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쯤인가? 긴 줄을 달랑달랑 가슴위에 얹혀 놓고 볼륨을 높여 음악을 들으며 긴 통화도 하면서 무료함 없이 산책을 즐겼다.
어느날 후배가 줬다고 자켓 안주머니를 더듬어 남편이 내보이던 앙증맞은 새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을 처음 만났다.
가만히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될텐데 "나쓸래~ " 하며 어쩔 수 없는 막내 티를 냈다.
손에 들고 오는 걸 어색해 하는 남편이 날 생각해 마다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라도 '당신쓰세요~' 했더라면 좋았을 뻔 했다.
신문물을 접하는 시골뜨기 각시와 읍내 나가 고무신 사다 안겨 준 남편 처럼 각시가 좋아라 하는 모습을 보고 "내것은 각시한테 다 뺏겨브러~" 하며 보기좋게 함박 웃음을 내보였다.
그렇게 일년 반 정도를 산책할 때나 긴 시간이 필요한 부엌일을 할 때에 안성맞춤이였다.
여느 날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당연히 있을거라 생각한 블루투스가 충전기 본체만 있고 알맹이 두알이 보이지 않는다. 간혹 없어진 무언가를 찾을 땐 그 전에 입고 간 옷을 떠올리거나 가방을 찾아보면 해결 되었는데 이번만은 나오질 않는다.
산책을 미루고 온 사방군데 의심이 가는 나의 모든 집안 동선들을 탈탈 털고 다녔다. 내가 찾는다고 쓸고 간 자리를 그래도 시원잖고 혹여 놓쳤을 세라 딸과 남편까지 찾아주는 시늉을 했었다.
나를 향해 딸이 말한다. "엄마~모든 기기들도 밧데리 수명 이라는게 있어서 어차피 거의 바꿀 때가 된거 같은데~~" 잃어버리고 애타는 엄마를 위로 한 말임을 안다.
그래도 줄 이어폰에 비할바가 못되는 무선 이어폰을 찾고 싶은 마음이 더욱 바람이 인 양 활활 타올랐다.
남편은 집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거라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라며 숙제를 남겨줬다.
본체만 덩그라니 놓여 있지만 가출한 아이 집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마음으로 없애지 못하고 기다렸다.
한달이 채 못가 여전히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딸이 용돈으로 로즈빛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들고 내민다.
말은 안했었지만 다시 긴 줄을 매달고 쓰려니 거추장스럽고 음질도 저만 못하는 거 같아 돌아오지 않는 옛 블루투스 생각이 간절했었다. 그런다고 휴대폰 살 때 딸려온 이어폰이 뜯지도 않은 채 두어개가 있는데 일부러 블루투스를 산다는 건 내키지 않았다.
늘 쓰는 것이 편하고 좋아야 한다는 딸 생각이 엄마가 좋아하는 산책 시간에 즐겁 길 바라면서 사왔을 것이다. 남편은 여자 코드를 공감하기엔 2% 부족하다.
다시 생긴 로즈빛 블루투스를 꼿고 벗꽃 휘날리는 봄날 부터 하얀눈 펑펑 내리는 겨울을 두해나 보냈다.
그리고 얼마 전 남편은 변화에 둔한 나보다 언제나 공간 배치를 잘 시도 한다. 두해 동안 꼼짝 안 한 안방 침대를 45도 돌려 기존 벽면에서 바로 옆 벽면으로 머릿부분만 움직였을 뿐인데 분위기가 완전 새로워졌다. 거기다 늘 양쪽으로 제쳐놓기 만 한 이중 커텐은 뽀얀 속살을 꽁꽁 싸맨 채 보여주질 않았었다. 침대머릿 부분이 커텐의 반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향을 바꾸고 나니 시원히 쭉 뻗은 커텐의 모습을 100% 보여주며 분위기 내는데 크게 한 몫 차지했다. "진작 이렇게 할껄~~" 변화에 놀라워 입을 다물지 못하고 좋아할 때 무심한 척 남편 고개가 의미심장하게 화장대를 가리킨다.
"와~~~찾았네요.~ 어서 찾았어요? 신통방통 어서 찾았냐고 법석을 떨 때 또 한번 조용히 침대로 고개를 돌린다.
어깨가 말썽인 남편이 내가 교회 간 사이 바꿔 놓았다. 혼자 씨름했을 생각을 하니 내 얼굴이 양미간은 내천자요 입꼬리는 땅을 향한 채 3초 침묵이 흐른다.
"나랑 같이 하지~ 왜 그랬어요~" 이왕 끝낸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상을 내리는 여왕처럼 "이거 자기 써요.~" 생색을 냈다.
본인을 위해서는 사치란 생각이 들면 절제하는 남편이 자기 차지가 되니 좋아한다. "걷자면 지루하기도 했는데 쓰것네~" 이어폰을 끼위도 보면서 한쪽에 챙기는 모습이다.
칭찬받고 싶어하는 세담이 이틈에 또 " 아직 버리지 않고 본체를 갖고 있길 잘했죠?" 찾은 기쁨에 얼릉 숟가락을 얹는다.
아마도 나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남편이 중간에 깨어나 거실에서 잠들어 있는 나를 데리고 갔고 잠결에 귀에서 빼어 놓은게 침대 난간으로 떨어진 걸 까마득하게 기억을 못한거 같다.
짠해 하던 블루투스를 다시 찾아서 기분도 좋고 분위기 바뀐 안방도 봄을 맞아 산뜻하니 참 좋다.
첫댓글 우왕~
잃어버린줄 알았는데 찾았을때의 기쁨이란~
이어폰 되찾고 맛있는 백합죽이라...
세담의 좋아라했을 웃음 띈 얼굴이 떠올라 덩달아 즐거워지네요.
알록달록, 아기자기
예쁘게 사는 모습이 안봐도 보입니다 그려~
세담 씨~~ 쓰담쓰담 ❤️🧡💛
어쩜 이렇게 알콩달콩 간지나게 글도 잘쓰시고 예쁘게 잘 사시는지..언니, 참 이쁘십니다^^ 글 속에서 늘 느끼지만 남편 분 참 좋은 성품을 지니신 분 같고요, 나윤이도 착하고 섬세하고요.
세담님의 솜씨만큼 맛깔난 글
잘 읽었어요~~곧 돌아올 벚꽃 날리는 .산책길이 더 포근해지겠어요♡
통통 빗방울 튀듯 생기도는 부부애로 화목한 세담 님네 가정의 소확행, 저까지 행복해집니다.
딸이나 남편이나 세담에게 주는 사랑이 대단하네요~~
세담이의 글을보면 참 행복해지네요
잔잔한 에피소드를 사랑스럽게 쓰는 세담글에 오늘도 입가에 미소가 그려져요~~
전업 작가? 글쓰기 수업 하셨남? 문장력 매끄러운 필력에 깜놀,,
신춘문예 도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