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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라고 쓰고 천사라고 읽는다
“표범 표범 당나귀 당나귀”
“당나귀 당나귀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똑때비(족제비) 똑때비”
휠체어에 앉아 말 한마디 못하는 타조부터, 비록 발음은 완벽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친구들의 별명을 하하 호호 한명도 빠짐없이 서로를 부르며, ‘제발 오늘만은 무사히’ 간절히 바라는 나의 기도로 고등부 ‘무한도전’ 우리 반 하루는 시작된다.
“토끼야! 보건선생님 쫌 불러, 빨리 빨리”
개구리가 갑자기 대발작 간질을 일으키며 ‘턱’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행이 그 순간 내가 슬라이딩하듯이 가까스로 머리를 받았으나 이미 입주변이 부풀어 오르고 온 몸은 파닥파닥 가엽게 떨고 있다. 맞잡은 내 손에 땀이 흥건히 고이기를 10여분, 개구리는 겨우 눈을 떴지만 얼마나 간질의 강도가 세고 독했는지 침을 줄줄 흘리면서 금방 깊은 잠에 빠졌고, 나와 실무사선생님은 겨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런데 아까 슬라이딩할 때 오른손을 잘못 짚었는지 시큰시큰 심하게 아파오더니 붓기 시작한다. 평소 자주 소 발작을 일으켜 늘 손을 꼭 잡고 껌딱지처럼 붙여 다니는데, 오늘은 흥얼흥얼 기분 좋게 노래를 부르며 자기 자리로 잘 걸어 가길래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발작을 한 것이다. ‘특수교사는 뒤에도 눈이 있어야한다’, ‘특수교사는 숨 쉴 틈마저도 긴장해서 아이를 봐야한다’, ‘특수교사는 극한알바보다도 힘들다’ 등 수많은 특수교사의 이야기가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렇다. 정말 찰나였다.
혹시, 옆에 있던 휠체어에 얼굴이라도 바로 받았거나, 머리라도 다쳤으면····‥.
순간적으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빨리 오세요. 코끼리가 또 발을 빨아요”
아픈 손목에 파스를 바르다 부여잡고 달려갔더니 키 181cm에 몸무게가 150kg이나 나가는 최고도 비만 코끼리가 침을 질질 흘리며 자기 발을 정신없이 빨고 있다. 마치 강아지가 자기 발을 빨듯이 아주 정성껏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빨고 있다.
겨우 겨우 못 빨게 말렸더니 화가 났는지 움직이려 들지 않아 몇 명의 선생님 도움으로 겨우 교실로 코끼리 한 마리 몰다시피 데리고 왔다.
아침부터 개구리 때문에 놀란 가슴에다가, 온힘을 다해 코끼리를 진압(?)하였더니 다리에 힘이 확 풀리면서 그대로 교실 바닥에 주저앉고야 말았다. 그렇게 잠시 앉았다가 고개를 드니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얼마나 높고 파란지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며 먹먹해진다.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훅 밀려온다.
“당장 학교 때리치아라캤제? 와 가마이 안 있고 도망은 가고 지랄이고? 만약에 도로에서 그카고 있다가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우짤뿐 했노. 앞으로 무신일이 또 생길지도 모리고, 함부레 짐싸라. 그런 아들 갈킨다는 소문나믄 시집도 몬간다!!”
30년 전, 9남매 막내딸로 애지중지 하던 내가 사범대학 졸업하고 일반 학교 선생님을 할 줄 알았는데, 딸이 발령받았다는 학교가 특수학교인데다가 자폐아이 하나가 교문 밖 도로를 휘젖고 있는 아이를 잡으려다 무릎을 다쳐 절뚝거리는 나에게 눈물을 훔치며 투덜투덜 하신 기억이 하필 지금 생각이 나는지····‥.
