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사발에 매화를 띄우면
정정성
봄은 너른 집에 사는 기쁨을 알차게 누리는 계절이다.
입춘이 지나면 튤립을 시작으로 마당 여기저기서 봄소식을 밀어 올린다. 매화 멍울은 말갛게 부풀고, 달래도 발그레한 모습으로 돋아난다.
야생화를 키우면서부터 봄을 기다리는 마음도 간절해졌다. 틈나는 대로 마당에 나가 수선화와 민들레, 할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봄마중을 한다.
서울 동쪽 끝 외딴 마을, 이곳에서 우리 가족은 봄이 되면 장을 담그고 꽃씨를 뿌리고, 간간이 막걸리를 빚으며 살아왔다. 세상 흐름을 받아들이는 데는 뒤졌으나 후회가 따르지 않는 것은 이 집에서 발효의 순리를 배우기 때문이다.
올해도 설을 쇠자마자 장을 담갔다. 묵은장이 넉넉하나 해를 거르지 않는다. 손자들도 쑥쑥 자라나고, 장독 간수가 어려운 아파트에 사는 동기간과 나눠 먹기 위해서다.
장독대 옆에 청매 한 그루가 있다. 며느리가 시집오던 해 기념으로 심은 것이다. 병충해에 약해 걱정했는데 올해는 꽃망울이 많이 매달렸다. 문득 매화 필 무렵에 맞춰 막걸리를 담고 보고 싶었다. 매화차를 마시듯 반쯤 핀 꽃을 막걸리 사발에 띄우면 봄날 누리는 호사로 그만한 게 또 있을까.
마침 고향 친구가 보낸 좋은 누룩이 있어 어렵잖게 술 빚을 엄두를 냈다. 찹쌀로 지에밥을 찌고 청솔가지를 꺾어다 항아리를 소독하는 사이 집 안은 금세 떠들썩해졌다. 남편은 좋아하는 막걸리를 원 없이마실 생각에 들떠 샘물을 길어 오고 누룩을 잘게 부수는 일을 도왔다.
마음이 들뜨기는 친정아버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막걸리를 빚는다는 소식에 화색이 돌면서 지에밥에 누룩을 섞는데 벌써 군심을 삼키셨다.
내가 번거로운 과정을 마다않고 막걸리를 빚는 건 친정아버와 남편을 위해서다. 어머니가 돌아기시고 스무 해 넘도록 맏딸인 나와 함께 사는 아버지는 대단한 술꾼이시다. 아흔이 넘었는데도 막걸리만큼은 사양하는 법이 없다.
남편 또한 마을에서 소문난 애주가다. 퇴직 후 이웃 농가의 자투리땅에 농사를 지으면서 한 손에는 호미를, 또 한 손에는 막걸리 잔을 들고 지내다시피 한다.
“비료값은커녕 막걸리 값도 안 나오는 농사는 왜 지어요?”
재활용 수거함에 그득한 막결리병을 대문 밖에 내놓으며 나는 한마디 보탠다.
연년생 외손자들 돌보느라 휴식이 절실한 주말에도 하루 세끼 식사는 물론이고 말걸리 새참까지 챙겨야 하니 여간 번거롭지 않다. 도서관에 눌러앉아 책을 읽던 여유도 사라지고, 음악회를 찾는 일도 뜸해졌다. 하지만 ‘이 원수같은 막걸리….’ 하고 분을 내다가도 비 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부쳐 술판을 유도하니 나도 막걸리 예찬론자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책을 읽다가 따로 정리해 놓은 독서 노트에는 막걸리에 관한 글이 많다. 대부분 막걸리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글들이다. 그중에서 장욱진 화백의 막걸리 예찬은 압권이다. 강가에 앉아 물과 어린이를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막걸리를 사랑하는 장면으로 바뀐다는 화가. 그는 취한다는 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하는 것이라 했다.
맞다. 나는 막걸리가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믿고 싶다. 그 사랑의 힘으로 남편은 장인丈人 봉양의 긴 시간을 견디고 있을 것이므로.
막걸리는 어느 계절보다 봄과 궁합이 맞는 술이다. 막걸리가 익는 동안 봄비라도 한차례 내리면 마당에는 참나물과 민들레, 참취 같은 봄나물이 푸릇해질 것이다. 그것들을 솎아 무치고 막걸리 사발에 매화를 띄우면, 세상사 어떤 근심인들 스러지지 않으랴.
첫댓글 정정성, 다월회 전 회장이 맞는지?
글 알맹이는 그 작가가 맞는 거 같은데...
그의 글에선 시적 표현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작품에는 조금 덜 넣은 거 같군요
하여간 막걸리 예잔, 기쁜 마음으로 잘 보았어요.
희꽃님 최고!
제목이 시적이지 않은지요?
정정성 선생님의 글을 좋아해서 필사해봤어요.
본인은 언젠가 자기 글 올리지 말라고 펄쩍....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