살되어 의미를 담지 못한 공허한 말들이 유령처럼 세상을 떠돌았다. 말의 위세에 법은 무력했고 예의는 낯을 가렸으며 도덕은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 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거대한 말의 시장이다. 이 시장은 진입이 자유롭다. 누구든지 입만 있으면 진입할 수 있다. 그 흔한 오디션도 없고, 주식시장처럼 상장심사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말의 둥지를 틀 수 있다. 이 시장에서 말의 자본은 친구(Friend)나 추종자(Follower)이다. 여기서 성공하려면 일단 '혀 속의 칼'로 찌르고, 자르고, 베는 데 능숙해야 한다. 남의 상처를 귀신같이 들춰내어 후벼 파야하고 약한 자는 철저히 밟고 비틀어야 한다. 그리하면 친구가 되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추종자들은 구름같이 모여 시장의 맹주반열에 오를 수 있다. 섣부른 감상으로 사랑을 노래하거나, 자기 자랑을 늘어놓거나 상식과 보편을 이야기하면 저절로 퇴출된다. 친구가 원수로 변하고 추종자는 떨어져 나가거나 적이 되어 말의 총구를 돌리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이 시장의 주인은 '침묵'이라는 역설이다. 침묵의 체로 거르지 않은 말은 소음(騷音)일 뿐, 말로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역의 15번째 '산뢰이'괘는 먹이고 기르는 양육(養育)의 괘이다. 이 괘의 괘상(卦象)은 입과 턱을 상징하므로 화복(禍福)의 출입구가 된다. 공자는 대상전(大象傳)에서 이 괘의 의미를 '말을 삼가고 음식을 절제하라(愼言語 節飮食)'로 풀었다. 말을 삼가 마음의 덕을 쌓고 음식을 절제하여 몸을 기르라는 뜻이다. 인간의 삶이 결국 입과 관계된 언어와 음식으로 요약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말이지만 그 가르침은 지키기 어려운 만큼 절실하다. 논어에 공자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소상하게 적고 있는데, '색깔이 나쁜 것을 먹지 아니하시고(色惡不食), 냄새가 나쁜 것은 먹지 아니하시고(臭惡不食), 제대로 익히지 않은 것을 먹지 아니하시고, 제철이 아닌 것은 먹지 아니하시고(不時不食), 자른 것이 바르지 아니하면 먹지 않으시고(割不正, 不食), 고기는 비록 많이 드시더라도 밥 기운을 이기지 않게 하시고(肉雖多, 不使勝食氣), 식사를 많이 들지 않으셨다(不多食)'고 하였다. 음식을 언어로 바꾸어도 그 뜻은 통한다. 공허한 말들의 눈보라 속에 한 해가 속절없이 저문다. 어지럽다. 그래도, 공하신년(恭賀新年)!
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첫댓글 삼가기는 어디 말 뿐이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