“선생님! 타조 죽 먹을 시간이에요”
그렇다. 오전 10시, 키 174m에 몸무게가 34.5kg밖에 나가지 않는 타조에게 영양죽을 먹이는 시간이다. 아프리카난민이 따로 없는 타조는 희귀병을 앓고 있으며, 어머님말씀으로는 20살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는 아이이다. 지금이 18살이니 모든 신체적 기능이 자꾸 나빠져 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타조는 지난 여름방학동안 집에서 밥을 거의 먹지 못하고, 간질을 너무 심하게 하는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극도의 영양결핍으로 생명까지 위험한 상태라 학교생활은 위험하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단이 나왔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타조를 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집에서는 밥을 한 숟갈도 먹이지 못하고 밤새 응급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쓰러져있는 날도 ‘선생님 보러 학교 갈까?’라고 하면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 앉는단다. 누구도 먹이지 못하던 밥도 내가 주면 거짓말처럼 잘 먹는다. 결국 학교에서는 보건선생님의 건강 체크와 ‘학생상황일지’를 매일 기록, 결재를 받아가며 살얼음판 같은 타조의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10시, 12시, 오후3시, 하루 세끼를 학교에서 먹이는 중이다. 만약 다시 건강이 좋아지면 기적이라 불리었던 걷기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아카시아향이 가득한 야외체험활동에서 휠체어와 침대에서 누워만 지냈던 타조가 드디어 혼자 서기도 하고, 몇 발짝 걷기도 해서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동영상을 본 어머니는 엉엉 대성통곡을 했다고 했다.
“당나귀! 안 돼! 천천히 끝까지 다 먹어야 된다. 좀 더 먹으면 더 좋고!” 어머니를 세 살 때 여의고, 그나마 재혼한 아버지와 함께 살지 못하고 독거노인인 큰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수급자 당나귀는 웃음기와 말 수가 전혀 없이 혼자만 노는 언제나 슬픔이 묻어 있는 아이이다. 당나귀 또한 심한 영양결핍과 함께 편마비를 갖고 있는 뇌병변 2급 중복장애아이다. 자기를 돌보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일반학교를 가지 못하고 자기보다 수준이 낮은 아이들과 함께 공부해야하는 처지 때문에 매사 무표정하고, 재미없고, 시큰둥하며, 꼬여있는 말투와 심보를 지켜보는 것이 아프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여러 종류의 스킨쉽 게임이었다. 별명대기게임, 큰 소리로 웃기 게임, 스마일 인사게임 등 나와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재미있는 게임들은 결국 ‘학습달성 스티커로 문구선물하기’, ‘칭찬모음 용돈받기’, ‘매달 한편 시 발표하기’, ‘심부름을 통한 대인관계 훈련’ 등 생활한 모든 것에 합당한 대가가 있는 프로젝트들로 이어져 이제는 수시로 ‘씨익’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스러워지고 있다.
“어차피 키우지도 않으면서, 왜 나 같은 장애아를 낳아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던 당나귀에게도 요즘 꿈이 생겼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해서 큰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싶단다. 뜨거움이 목젖을 타고 가슴으로 따뜻하게 전해 온다. ‘특수교사는 울보다. 때때로 작은 이야기에도 너무 감격스럽기 때문에’.
“6×6은?”
“36”
‘와우’ 족제비가 구구단을 거의 다 외워가고 있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6+6은?”
반장인 족제비는 머리를 긁적인다.
“음, 음, 너무 문제가 어려워요.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다시 가르쳐 주세요.” 두 자리 수 덧셈 뺄셈을 벌써 다 마쳤고, 곱셈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한 자리 수 덧셈과 뺄셈을 해보면 까마득하니 모르는 얼굴이다.
‘특수교사는 죽으면 부처님보다 더 많이 사리가 나올 것이다’
족제비가 눈치 채지 못하게 뒷목을 부여잡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맞춤식 되돌이표’ 공부가 시작된다. 사실 족제비는 심한 왕따를 당한, 학습부진이 심한 일반학교 특수학급 출신이다. 처음 만났을 때 족제비는 자신감이 없어서 알고 있는 것도 물으면 더듬거리고, 눈동자가 계속 흔들리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 버릇이었다. 그랬던 족제비를 당당하게 만든 것은 작은 일, 매 순간에도 아낌없이 날리는 칭찬폭탄이었다.
“선생님, 문제 풀다 보면 틀릴 수도 있잖아요. 틀려도 뭐 선생님이 다시 다 갈키주니까 문제 없잖아요. 공부가 이렇게 쉽고 재미있을 줄 몰랐어요” 하며 해맑게 웃는다.
