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종교로서의 주체사상 그리고 그 위험에 동조하는 배교의 현실을 생각하며
그제 올라온 인터넷의 뉴스를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먼저 그 일부를 살펴보자. 여기서 좀 길게 인용하는 이유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도 함께 읽고 그 내용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굿처치뉴스를 검색하여 전체를 읽어보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사이비종교로서의 주체사상 ▲정동섭(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 Ph.D.)
굿처치뉴스 C 5월 20일 오후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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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일찍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이단들 가운데는 이만희, 문선명, 박태선, 정명석, 장길자, 김정은과 같이 자신을 신격화하는 거짓 그리스도들도 있고, 자신을 신격화하지 않으면서 성경을 억지 해석해 자기를 따르게 하는 박옥수, 이요한, 변승우와 같은 거짓 선지자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이비 종교는 김일성 삼대를 신격화, 우상화하는 이단종교, 주체사상이다.
이단은 특정 지도자의 잘못된 가르침(교리)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집단이다(Walter Martin). 추종신도가 북한에 2500만, 남한에 300만으로, 추종신도가 많기 때문에 종교사회학자들은 주체사상을 세계 10대 종교로 꼽고 있다.
기독교 세계관이 문화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북한의 주체사상이라는 이단도 남북한의 모든 생활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주체사상은 북한의 국가종교일 뿐 아니라 남한 사회에도 586운동권 세력을 통하여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체사상은 칼 마르크스와 레닌의 공산주의 사상을 북한의 실정에 맞게 변조한 사회주의 이념이며 기독교에서 파생된 2세대 이단이기도 하다. ‘주체사상’은 기독교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혼합해 놓은 사이비 종교다. ‘주체사상’(Juche Ideology)이라는 정치종교, 국가종교(state religion)가 한반도에서 지난 70년 동안 남북한 국민(인민)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왔다. 지난 80, 90년대 우리나라의 대학가 주사파 운동권을 통해 전수된 주체사상은 2000년대 현재 우리나라에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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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10계명이 누구나 지켜야 할 항존법이듯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은 주체교인이 준수해야 할 유일사상 10대 원칙을 제정하였다. 사람이 육체적 생명은 부모로부터 받지만 사회정치적 생명 즉 영생은 10대 원칙을 지킴으로 김일성 수령으로부터 받는다고 가르친다.
김씨 3대는 언제나 숭배와 찬양의 대상이다. 주체사상에서 김일성은 성부 하나님에 해당하며, 김정일은 성자 하나님, 그리고 주체사상(김정은)은 성령에 해당한다. 수령은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존재인데, 사회정치적 생명에서 뇌수는 김일성 수령이고, 인민은 신체의 각 지체인데, 당은 혈관에 해당한다고 믿는다.
[김일성, 그이는 하나님]이라는 책에는 주체교의 신앙고백이 나와 있다. “전능하사 당과 인민을 영도하시는 김일성 주석을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김정일 동지를 내가 믿사오니 이는 공산당으로 잉태하사 미제국주의자들에게 박해를 받으시고 저리로서 인민을 해방하러 오시리라.” 아멘.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 주변에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특히 교회 안에서 그들의 생각과 생활에 동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과연 주체사상이 담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교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하다. 만일 기독교인이 저런 신앙고백을 듣고도 주체사상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성경을 바르게 믿는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의 신실한 기독교인들 중에는 586 운동권 세력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노무현에 대해 거의 성자처럼 이야기하는 목사님을 바라보며 참으로 의아하다는 생각에 잠긴 적도 있다. 그런 상황에 쉽게 동의가 되지 않아서 마음이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교회 역사가 그러했음을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 아히도벨이 다윗의 모사로서 오랫동안 다윗을 도와 함께 일해 왔지만 압살롬의 반역에 동조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으며, 요압과 아비아달 제사장은 아도니야가 반역을 일으킬 때에 그들을 지지하였던 것을 생각해 보자.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결코 믿을 것이 없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자신을 믿는다는 사람들에게 몸을 맡기시지 않으셨다고 했지 않은가?(요 2:23-25)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외치던 무리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치는 자들이 되지 않았던가. 악을 악이라고 해야 하고 선을 선이라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뒤집어진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던가.
50년이 넘은 옛날에 미묘한 배교에 대해 가르치시며, 경고하시던 선생님의 책을 꺼내 읽으면서 그때도 오늘날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음에 놀라게 된다. 항상 가장 경건한 것처럼 보이고, 가장 개혁적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어느 순간에 자기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외식과 불경건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기도하게 된다. 처음 믿을 때의 겸손한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해 주시고,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두려운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명심하며, 항상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게 해 달라고 부르짖게 된다. 그리고 바울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고전 4:7-8).
교회 안에서 교만한 마음을 품고 파당을 만들어 분열하던 고린도교회에 보낸 본문의 일차적인 뜻은 따로 있겠지만, 나는 갑자기 이 말씀을 오늘의 뉴스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다. 주님께서 주신 것들만 겸손히 받고 그 안에서 구원을 누리며 살아야지, 한계를 넘어서 배 부르며 주체사상까지 붙들 수는 없다. 하나님 한 분으로 족하지 어찌 김일성 일가까지 전능하신 신으로 믿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주체사상교를 믿는 자들을 용납하거나, 그들의 사상에 동조할 수 있겠는가?
분명히 이런 생각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편지할 때에 자기는 사람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만을 전하며, 하나님의 지혜는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세상 통치자들이 알지 못한 것이었고, 주님은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들의 생각을 헛된 것으로 여긴다고 하면서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으로 주어졌다고 가르친 다음에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 것이다. 우리는 항상 주님이 주신 본질적이고 귀중한 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며, 오히려 다른 것들을 붙들고 배 부르다고 자랑하며 왕처럼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고, 바울 사도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으며, 로마 가톨릭이 그렇게 성경을 떠난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개신교가 그런 길에 들어서 있다고 경고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은가.
말장난 같지만 그것이 바로 “주체사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주님”이요, 나는 종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이요, 하나님은 나의 종이라는 생각 말이다. 우리 시대에 교회 안에서조차 널리 퍼진 생각이 바로 이것 아닐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상이요, 바벨탑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