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나이가 있나요
몇 년 전 추석 때의 일이다.
고향에서 성묘를 마치고 추석 이튿날 부리나케 강릉으로 돌아왔다. 당번 약국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문을 열 때가 아침 열 시 쯤이었는데, 약국 앞에서 두 모녀가 아주 초췌하고 낙담한 모습으로 서성거리다가 조용히 약국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아주머니가 전하는 내용은 이러했다.
그의 남편은 한전을 정년 퇴직하였지만, 발전 설비중에서 터빈 분야에선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기술자라 했다.
남미나 동남아 각국으로 돌면서 발전 플랜트가 완성되면 터빈 시설을 몇 달간 시운전하면서 그 시설의 운행 방법을 전수해주는 일을 하여왔는데, 이번엔 중동 국가인 예멘에 3개월 예정으로 며칠 전에 갔는데, 숙소 경비실 앞에서 그가 소지한 약품으로 말미암아 현장에서 바로 체포가 되어 경찰서 유치장에 갖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가 외무부로부터 그 사실을 통보 받은 것이 하필이면 추석 전날이었는데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여 이틀 밤을 울며 지새고 추석 다음날 아침 강릉으로 온 것이었다.
그 집 가족은 근자에 까지 강릉에 살았었는데, 수 개월 전에 화력 발전 설비가 있는 삼척으로 이사를 했지만,
단골로 다니던 병원이 강릉에 있어서 진료와 투약은 계속 강릉에서 하고 있었단다.
위장이 좋지 않아서 내과에서 위장약을 처방받고, 만성 비염이 있어서 이비인후과에서도 처방을 받아서 3개월치의 약을 지어서 예멘으로 갖고 갔는데, 처방전을, 그것도 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영어 처방전을 요구했는데,
아무 것도 없이 약만 한 보따리를 갖고 다니다가 적발이 되어 혹시 무슨 마약상이나 아닌가 하여 구속된 것이었다. 그것도 이역만리 중동땅에서.
마침 공교롭게도 날짜도 고약하여 우리 약국을 찾은 날은 추석 연휴로 공휴일이요, 다음 날만 목요일로 평일이고,
그 다음날 금요일은 이슬람 쪽이 우리의 일요일 처럼 여기는 날이요, 다시 그 다음 토 일요일은 우리 공관이 쉬는 날이라, 추석 연휴 다음날 까지 어떻게든 구출해내지 못하면 꼬박 한 주를 유치장에 있어야할 형편이고, 그렇게 되면 그 쪽에서 변호사를 사서 재판에 임해야 한다니
그 아주머니가 얼굴이 사색이되고 넋나간 사람 처럼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약을 처방한 병원과 그 약을 지어준 약국은 알고 있었지만, 모두가 공휴라 문을 닫고 연락할 방법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가 우연히 문을 연 우리 약국을 발견하고 혹여 무슨 도움이나 얻을까하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를 찾은 것이었다.
나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였으나 그들의 딱한 처지를 듣고는 외면할 수도 없었다.
이때 큰 도움이 된 것이 내 나이였다.
강릉에서 왠만한 의사나 약사는 나 보다 젊다.
이비인후과 의사에게는 직접 전화를 했다.
마침 자기 집에 머물러 있다가 사정을 전해 듣고 곧장 나와서 처방전을 재발급해 주었다.
내과 처방전은 마침 내가 주례를 서줬던 후배의 약국에서
조제한 것이라서 그 후배를 찾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원주 근교 놀이시설에 가 있다 했다. 역시 그 내용을 알려주고
도움을 구하니 그 날 오후에 일찍 돌아와서 처방 내용을 복사해 주었다.
염려했던대로 위장약에는 향정신의약품이 들어있었고, 이비인후과 처방에는 고용량의 슈도에페드린(Pseudo ephedrine)이 들어있었다.
향정약도 문제였지만, 고용량의 슈도에페드린은 당시 이미 동남아 등지에서 필로폰등의 마약으로 전용(轉用)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예멘에서도 그런 의약품의 소지를 금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날 오후, 이제는 처방의 번역이 시작되었다.
약품명, 성분명, 그리고 간단한 효능에 대하여 영어로 번역을 하여 컴퓨터로 출력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평소에 익힌 영어 실력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약사가 영어해서 뭐하겠냐는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늘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약국이 사통팔달한 위치에 있어서 많은 외국인이 드나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 친구도 몇 있어서 좀 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어 소통엔 문제가 없었다.
영어 이외에도 중국어에도 관심이 많아서 간단한 회화도 할 수 있고 그것도 여의치 못할 때는 필담(筆談)을 해서
중국 여행시에 큰 도움이 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처럼 나의 작은 외국어 실력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된 적은 없었다.
번역을 끝내고 처방전과 번역본을 챙겨서 밤을 도와 모녀는 서울로 가서, 다음 날 아침 일찍 공증법률사무소를 찾아가 그 처방전과 번역본의 내용이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공증을 받아서, 다시 정부 청사 외무부를 찾아 그 서류를 팩스로 예멘으로 보내고, 그렇게 하여 당일 저녁에 그 사람이 석방될 수 있었다.
이틀 후 그 아주머니는 케익과 꽃을 사서 다시 약국을 찾아왔다.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석방 소식을 전했다.
나 역시 반가움을 감출 길 없었다.
지금도 약국을 경영하면서, 또 짧은 영어나마 잊지 않고 공부를 한 것이 그 가족과 나에게 큰 기쁨을 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공부에 나이가 있나요?
2014년
三一節에
豊江
첫댓글 참으로 감사합니다.~^^*
짝짝짝!!! 아주 유쾌한 글입니다. 상황이 잘 그려집니다. 아니?! 주례까지 서신다구요?!!! 영어까지 공부하시고, 매일 예배(?)드리시고...아유, 언제 공부까정? 아무튼 제가 다 고맙네요. 그 부부가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아주 좋은 일 하셨습니다.제2의 고향, 강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시네요*^^* 건강하세요.
미소가 저절로 나는 고운 글을 읽고 풍우회 한울회(51기)로 옮겨 갑니다.