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정鍾情(한병희)
오래전 잠시 자동차 부품 배달 일을 할 때다. 늘 다니는 길에 가구점이 하나 있었다. 특이하게 간판을 '일견종정一見鍾情'이라고 붙였다. 어려운 글자도 없는데 뜻이 통하지 않아 인터넷을 검색했다. '첫눈에 반하다'라는 뜻이다. 한눈에 반할 좋은 가구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내 스토리 <일견종정>이라는 글을 썼다.
요즘 다시 이 단어가 떠오른다. 종정이라는 말이 풀어지고 풀어져 내 생각을 담을 새로운 그릇으로 재 탄생한 까닭인지, 아니면 본래 두 단어 종과 정이 만났을 때의 발가벗은 원시적 의미에 도달한 까닭인지.
한자漢字는 한 글자가 명사로 쓰이기도 하고 동사로 쓰이기도 한다. 종鍾은 무언가 물체를 들고 치면 소리를 내는 물건이다. 그래서 종이라는 글자가 명사로 쓰일 때는 그냥 종이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종이 울리다' 혹은 '종을 울리다'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종 뒤에 정을 놓은 것은 정을 울리다는 의미로 직역할 수 있다.
근데 이 情이라는 글자의 부수는 마음 心이다. 부수란 한자의 뜻을 나타내는 데 결국 마음 심 변에 쓰는 글자들은 모두 마음을 다양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종정은 마음을 울린 것이다.
독서를 하면서 여러가지 메모를 하고 혹은 밑줄을 긋고 접기도 하지만 기억에 남아 나중에 내 글에 활용을 하는 것은 다름아닌 종정한 글귀들이다. 결국 마음을 울려서 마음에 새겨지지 않은 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종정한 글귀는 밑줄을 긋지도 접어놓지도 메모도 하지 않았지만 글을 쓸 때 내 펜을 타고 내려와 원고지에 내려앉는다. 희한한 일이다.
노트 필기보다 카드 필기가 편집할 수 있어 좋다고 해 카드를 써보려고 하는데 종정법을 넘어서려나!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닌데 조금 망설여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