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날의 행복
『동화 넘어 인문학』(을유문화사, 조정현,2017) 중 “타인의 시선을 피하는 방법” 편에서 <벌거숭이 임금님>을 읽게 되었다.
<벌거숭이 임금님>을 빌어 인간의 헛된 욕망에 대한 어리석음을 질타하는 내용임은 이미 대부분 알고 있는 바다.
책 속에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에 수록된 3편의 수필이 소개되어 나의 지난날을 소환하였다.
가난한 신혼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실은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내 마음을 행복으로 일렁거리게 했다.
20여 년 전, 어느 날.
당시 내 남편은 여고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또 대학의 시간 강사이기도 했다.
중학 시절부터 대학 강단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여기저기 대학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대학 전임 교수가 되는 길은 바늘구멍처럼 좁기만 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막중하기만 한데 대학 전임 자리만을 바라보고 있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고3 진학반 수업과 여러 대학 시간 강사를 병행하며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고3 수업, 대학 수업으로 남편의 수업량은 타 교사들의 두 배나 되어 과중했다.
이 학교 저 학교 수업 시간 맞춰 종횡무진 달려야 하는 남편의 하루하루는 지침과 쫓김의 연속이었다. 급하게 운전하는 습관이 그때 형성이 되었다고 본인이 스스로 인정한다.
새 학기가 되면 시간표 조정, 대학에 출강하는 걸 못마땅해하는 교장의 눈치, 동료 교사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노심초사 마음고생도 참 많았다. 오직 대학교수에 대한 꿈은 모든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
점심시간이 맞지 않아 종일 굶을 때도 있었다. 간혹 집에 들러 잠깐 점심을 해결하기도 했다.
그날도
“오늘은 점심 집에서 먹을 거요.” 하며 출근을 하였다.
전업주부였던 난 취미생활로 서예, 한국화에 열중하였고 그날은 집 근처 동사무소에서 스포츠를 배우는 날이었다.
남편 점심상을 식탁에 차려놓고 동사무소로 향했다.
운동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이미 점심을 먹고 나간 후였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으려는데 식탁 위에 웬 쪽지가 놓여있었다.
“이건 당신 몫이요. 점심 맛있게 드시오.- 당신의 ***-”
머리, 창자를 아주 가지런히 떼어 낸 조기 한 마리.
남편은 머리, 창자 부분만 발라 먹고 살 부분은 아내인 내 몫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조기를 한 마리 말고 두세 마리 구워놓을 걸.....'하는 마음으로 애가 쓰렸다.
하지만 한 켠으로 밀물처럼 차오르던 행복이라니.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내 인생의 행복을 틀어쥐고 있는 샘터이다.
쌀이 없어 가난한 행복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여 욕심이 없는 우리.
욕심이 없었기에 이 행복이 우리 것이 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검소와 절약이 토대인 우리 부부.
우리의 검소와 절약 앞에서 욕심은 가난할 수밖에.
비움으로 가난한 마음의 우리,
<가난한 날의 행복>은 오늘도 이 시간도 진행 중이다.
첫댓글 탁구공 처럼 주거니 받거니 때론 부드럽게 때론 파도치 듯 ᆢ
내 인생의 행복을 틀어쥐고 있는 샘터 가 저도 있지요.^^
늘 귀감이 되는 모습에 감사드려요.
그 때 듣고 다시 보아도 감동이네요.~👍
교수님 부부의 근검과 배려의 모습에서 늘 배웁니다~♡
참 가슴 따뜻한 배려네요
사랑은 배려라는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교수님과 사모님의 삶, 가슴한켠에서 왜이렇게 몽글한것이 올라오는지~~^^
본받아서 신랑에게 잘해야 되겠어요
오늘도 나가면서 하고 싶은것 다 하라고 친구들이랑 여행다니면서 즐겁게 살라고 아무것도 일 벌리지 말라는 신랑의 잔소리에 헛웃음이 나왔는데
철없는 저 반성모드 드갑니다ㅎㅎㅎ
뭉클합니다.
조기 한마리로 두분의 사랑을 확인하고 더 돈독해지니 참 본받을일입니다.
어쩌면 그리도 신실하고 도타울수있는지 자세를 가다듬고 제것으로 받아들여보려 애쓰렵니다.
눈물날 만큼 감동입니다. 두 분 부럽습니다!!
떠나고없는 이 에대한 미안함이 이글을읽고
더욱 사무쳐집니다. 잘해 주지 못한 후회함에
마음이 이리도 아프고 쓰린지요
기회있을때 최선다해 사랑을준다면 후회가
없을테니 두분처럼만 사신다면 미련없을것 같습니다
.
언니~~그땐 그게 최선이였을 거에요.
지나고 나면 누구나 사무치고 후회하지 않을까요?
언니..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