이제는 말할 때 눈을 쳐다보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물론, 공부가 재미있다고 난리다. 특히, 자동차를 너무 좋아하는 족제비이기에 ‘2급자동차 운전면허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문제를 풀면서 발음지도, 내용이해하기, 상황에 맞는 글 알아보기, 틀린 문제를 다시 노트에 옮겨 적으며 바른 글씨 쓰기 등 너무나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 오답노트가 3권 째인 요즘은 20문제 중에서 5개 맞던 실력이 20문제 중 5개 틀리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족제비 부모님께서 매주 간식을 보내오실 만큼 기뻐하고 계셔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역시, 특수교육은 아이들에게 맞는 맞춤식 개별화교육이어야 성공이다.
“선생님, 토끼가 없어졌어요!”
댄스를 함께 추던 친구랑 다투다가 삐져서 토끼가 어디로 도망을 갔다. 가끔씩 제풀에 화가 나면 잘 숨어버리는 습관이 있지만 늘 가던 곳이 있어서 걱정 없이 그곳으로 갔다. 그러나 오늘은 그곳에 없다. 애타게 이름을 부르며 20분을 찾아 헤매도 없다. 결국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방송을 하고 수업이 비는 선생님들이 함께 찾아 나섰다. 비상이다! 50분이 지나도록 토끼가 찾아지지 않는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뒷산 쪽에서 본 듯하다고 해서 헉헉 대며 산등성이를 미친 듯이 쫒아 올라가는데 전화가 왔다. 찾았단다. 어이없게도 토끼는 미끄럼틀 통 안에서 숨어있었다. 화가 나서 야단을 치려고 토끼를 불러 세웠다. 그러나 한마디도 못하고 그냥 꼭 안고 다독거렸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숨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혼날까 겁이 나서 대답도 못하고 손톱을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손가락에 피가 나고, 겁먹은 눈에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토끼에게 과자를 하나 쥐어주며 교과수업에 데려다 주고 교실로 들어와 쓰러지듯 매트리스에 누웠다.
그런데 어디서 소변냄새가 진동을 한다. 타조의 기저귀를 깔고 누었었나보다. 사고가 정신도 없이 연속으로 터지다 보니 기저귀를 갈아 놓고 미처 쓰레기통에 던질 시간도 없었나보다. 갑자기 울컥하며 속이 상한다. 다친 손목은 더욱 욱신거린다. 파스를 마저 발라야하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데 전화가 왔다.
“선생님, 타조의 목숨은 선생님이 살리셨어요. 어제 병원에 갔던 결과가 나왔어요. 무엇보다 건강상태가 너무너무 좋아져서 몸무게도 6kg이나 늘었구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매일이 불안했거든요. 잠자고 있는 아이를 몇 번이고 안아보았어요. 숨을 쉬나 안 쉬나. 그런데 선생님, 우리 타조가 이렇게 자꾸 좋아지면 어쩌면 1년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감사합니다. 누가 이렇게 해 주겠어요.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할지, 선생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제발 내년에도 꼭 우리 아이 담임해주시면 안돼요?”
전화를 끊고 나니 알림장이 하나 남겨져있다. 답 글을 쓰려다 빠졌나보다.
“선생님, 개구리가 잔병치레가 없어졌어요. 이때쯤이면 기침에, 콧물에 약을 달고 살았는데, 아마도 선생님께서 운동도 많이 시키고, 밥을 잘 챙겨 먹여주셔서 그런가 봐요. 감사합니다. 늘 힘없이 눈 감고 말 한마디 없이 누워있기만 하려는 아이가 요즘은 시끄러워죽겠어요. 말도 잘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웃음이 나요.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우리 개구리에게는 선생님이 딱인가 봐요. 그런데 요즘 자꾸 성에 관심을 너무 보여요. 컴퓨터에 앉혀 놓으면 글씨도 모르는데 ‘ㅋ’을 치고 ‘키스’와 관련된 것들을 자꾸 보려고 해요. 우리 아이들 성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이에요····‥.
알림장을 들고 답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특수교사는 천사들의 눈빛, 맘결, 몸짓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큰 행운이다’라고 특수교사 30주년을 시작하면서 내 책상위에 적혀져 있는 글귀가 더욱더 선명하다.
그 밑에 한 줄을 더 쓴다.
‘장애아라고 쓰고 천사라고 읽는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동입니다.
람(남)전님의 올려주신 글, 참 반갑습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행복한 하루 되셨기를요ㅡ()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