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성 호우
김이듬
거리의 비는 잠시 아름다웠다
위에서 보는 우산들은 평화로이 떠가는 잠깐의 행성이 된다
곧 어마어마한 욕설이 들려오고 뭔가 또 깨고 부수는 소리
옆집 아저씨는 일주일에 몇 번 미치는 것 같다
한여름에도 창문을 꼭꼭 닫을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나는 오늘 한마디도 안 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면서 아아 했지만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는 말이 아니니까
홑이불처럼 잠시 사각거리다가 나는 치워질 것이다
직업도 친구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훌륭하다는 생각도 했다
작은 배드민턴 라켓 모양의 전자파로 모기를 죽였다
더 죽일 게 없나 찾아보았다
호흡을 멈추면서 언제까지나 숨 쉴 수 있다는 듯이
자정 무렵 택배 기사가 책을 가지고 왔다
그것이 땀인 줄 알면서 아직 비가 오냐고 물어봤다
내륙에는 돌풍이 불어야 했다
굳이 이 밤에 누군가가 달려야 할 때
너를 이용하여 가만히 편리해도 되는지
내 모든 의욕들을 깨뜨리고 싶다
김이듬 『표류하는 흑발』 (민음사.2017)
김이듬ㅡ부산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 『포에지』로 등단하였다. 『별 모양의 얼룩』(2005), 『명랑하라 팜 파탈』(2007), 『말할 수 없는 애인』(2011), 『표류하는 흑발』(2017), 『마르지 않는 티셔츠를 입고』(2019)등과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산문집 『디어 슬로베니아』 등을 발간했다. 제1회 시와세계작품상(2010)과 제7회 김달진창원문학상(2011)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